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여성독립운동가 권기옥, 하늘 위 항일독립운동 책임자

(4)권기옥,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

2020-08-06     김수진 기자

여성경제신문∙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공동 기획

광복 75주년 기념 ‘오늘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항일독립운동가는 300여 만 명. 그러나 2019년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825명, 이들 중 여성독립운동가는 3%인 472명에 불과하다.

여성경제신문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외 공동으로 유관순 열사와 같이 또렷이 기억해야 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75분을 1차로 8월부터 10월까지 소개한다.

아울러 항일 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던 미국에서 그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초상화 전시회가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10월 중 열릴 예정이다.

권기옥_作박민지 /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제공

권기옥 權基玉 (1903~1988)

운동계열 : 중국 방면   |   훈격(서훈년도): 독립장(1977)

평남 평양 사람인 권기옥 선생은 1919년 평양에 있는 숭의학교 졸업반 시절 3∙1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주 동안 구류됐다. 이후 동창유지 및 임시정부 연락원들과 공모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임시정부 공채를 대량으로 판매해 임시정부로 송금하는 등 항일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감했다.

출옥 후 1920년 평양청년회 여자 전도단을 조직한 후 여자전도대상으로서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하고, 비밀공작도 전개했으나 일본 경찰에 발각되자 그해 9월 상해로 망명했다.

상해 도착 후 그녀는 임시정부에서 활동했으며, 1923년 운남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 졸업 후 공군에서 한국 최초의 여류 비행사로 복무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중국 충칭에 있는 국민정부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어 후진 양성과 함께 적 정보를 연구하는 한편 1943년 한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사교 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광복을 맞이하기 전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