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른들은 그림책에 푹 빠졌을까? ‘그림책 37도’ 대표 황유진

2020-07-28     김수진 기자
그림책 모임을 진행하는 황유진 작가 / 그림책 37도 제공

“어떤 그림책이 좋은 책인가요?”

그림책 테라피스트이자, 그림책 37도 대표 그리고 지난해 그림책 에세이인 ‘어른의 그림책’을 펴낸 황유진 작가를 만난 자리에서 물었다. 황 작가의 대답은 간결했다. 정답이 없다는 것.

“그림책 모임이나, 강의할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에요. 서점에 가면, 그림책이 참 많잖아요. 베스트셀러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안 맞을 수 있거든요. 우선 내 취향에 맞는 책부터 읽어보세요. 그림이 마음에 든다든지,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든지. 그렇게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자신만의 기준, 목록이 생겨날 거에요.”

자신을 ‘어른들과 만나서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황 작가는 지난 10년간 대기업에서 일하며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워킹맘이었다. 대다수 워킹맘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육아와 일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그림책을 많이 읽어줬어요. 당시 저에게는 그림책이 숨구멍이 됐던 것 같아요. 육아와 일에 지친 저에게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으로 치유가 됐거든요. 아이의 마음을 더듬어 볼 수 있을뿐더러, 어느새 제 마음도 돌보게 되더라고요.”

‘그림책 읽어주는 엄마’라는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대학 전공을 살려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번역’ 수업을 들으면서 황 작가는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일과 일상을 잇는 매개로 ‘그림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예술심리교육센터 마인드플로우에서 그림책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한 지 1년여 지난 2018년, ‘그림책으로 전하는 0.5도의 위로와 감성’이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책 37도’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어른들이 그림책으로 마음을 살피도록 돕는 그림책 정기 모임 및 영유아 부모를 대상으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한 그림책 시간’이라는 그림책 읽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책을 볼 때 이야기 자체에 풍덩 빠져서 놀듯이 그림책을 봐요. 반면 어른들은 책에서 계속 나를 발견하면서 보죠.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그 장면이 왜 좋은지,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묻고 답하다 보면 다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로 귀결되거든요. 그림책을 읽으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지금 나에게 뭐가 필요한지 더 촘촘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첫 책인 ‘어른의 그림책’에서 황 작가는 자아, 사랑, 인연, 이별, 기억 등 인생의 주요한 가치를 짚어주는 36권의 책을 소개하고, 여기에 같이 읽으면 좋은 책 3~4권을 추가로 추천했다. 그녀가 좋아하고, 그림책 모임 참가자들을 감동하게 했던 총 130권의 책은 그림책에 처음 입문하는 이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림책 모임을 하다 보면,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 좋다고 생각하는 장면, 부분이 다 달라요. 똑같은 장면을 좋아해도 이유는 각자 다르죠. 최근 어른들에게 그림책이 인기 있는 이유는 아마도 책을 읽으며 내 안에 살고 있는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어서일 거로 생각해요. 어른이기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에서 해방되는 순간 느끼는 행복감이 그림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책은 누군가 읽어줬을 때 빛을 발하는 매체’라고 강조한 황 작가는 앞으로 그림책을 함께 읽고 소통하는 자리가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그림책의 힘을 느껴보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황유진 작가가 여성경제신문 독자를 위해 ‘여름에 읽으면 좋은 그림책’ 3권을 추천했다. 따뜻하고 섬세한 그림에서 부드러운 위로를, 강렬하고 독특한 그림을 통해서는 재미를 맛보기를 바란다.

 

<여름> 이소영 (글로연, 2020)

덥고 습하고 끈적거리는 계절이지만, 또한 그래서 잠시 쉬어갈 수 있고 만물이 익어가도록 도와주는 계절 여름. 여름의 맛, 여름의 색, 여름의 냄새 등 여름날의 추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이글거리는 붉은빛과 청량하게 익어가는 초록빛의 색채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래봤자 개구리>, 장현정 (모래알, 2020)

작은 알에서 올챙이로, 마침내 개구리가 되었지만, 성장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그래봤자 개구리"라는 말들에 짓눌리고 마는 개구리의 모습이, 꼭 우리와 닮았다. 자꾸만 자신을 작고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말들 앞에서, 시원하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개구리의 외침이 통쾌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달팽이 학교>, 이정록 글 /주리 그림 (바우솔, 2017)

이정록 시인의 시에 그림을 붙인 시그림책. 사람의 눈에는 느려터져 보여도, 달팽이들은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며 충만하게 삶을 유지해간다. 느긋함에서 오는 여유와 재치, 시원한 초록과 생생한 빨강의 대조가 마음을 싱그럽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