여성가족부 선정 ‘나다움’ 도서 논란 된 사연

여가부, 일부 서적 회수나서…분학연 "불온서적" vs 전교조 "교육부 줏대없다" 아동·성교육 전문가 "성인 눈으로 아동 성교육 도서 바라보는 것 되돌아봐야"

2020-08-27     양세정 기자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나다움(나다움을 찾는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 도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진은 나다움  '비밀 소원' 출간기념회에 모인 관계자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나다움(나다움을 찾는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 도서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25일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특정 도서들이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이에 공동 주관처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사업에서 빠지겠다고 밝혔고, 여가부는 논란이 된 도서를 회수하겠다고 했다. 

김병욱 미래통합당 소속 교육위원회 의원은 책 내용에 관해 자극적이라며 비판했다./ 자료=김병욱 의원실

◇ 나다움 도서는 왜 논란의 중심에 섰나 

김병욱 미래통합당 소속 교육위원회 의원은 지난 25일 오후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4권의 도서를 언급했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담푸스) ‘우리가족 인권 선언 엄마·아빠’(노란돼지)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시금치) 등이다. 

김 의원은 여가부에서 진행하는 나다움 사업 도서가 전국 초등학교와 도서관에 배포되는데, 책 일부가 조기 성애화와 동성애 미화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나다움 도서는 곧바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가장 논란이 된 책은 성관계가 그림으로 나타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다. 남녀가 성관계를 하면서 ‘신나고 멋진 일’이라거나 ‘재미있다’라고 적힌 문구가 아이들이 읽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유치원생 남아를 키우는 워킹맘 최모 씨는 “이런 노골적인 문장과 그림은 성인인 내게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수위가 높아 우려스럽다”며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표현방식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 맘카페를 중심으로 “예비 부부에게 보여주기에도 민망한 그림과 글” “성교육은 필요하지만 이 책은 정말 아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 밖에 우리가족 인권선언 시리즈 중 엄마 인권 선언과 아빠 인권 선언에는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원할 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대목이,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책에는 “반대로 아주 비슷한 사람들이 사랑할 수도 있어. 예를 들면 남자 둘이나 여자 둘이” 등의 문구가 동성애를 옹호·조장한다는 것이다. 

결국 여가부는 문제 도서를 회수 조치하겠다고 밝혔고, 사업을 공동 주최, 주관하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사업에서 빠지게 됐다. 

나다움어린이책 선정 과정./ 자료=나다움어린이책 자료집

◇ 조기 성애화를 조장했다는 나다움 도서, 선정 기준은 없었나

나다움어린이책 도서위원회가 펴낸 나다움어린이책에 대한 소개 내용을 보면, 총 26개의 질문을 중심으로 도서 목록을 확정했다고 나온다.  

도서위원회 6명과 자문위원회 7명으로 총 13명의 전문가가 책을 선정하는 데 관여했다. 도서 목록을 꾸린 도서위원회는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대학교 교수, 현직 초등학교 교사, 아동 도서 작가 등으로 꾸려졌다.

도서위원회는 총 1200여 종의 어린이책을 전문가와 출판사, 독자 등으로부터 추천받아 사업 첫해 도서 134권을 확정했다. 134권 가운데 비중이 높은 것은 지난 5년 사이 출간된 책이었다. 2018~2019년 출간된 책을 58종, 지난 5년 동안 출간된 책 99종을 선정했다. 올해에는 65권을 더 늘려 도서를 총 199권으로 꾸렸다. 

나다움 어린이책 질문지/ 자료=나다움 어린이책 자료집

자료집을 살펴 보면, 도서위원회는 당시 책을 선정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것은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성인지 감수성을 성별에 관계없이 스스로가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 개인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주제 아래 자기긍정과 다양성, 공존이라는 3개 가치를 뒀고, 10가지 범주로 나눈 후 총 26가지 질문을 확정했다. 

‘어린이책의 서사와 인물에 대한 질문’ 표를 살펴보면, 1: 인물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발견과 성장을 추구하나요? 3: 인물의 개성이 성별 고정관념으로 결정되지는 않나요? 4: 생명의 탄생 과정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고 있나요? 6: 인물이 성별 차이 없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나요? 11: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에 모든 가족 구성원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나요? 등이라고 나온다. 

