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여성독립운동가 김정숙, 대적심리공작으로 일본군을 휘어잡다

(13)김정숙, 광복군 심리∙선전 전문가

2020-08-17     김수진 기자

여성경제신문∙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공동 기획

광복 75주년 기념 ‘오늘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항일독립운동가는 300여 만 명. 그러나 2019년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825명, 이들 중 여성독립운동가는 3%인 472명에 불과하다.

여성경제신문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외 공동으로 유관순 열사와 같이 또렷이 기억해야 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75분을 1차로 8월부터 10월까지 소개한다.

아울러 항일 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던 미국에서 그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초상화 전시회가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10월 중 열릴 예정이다.

김정숙_최원규作 /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김정숙 金貞淑 (1916~2012)

운동계열 : 광복군   |   훈격(서훈년도) : 애국장(1990)

평남 용강 출신인 김정숙 선생은 1919년 부친 김붕준(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장 역임)을 찾아 어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망명했다. 1937년 광둥성 중산대학 재학 중 언니 김효숙(건국훈장 애국장, 1990)과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해 항일독립운동에 나섰다.

1938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했으며, 1940년 6월에는 중경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조직해 상임위원 겸 선전부장으로 활동했다. 같은 해 9월 광복군이 창립되자 여군으로 입대해 대적심리공작을 수행했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의정원 비서, 법무부 비서 겸 총무과장에 임명됐다.

1945년 심리작전 부문을 중요시하게 된 광복군 총사령부가 작전처 내에 심리작전 연구실을 신설하게 되자 이곳에 파견되어 보좌관으로서 한국어를 전담하여 전단 작성, 전략 방송, 원고 작성 등 각종 심리 작전을 수행했다. 1945년 11월까지 임시정부 국무위원의 주화대표단 비서처 비서로 활동하다가 귀국했다. 지난 2012년 7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초상화 작업이기에,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자료도 없었고, 그나마 있는 사진들도 흐릿한 흑백 사진이 대부분이었죠. 김정숙 선생의 경우는 최근 별세하셨기 때문에 사진이 있었지만, 다른 분들의 경우는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업에 가장 주안점을 둔 곳은 ‘눈’입니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고 하죠. 삶의 흔적이 드러나는 주름 등에도 신경을 썼으며, 채도가 낮은 색을 사용해 온화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최원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