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류호정의 원피스와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

의상의 심리학

2020-08-25     김진국 문화평론가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에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21대 국회에 최연소로 입성한 류호정 의원(이하 류호정). 그녀는 1992년생으로 만 28세이다.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 보유자는 김영삼(1927-2015) 전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 1954년 제3대 국회에서 만 25세의 나이로 당선되었는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헌정사상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점 이외에는 존재감이 없었던 무명의 류호정은 21대 국회 첫날부터 화끈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초대형 사고를 쳤다. 물방울 무늬의 분홍색 원피스에 노란색 마스크를 끼고 개원식에 참석한 것이다. 누가 봐도 눈에 확 띠는 복장이었다. 왜 ‘사고’라는 표현을 사용하느냐고 마뜩잖아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좀 있다 하기로 하자.

류호정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50대 중년 남성 중심의 국회라고 하는데, 검은색이나 어두운 색 정장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측면, 그런 관행들을 좀 깨보고 싶었다. 사실 국회의 권위라는 것이 양복으로부터 세워진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민들을 위해 일할 때 비로소 세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관행이라는 것도 그렇다. 우리가 지금 한복을 입지 않지 않나. 관행이라는 것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저는 일 잘할 수 있는 복장을 입고 출근했다고 생각한다.”

류호정은 자기 주장이 확실한 젊은 세대답다. 자신이 원색적인 원피스를 입고 온 이유를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밝힌다. ‘중년 남성 중심의 국회 관행’을 깨보겠다는 페미니스트적인 주장이 그 하나이다. ‘일 잘할 수 있는 복장’을 입겠다는 실용주의적인 목적이 또 다른 하나이다. 류호정의 이런 행동과 주장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옷이 가지는 기능과 그것의 상징적 의미는 크다. 잘 알다시피 옷은 추위와 더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제2의 피부’라는 표현이 이러한 옷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보호기능을 잘 표현한다.

그뿐일까? 옷은 ‘제2의 자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옷을 통해서 예의를 지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종교, 혈통, 가치관을 표현해 왔다. 자신의 계급과 지위를 표현하는 방식도 옷을 통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옷은 시간과 장소와 상황은 다를지 몰라도, 자신의 고유한 3가지 기능 즉, 보호, 예의 지키기, 표현으로서의 기능을 언제나 충실하게 구현해왔다.

2000년대 초 나는 한때 개량한복 바지를 즐겨 입었다. 개량한복은 일단 바지통이 넓어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보호기능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아주 공식적인 자리를 빼고는 일상적인 생활복으로서 예의를 지키는 데도 크게 문제가 없다.

문제는 표현의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개량한복은 실용성에만 편중되어 디자인이 세련되지 못하다. 심하게 말하면 옛날 머슴옷처럼 보인다. 어쨌거나 나는 편해서 입고 다녔는데, 아내는 내가 촌스러운 머슴 같은 사회적 신호를 전달하는 행위가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개량한복 바지는 내 일상에서 사라졌다.

“옷을 입으면 반드시 사회적 신호를 전달하게 된다.” 심리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말이다. 그는 복장은 우리 몸의 언어, 즉 바디 랭귀지와 같다고 단정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의식중에 그런 그래프를 그리고 있으며, 온갖 만남 속에서 다른 사람의 옷이 전달하는 많은 신호를 자기도 모르게 읽어낸다. 그렇게 해서 복장은 제스처, 표정, 자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신체언어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에도 명망높은 안동의 종가집에서는 종손이 제사를 지낼 때 아무 옷이나 함부로 입지 않는다. 그는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정해진 복장으로 의관을 정제한 다음에 제례를 주관한다. 많이 느슨해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결혼식장에 갈 때 반드시 정장에 가까운 단정한 옷차림을 한다. 장례식장에 갈 때도 밝은 색은 피하고 가능한 어두운 계통의 옷을 입지 않는가. 남성의 경우 넥타이는 가능한 검정색 넥타이를 착용하는 게 상식이다.

경조사에서만 이렇게 옷을 입는 규칙과 에티켓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TPO 즉 시간(Time)과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적절하게 옷차림을 바꾸는데 익숙하다. 여름날 동네 친구들과 치맥 한잔하러 마실을 갈 때에는 반바지에 라운드 티를 입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으로서 기업체 면접을 하러 갈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단정하게 이발을 하고 신사복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갈 것이다. 한여름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아찔할 정도로 몸매가 다 드러나는 비키니를 입던 여성이라도, 그런 정도의 노출 수위를 유지한 복장으로 평일 낮 명동거리를 활보하지는 않는다.

만 28세라는 나이를 고려해볼 때 류호정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취업준비생 신세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만일 그녀가 면접관 앞에 나간다면 국회 개원식날 입었던 것과 동일한 복장으로 나갔을까? 나는 아닐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 더 개방적인 미국 청년들의 경우는 어떨까. 평소에는 히피족처럼 긴 곱슬머리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기괴한 무늬의 상의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며 자유분방해 보이던 젊은 친구들. 그들도 월스트리트의 금융권에 취업하기 위한 면접일에는 신사복 정장에 깔끔하게 면도한 모습으로 나간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이날 류호정의 복장을 두고 지난 2003년 국회의원 선서식에 참석한 유시민 당시 의원(이하 유시민)을 떠올린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날 유시민은 신사복 차림의 정장이 아니라 흰색 면바지에 라운드 티와 캐주얼한 마이를 걸치고 나왔다. 머리도 짧게 친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이른 바 유시민의 ‘빽바지 사건’이다.