나다움 어린이책 질문지와 도서 비교표./ 자료=나다움 어린이책 자료집

논란이 된 책 역시 마찬가지로 질문지를 따라 선정됐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4번 항목과,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은 4·5·22·23번 항목과, ‘우리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는 1·3·6·10·11번 항목과 관련이 됐다.

도서 선정을 끝낸 후 여가부는 전국 초등학교에서 공모를 받아 총 5개 학교를 선정해 나다움책장을 지원했다. 올해 5월에는 가정의 달을 맞아 한부모가족 800가구에 도서 3200권을 전달했다.  

논란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지난 25일 오후 2시경 여성경제신문은 초등학교 다섯 곳 가운데 세 곳과 통화한 바 있다. 당시 나다움 도서 관련자 두 명은 나다움 도서가 문제 서적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거나 “나다움 도서는 지난 11월 말경에 도착했는데, 곧바로 코로나 사태 확산으로 아이들이 책을 볼 시간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문제가 생길 틈이 없었다”라고 답해왔다. 

다만 한 학교에서는 “논란에 대해서 알고 있다”며 “해당 도서는 이미 시중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도서지만, 부모와 함께 읽어야 좋을 듯해 교사용으로 미리 빼놨던 상태고 이제껏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고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전국학부모연합이 지난해 6월 전교조 해체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분학연 ‘이정옥 사퇴해야’ VS 전교조 ‘김병욱이 시대착오적’…꼬리 내린 여가부 

여가부가 회수 대상 도서로 밝힌 것은 앞선 4권뿐 아니라 총 10권이다.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고래가숨쉬는도서관) ‘걸스 토크: 사춘기라면 정작 말해주지 않는 것들’(시공사)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키즈엠)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고래이야기) ‘우리가족 인권선언-딸·아들’(노란돼지) 등으로 6권이 더 늘어난 것이다. 

여가부는 김 의원이 문제 삼은 도서 외에 왜 추가로 회수를 결정했을까. 이번 나다움 도서를 처음으로 문제시한 곳은 펜앤드마이크TV와 나쁜교육에분노한전국학부모연합(분학연) 등으로 꼽힌다. 이들은 이달 초부터 나다움 도서 일부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지적한 도서 목록이 바로 여가부가 회수하겠다고 나선 총 10권의 책과 일치한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날까’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남녀 성관계 장면을 지나치게 노골화시키고,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는 이종간 결합을 통해 다양한 성적 취향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걸스 토크’는 여성의 자위와 성관계, 피임법에 대해 설명하며 콘돔을 권장하고,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과 ‘우리가족 인권선언’은 이혼을 남녀의 권리로 가르치거나 동성끼리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것이 분학연 등의 주장이었다. 

이 내용에 기독교 단체도 분노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 17일 ‘초등학생들에게 외설적 성관계, 동성애 조장 도서를 보급하는 여성가족부, 가족해체부인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분학연과 전국학부모연합 등 10개 학부모연합과 ▲케이프로라이프 ▲경남미래시민연합 ▲바른가치수호운동본부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안티페미협회 등 22개 시민단체는 나다움 어린이책을 삭제하라며 지난 20일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나다움 도서에 대한 논란이 더욱 퍼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항의성 글이 올라왔고, 여가부 공식블로그의 나다움 사업 관련 페이지에는 ‘여가부를 폐지하라’는 댓글이 달렸다. 국회에서 언급된 지 하루 만인 26일, 결국 여가부는 단체들이 문제로 삼았던 총 10권의 회수를 결정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26일 논평 일부./ 사진=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홈페이지

