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언박싱] 심상정 수해사진 논란으로 본 ‘이미지 정치’
국회의원 의정활동 보고서의 ‘인증 샷’, 보좌진들의 골칫거리 센스 있는 정치인, 조용히 봉사활동 후 사진 찍지 않고 복귀하기도 일부 네티즌 “정치인들의 재난현장 방문 금지법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10여년만의 최악의 물난리로 여러 가지 논란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수해복구 사진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정의당이 공개한 심 의원의 봉사활동 장면을 본 네티즌들은 “옷이 왜 그렇게 깨끗하냐”며 면박을 줬습니다. 정의당은 서둘러 깨끗한 옷 사진을 삭제하고 진흙이 묻은 사진을 다시 올렸습니다. 정치가 아무리 이미지를 먹고 사는 것이라고 해도 이런 논란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옷에 흙만 잔뜩 묻히면 진정성 있는 활동으로 보일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진작부터 정치인들의 ‘사진 연출’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었습니다. 산불참사나 수재현장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장면을 찍어 언론홍보용으로 돌리는 것을 정치인들은 무척 선호합니다. 실제로 의정활동 보고서를 만들 때 보좌진들이 가장 고심하는 것이 ‘인증 샷’입니다. 그림이 될 만한 사진을 메인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의원의 의정활동 평가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좋은’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서민과 같이 활동하는 사진’이 단연 인기가 좋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재난지역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원님들 현장방문으로 의전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실무자들은 재난복구보다 의원 뒤치다꺼리에 더 신경을 쏟습니다. 민폐인 것이죠. 그래서 센스가 있는 정치인들은 조용히 현장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사진도 찍지 않고 그대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후에 그 장면을 포착한 사람이 SNS에 올려 뒤늦게 화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정숙 여사의 ‘몰래 봉사’가 최근 화제가 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가 가능합니다.
몇 번의 낙선 끝에 21대 국회에 복귀한 한 다선 의원은 사진 찍기의 ‘달인’이었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대통령이나 당대표 등 VIP가 출동하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항상 그들 옆에 자리를 절묘하게 차지하고는 합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어색해하며 자리싸움 하는 것을 피하지만 일부 의원들은 메인 프레임에 들어가려고 필사적으로 자리다툼을 벌입니다. 이미지 정치가 낳은 씁쓸한 이면입니다. 현장에 가면 사진기자들이 각종 포즈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정말 순한 양처럼 말을 잘 듣습니다. 생각없이 기자들의 연출 명령을 따르다가 큰 곤욕을 치렀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보온병 포탄 오인 논란’이 떠오르는군요. 벌써 10년 전의 일입니다.
이번 수재현장 사진 논란도 결국은 이미지 정치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입니다. 정치 혁신의 첨단에 서 있다고 자부하는 정의당마저 그런 고루한 행태로 비판을 받는 장면이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심상정 의원도 별다른 생각 없이 수재현장에서 보좌진들이 주는 깨끗한 ‘활동복’을 입고 몇 차례 포즈를 잡았을 것으로 봅니다. 의원들이 재난지역에 가면 1시간 정도 활동하는 게 고작입니다. 사진기자들의 동선과 스케줄도 있고 현장의 애로사항도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인의 재난지역 방문은 가는 사람이나 반기는 사람이나 모두 ‘사진 찍으러 가는구나’ 이렇게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몇 십 분 반짝 열심히 하면 그만입니다. 물론 정치인의 방문으로 언론이 따라가서 보도를 하게 되면 현장피해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가 되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전국의 국민들이 주변에서 발생하는 각종 재난장면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전송해주는 시대가 됐습니다. 언론도 각종 제보를 독려하며 국민들이 보내온 사진으로 재난장면을 생생하게 보도합니다. 굳이 정치인들이 현장을 방문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아도 쏟아지는 제보와 정보로 재난지역의 피해 심각성을 국민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굳이 정치인들이 방문한다고 해서, 예전과 같이 미디어 노출이 힘들었던 시대가 아닌 이상 홍보 효과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결국 이번 사진 해프닝은 정치가 그 수요자(국민)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홍보하기 위해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공급자(정치인)의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해외의 한 정치인은 현장을 방문해서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맨 끝에서 포즈를 취한다고 합니다. 국민들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가운데 세우고 정치인은 가장자리를 차지합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장면 아닐까요. 국민들 들러리 세우듯 일렬로 세우고 정치인이 그 중심에서 주인공의 지위를 향유하는 관행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심상정 의원의 깨끗한 옷 사진 논란도 심상정이 주인공이 아니라 무너진 집과 망연자실해 울부짖는 피해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얼굴이 주제가 되었으면 어땠을까요? 정의당이 심상정 의원의 사진은 아주 작게 처리하고 피해지역의 생생한 장면을 여러 장 배포했다면 국민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이번과 같은 ‘깨끗한 옷 입고 쇼 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을까요? 이는 정의당뿐 아니라 여의도의 모든 정당들이 그냥 생각없이 관행에 젖어 정치인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국민들을 들러리로 만드는 수직적인 권력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사진 한 장으로 논란이 된 것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수요자(국민) 중심이 아니라 여전히 권력자와 공급자(정치인) 중심의 관행에 젖어 있습니다. 현장을 방문해 피해지역주민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이제 냉철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의정활동 메인사진으로 쓰려고 연출을 하는 의원님들을 위한 사진이라면, 이제 국민들이 그 들러리 서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사진 한 장에도 국민이 주인 되는 장면이 담겨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 아닐까요? “정치인들의 재난현장 방문 금지법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일갈한 한 네티즌의 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