2020년 류호정의 옷을 두고도 말이 많은데, 17년 전이었으니 오죽했으랴. 국회가 발칵 뒤집혔다. 끝내 유시민은 그날 선서를 할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정장으로 갈아입고 선서를 해야만 했다. 왜 그랬을까? 유시민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제가 약간 삐딱해요. 짙은 색 정장으로 거의 다 남자들인 국회에 넥타이 매고 다니면서 하는 짓들은 엉망이죠. 그래서 캐주얼 정장을 입지 뭐, 그렇게 생각했어요.”

류호정도 유시민을 의식했다는 말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2003년도 유시민의 발언이나 2020년도 류호정의 발언은 빼다박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시민의 2003년 국회의원 개원식 선서 사건의 빽바지만 기억하지, 그 몇 년후인 2006년 보건복지부장관 청문회에 나왔을 때의 유시민의 모습과 대비시켜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장관 후보자 시절의 유시민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단 후보자로 내정되었을 때 유시민의 모습은 개성이 뚜렷한 예전의 유시민이 아니었다. 빽바지사건의 주인공은 사라지고 없었다. 청문회장에 나온 유시민은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정보기관 요원이나 경호원 같은 모습이었다.

2대 8로 단정하게 갈라 무스를 바른 헤어스타일에 황금색 테를 두른 금속 안경까지 쓰고 나온 것이다. 마치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판서를 제수받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며 바짝 엎드린 시골 선비의 모습을 연상시켰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유시민이 국회의원 선서일과 장관 청문회장에 나왔을 때 복장이 서로 바뀌었더라면 그나마 나는 유시민의 용기와 진정성을 이해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류호정은 자신의 복장을 언급하면서 한복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복하면 떠오르는 국회의원은 한복 두루마기에 수염을 기르고 고무신을 신고 다녔던 강기갑 의원이고, 강기갑하면 사람들은 소위 ‘공중부양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지난 2009년 1월 미디어법 개정을 앞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 강기갑은 국회사무총장실을 난입했다. 그리고는 예의 두루마기 차림으로 총장실 탁자 위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그날의 사건은 많은 국민들에게 ‘진보=폭력’이라는 이미지를 덮씌운 패착이었다. 문제는 한복과 고무신의 이미지마저도 좋지 않게 만들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카톨릭 수도회의 수도자였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든 강기갑의 폭력이 문제였지, 한복이 공중부양과 무슨 관련이 있으며, 한복이 폭력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빽바지 사건과, 공중부양 사건의 주인공들은 그때 일을 후회하지 않을까?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삐딱이 기질이 있어서 괜히 그렇게 했습니다. 다른 걸로 해도 되는데. 지금은 후회합니다.” 강기갑의 말도 비슷하다. “17·18대 국회 폭력은 강기갑이가 원조였던 거 같습니다.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은 국민에게 엄청난 혐오감을 줬습니다. 거기에 2등 가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로 가장 큰 책임자가 저였습니다. 지혜롭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유시민과 강기갑 두 사람 다 과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 나는 언론 보도를 통해 그들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 형식에 집착했던 과거 자신들의 객기어린 행동을 반성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그들의 나이를 생각했다. 환갑을 넘긴 유시민, 70이 다 되어가는 강기갑.

이제 막 국회의원이 된 20대의 류호정. 1인 방송의 진행자이기도 했던 그녀는 영리하다. 자신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색 마스크를 쓰고 나오면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지 잘 안다. 분홍색과 노란색의 보색대비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유호정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노련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세웠고, 그렇게 사고를 치겠다는 그녀의 전략은 주효했다. 마치 지난날의 유시민과 강기갑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애플사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대중 앞에 나설 때에는 반드시 검정색 티와 청바지를 입고 나욌다. 그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러나 그것은 스티브가 창업주이자 동시에 CEO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어느 누구도 대기업 회장 앞에서, 혹은 장관 앞에서 스티브와 같은 복장으로 브리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그것이 본질도 아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평가는 그의 복장 스타일이나 멋진 브리핑 스타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IT기기를 만들었다는 선구적인 혜안과 능력에서 나온다.

마치 옛날 국산 자동차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포니’라는 자동차를 만들며 자동차 국산화의 신기원을 만들었던 ‘포니정’ 정세영 회장에 대한 평가가 그의 밑단이 헤진 바지와 뒷굽이 닳은 구두를 즐겨 신었던 검소함에서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류호정이 그냥 유시민이나 강기갑처럼 본질이 아닌 형식에 얽매이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정치인으로 남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만큼 선망의 대상이자, 중차대한 직무를 가진 직업도 없다. 반대로 국민에게 위임받은 막강한 권력에 비해서 아무것도 책임지는 일도 없고 큰소리만 칠 수 있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세상 편한 직업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국민들의 극한의 불신을 받는 직업이기도 하다.

나는 류호정이 국회의원이라는 본연의 직무에 충실한 국회의원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국회의원이라야만 비로소 가능한 객기어린 행동을 하다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류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옷이 가진 기능과 상징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직무를 놓고 말할 때에는 직무가 본질이지, 복장이 본질은 아니다.

나는 류호정 의원이 사고를 치더라도 엉뚱하게 비본질적이고 형식적인 복장과 같은 문제로 사고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의 본질인 의정활동으로, 입법행위로 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제대로 된 사고’를 쳐달라는 것이다. 내가 류호정 의원에게 주문하는 이런 소망은, 아마도 우리 국민들이 21대 국회의원 전원에게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김진국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
대학, 언론, 정부부처, 공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 기반으로 한 융복합적 콘텐츠 개발하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심리학자, 의학사, 의학석사, 대체의학박사(수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