한편 지난 2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논평을 내고 김병욱 의원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을 비판했다. 전교조는 “그(김 의원)가 문제 삼은 도서(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1970년 덴마크에서 발간한 초등학교 교재에 실린 내용인데, 50년이 지난 오늘까지 보건과 금욕 중심의 학교 성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시대에 맞지 않는 성교육을 지적해야 할 국회의원이 오히려 구시대적이며 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것은 참으로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 장관에 대해서는 “학교 내 성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교육부는 학교 성교육의 문제를 개선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성교육 내용과 방법을 개선하고자 할 때마다 일부 의원과 정치세력은 문제를 삼는다”며 “그들이 항의한다는 이유로 성평등 기반 포괄적 성교육은 제자리걸음을 하며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시대착오적 주장에 부화뇌동하지 말라. 주춤하지 말고 국제표준을 반영한 포괄적 성교육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나다움 사업을 주관한 사무국 관계자는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가 이미 출판돼 시중에서 판매되는 도서를 가지고 ‘성에 대한 사실적인 지식을 전달하기에는 어떤 책이 좋을까?’ 등 질문을 던지면서 책을 선정했던 것”이라며 “200개에 달하는 도서 가운데 일부 책이 과하게 묘사돼 사업 진정성이 폄하돼 마음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 일부./ 사진=예스24 

◇ 아동·성교육 전문가 “이번 논란, 놀랍지도 않아” 

아동·성교육 전문가들은 해당 도서들을 마냥 ‘불온 서적’처럼 다뤄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어른의 시선’으로 아동 성교육 도서를 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아동청소년은 ‘성’에 대한 근원적인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성기나 성관계를 사실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양육자나 교육자가 ‘성을 대하는 태도’라고도 지적했다. 

이은숙 어린이도서연구회 목록위원장은 “성교육 고전으로 유명한 ‘배빗콜’ 작가의 ‘엄마가 알을 낳았대’라는 동화책에도 성관계 장면이 나온다. 8·9·10세 등에게 읽어줬을 때, 어린 아이들은 편견 없이 받아들였다”며 “오히려 성기나 성에 관한 사전지식이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읽어줬을 때 더 부끄러워하고 불편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회수 도서로 포함된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는 어린이도서연구회가 지난해 10~11세를 권장 연령으로 생활 과학 분야의 추천 도서로 선정했던 책이기도 하다. 

이 위원장은 해당 도서를 추천했던 이유에 대해 “성기에 대한 관심, 성징이 나타나면서 남녀 구분이 명확해지는 시기가 10~11세 사이라고 판단했다”라며 “성별·지역· 인종을 떠나 출생 과정에 관해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여자와 남자의 성기를 성기로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생식하는 과정이라는, 그야말로 교육서로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동의 책을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라며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하연 라라스쿨 대표는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도서와 관련된 논란이 생소하지 않다”며 최근 일어났던 ‘콘돔실습’ 논란을 언급했다. 지난 7월 전남 담양 한 고등학교 교사가 바나나에 콘돔 끼우기 연습을 하려다 학부모 반발로 중단된 사건이다. 전남도교육청은 교사가 실습에 앞서 성교육의 중요성과 자존감 수업을 병행했고,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피임 등 성교육은 필수라 적절한 수업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수업 진행 과정에서 학부모 의견을 듣지 않은 점을 사과했다. 

노하연 라라스쿨 대표는 “부부가 힘을 합친다는 의미를 되새긴다면 이런 표현들은 교육을 위해 넣은 표현구임을 알 수 있다”고 해석했다./ 자료=김병욱 의원실

노 대표는 “책에는 엄마와 아빠가 힘을 합쳐 아기를 갖고 아기를 갖는 방법이 성교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멋진 일이기도 하고, 때로는 신나고 즐거울 수도 있다”며 “물론 이 과정이 매번 즐겁거나 신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책에 나와 있듯 성관계를 한다고 무조건 아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고, 또 부부가 힘을 합친다는 의미를 되새긴다면 이런 표현들은 교육을 위해 넣은 표현구임을 알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해당 도서가 문제가 됐다면 남성의 성기를 음경이 아닌 고추라고 표현한 것, 여성의 외부성기에 대한 내용이 삭제된 것, 고추를 질에 넣고 싶어진다는 남성 중심의 성관계 표현, 자연임신 외 계획임신이나 인공임신이 누락된 것 등이 문제가 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노 대표는 “성은 포괄적으로는 나에 대한 이해, 신체에 대한 탐구, 타인을 이해하는 것, 다양한 관계를 맺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며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교육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봐야 하고, 우리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늘 잘못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