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언박싱] 홍수피해 ‘4대강 사업’ 때문?

섬진강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된 탓에 피해가 컸다” 낙동강 “4대강 사업 때 건설한 보 때문에 제방이 무너졌다” 청와대 참모들이 문 대통령의 비 피해 책임론 물타기로 4대강 사업 책임론 제기 의혹도

2020-08-12     노승주 언론인
지난 8일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주변 마을이 물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정치권이 4대강 사업 책임론으로 뜨겁습니다. 집중호우로 인한 섬진강과 낙동강 제방 붕괴 사태가 4대강 사업 적정성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4대강 보가 홍수 조절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실증, 분석할 기회”라며 “댐의 관리와 4대강 보의 영향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깊이 있는 조사 및 평가를 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정치권에서는 때 아닌 4대강 책임론이 불붙고 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4대강 사업을 지류․지천으로 확대해 관리를 잘 해나갔다면 오늘의 물난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즉각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4대강 때 조성한 보만 없었어도 이렇게 큰 물난리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색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번 물난리는 근래 들어 최악의 자연재해입니다. 코로나19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와중에 터진 비피해로 국민들의 경제난은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상이변에 따른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 9년 만에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재산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이 수천명(7000여명) 발생했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피해가 큰 섬진강과 낙동강은 4대강 사업에 관한 한 1승 1패를 이룬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섬진강은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된 탓에 피해가 컸다”는 지적을, 낙동강은 “4대강 사업 때 건설한 보 때문에 제방이 무너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여야가 서로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사례가 발생한 것입니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22조원을 들여 2009~2013년에 진행한 사업입니다. 당시 정부는 기존에 없는 예산과 관련 예산을 깡그리 끌어 모아 무려 22조원을 만들어냈습니다. 야당인 민주당에서는 예산낭비라며 엄청나게 비판을 했습니다. 당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4대강 사업을 통해 홍수 조절 능력을 9억2000만㎥으로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4대강 사업 뒤의 효과에 대해서도 큰 줄기의 진실이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입니다. 친여 성향의 매체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이 홍수 예방과 큰 연관이 없다고 밝혔고, 2014년 국무총리실 산하 4대강조사평가위원회는 홍수 위험이 줄었지만 계획에는 못 미쳤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8년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의 홍수 예방 기능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친야성향의 매체들은 4대강 사업의 일부 성과들을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일부 매체는 박근혜 정부의 민관 합동 ‘4대강 사업 조사평가위원회’ 2014년 발표 보고서를 인용해 “4대강본류 주변에서는 홍수 위험이 낮아졌다. 본류 주변 전체 홍수 위험지역 807.95㎢의 93.7%인 757.11㎢ 지역에서 위험도가 감소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낙동강 본류 인근 지역의 한 주민 말도 인용, “4대강 사업 이후 홍수는 확실히 줄었다. 그 전에는 비만 오면 홍수가 나서 손해보상금을 받는 일이 잦았는데, 사업 이후 홍수 피해가 줄어 만족스럽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9일 오전 낙동강 제방 유실로 침수된 경남 창녕군 이방면 일대 모습. / 연합뉴스

이번 홍수 사태의 핵심 쟁점은 지류·하천입니다. 대부분의 피해가 본류가 아닌 지류·지천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하천 피해액 중 소하천 피해액의 점유율은 80% 이상입니다. 이 때문에 4대강 사업 당시 환경단체 등에서는 “본류 대신 지류·지천의 치수사업을 하라”고 요구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본류 치수사업이 더 시급하다고 봤습니다. 4대강 사업 종료 이후 지류·지천에 대한 대규모 치수 사업 진행도 검토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됐습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는 대규모 치수사업을 전혀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속은 타들어갈 것입니다. 코로나19를 선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물류창고 화재 등의 인재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이번에는 근래 들어 최악의 물난리가 나자 깊은 책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을 국가안전 시스템의 붕괴로 인식하며 ‘인재’만은 막아야겠다는 소신이 뚜렷합니다. 비록 이번 물난리가 자연재해이긴 하지만 평소 제방을 튼튼히 보강하고 관개시설을 미리 정비했다면 그 피해가 줄어들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뼈아플 것입니다.

‘꽃이 피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임금 책임이다’는 전통적인 ‘주군 DNA’가 남아있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해보면 문 대통령이 여름휴가도 물리치고 물난리 대처에 올인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물난리가 최악의 상태로 고조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4대강 책임 소재 규명을 요구한 것이 과연 적절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정무라인이 문 대통령의 비피해 책임론을 물타기 하기 위해 4대강 사업 책임론으로 빠져나가려 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제기합니다.

사실 여야가 힘을 합쳐 국가역량을 피해지역 복구에 전력을 기울여도 될까 말까한 이 시국에 난데없는 4대강 책임론은 국민들의 쓰린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그 책임소재를 따진다고 해서 당장 달라질 게 뭐가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피해부터 수습하고 봐야지, 책상머리 앉아서 여당이 야당이 서로 물어뜯으며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따져본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홍수관리와 같은 국가적 안전시스템이 여야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며 왜곡되고 있는 현재의 정치 현실입니다. 여당은 어떻게 해서든 4대강 사업의 폐해를 이번 홍수와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고, 야당은 4대강 사업 때문에 그나마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여야의 진흙탕 싸움에 국민들은 헷갈립니다. 도대체 누구 말이 옳은 것인지,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3개 정권이 이어지면서 4대강 사업은 정파적 사안으로 변질됐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덤터기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4대강 사업 책임 논란의 본질입니다. 비록 이전 정권과 결을 달리 한다고 해도 잘한 일은 잘 했다고 인정하고 계승하면 되고, 잘못된 일은 철저하게 원인규명을 해서 시행착오를 줄여야하는 것이 책임있는 국가 지도자의 자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