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아파트 옥상에서 김훈과 루쉰을 생각함

“방아풀은 잡초인가, 약초인가?”

2020-06-15     김진국 문화평론가
방아풀 / 필자 제공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작가 김훈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이렇게 시작한다. 전란으로 폐허가 된 남해안 어딘가 외딴 섬에도 어김없이 봄이 왔음을, 그 허무함 속에 피는 꽃의 감동을 김훈은 단 11자로 기가 막히게 압축해냈다.

그는 수필집 ‘바다의 기별’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자연에 어떤 작위적인 요소를 들이대는 것은 인간의 문명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원균이 이끈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이기고 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순신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꽃은 피고 계절은 바뀐다. 문명의 장난과는 무관한 엄중한 자연의 섭리를 강조하고 싶은 김훈의 심리가 읽혀진다.

루쉰은 그의 산문 시집 ‘들풀(野艸)’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잡초는 그 뿌리가 얕고 꽃과 그 풀잎 또한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이슬을 마시고 물을 흡수하고, 땅에 묻힌 죽은 자의 피와 살을 빨아먹고 생존한다. 살아있는 동안 짓밟히고 깎이우고 드디어 사멸과 부패에 이른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잡초를 사랑한다. 나를 위하여, 벗과 적을 위하여, 인간과 짐승을 위하여, 사랑하는 자와 사랑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나는 이 들풀이 어서 죽고 썩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전에 생존한 적이 없었을 테고, 이는 죽고 썩는 것보다 불행하다. 나의 서문을 따라서 가라! 들풀이여."

루쉰은 주위에 흔하고 미관상 아름답지도 않지만 자연 생태계 속에서 순환하며 명맥을 잇는 잡초의 그 끈질긴 생명력에 주목한다. 그 모습이 중국식 표현으로 '라오바이싱(老百姓)' 즉 일반 백성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고 본 것 같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김수영이 그의 시 ‘풀’에서 노래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루쉰의 말은 어렵고 겉돈다. 잘 와 닿지 않는다. 전형적인 지식인의 현학 스타일을 보여준다. 잡초같은 인생을 사는 민초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안다. 하지만 너무 '억지 춘향' 격으로 그의 생각을 잡초에 강제로 감정이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가수 나훈아의 트로트 ‘잡초’가 더 진솔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쿵작~ 쿵작~ 뽕짝의 두 박자 선율 속으로 '이름도 없고', '향기도 없는' 잡초의 애절함이 전해온다.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다소 유치한 신파조임에도 불구하고 공감이 간다. 21세기의 도시인도 콧노래로 따라 흥얼거릴 법하다.

잡초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분히 인위적이고 어색하다.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본초식물'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 '농작물과 비교하여 가치가 떨어지는 식물' 등등… 하나같이 사람 위주의 실용적인 사고방식이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볼 줄 모르는 인간의 인색함과 옹졸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 아내와 나는 작년 여름에 고향에서 가져온 방아풀씨를 아파트 옥상에 심었다. 스티로폼 박스 두 군데에 꽃집에서 사온 흙을 담아 작은 텃밭을 대신할 수수한 화분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삼일에 한 번 씩 물만 주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엄청난 양의 방아 잎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적당한 때를 골라 자주 방아 잎을 따서 깨끗하게 씻어서 그늘에 말린 뒤에 비닐봉지에 넣어 보관하곤 했다.

방아풀의 이파리는 생김새가 천생 작은 깻잎을 닮았다. 하지만 강렬한 향기는 깻잎이 따를 수 없다. 대전 이북 사람들은 방아 잎의 향기가 너무 강렬해서 음식에 향신료로 넣어주면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마치 중국과 베트남 음식에 많이 들어가는 시앙차이(香菜) 즉 고수풀을 봤을 때의 거부반응과 유사하다.

남도사람들에게 방아 잎의 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그냥 깻잎처럼 나물이나 쌈을 싸서 먹기도 하고, 각종 찌게에도 단골로 들어간다. 특히 생선 비린내를 없애 주기 때문에 생선회나 매운탕 등에 많이 넣어 먹는다. 물론 육개장이나 추어탕에도 필수품이다. 보신탕에도 들어간다.
끓는 물에 우려서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올해도 작년에 심어 놓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방아 이파리가 무성하다. 덕분에 나는 라면을 끓여 먹을 때조차도 반드시 방아 이파리를 듬뿍 집어넣는다. 라면의 기름끼를 덜어주고 맛을 상큼하게 해준다.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풍미를 알지 못한다.

방아풀은 한약재로도 쓰인다. 한방에서는 생김새가 콩잎과 닮았고, 향기가 많이 난다고 해서 콩 곽자에 향기 향자를 써서 곽향(藿香)이라고 부른다. 매우 중요한 상용약재다.

몸안에 습기를 제거하고 해열이 필요할 때 많이 쓴다. 지사 작용, 건위 작용도 있다. 대표적인 방제로는 '곽향정기산'이 유명하다. 소화불량을 겸한 감기에 많이 처방된다.

내가 왜 이리 방아풀, 즉 곽향의 효능에 대해서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느냐고? 방아풀은 얼핏 보기에는 들판에 아무렇게나 자생하는 들풀에 불과하다. 특별히 신경 써서 재배하지 않아도 잘 자란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향신료나 요리 재료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한약방에서는 제법 귀한 약초로 대접을 받는다. 잡초 같지만 단순한 잡초는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냥 자연 속의 식물을 제멋대로 분류하고 이름 붙인다. 자신들만의 실용적인 시각으로 쓸모가 있네 없네 말이 많다.

그러나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자연일 뿐이다. 방아풀이 이름이 없으면 어떻고 곽향이면 또 무엇하랴. 방아풀의 입장에서는 무명(無名)의 잡초든, 유명(有名)한 약초든 다 인간세의 일일 뿐이다.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를 쓰게 된 배경을 노산 이은상이 번역한 ‘난중일기’를 여러 번 읽게 되면서라고 했다. 사실을 중시하는 해군제독의 간결한 문체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연상시키는 구절이 ‘난중일기’에도 보인다.
"영주에 이르니 좌우의 산꽃과 들가의 봄풀이 그림 같았다." (임진년, 1.20)

우리 집에서 아파트 옥상에 내팽개치다시피 했던 스티로폼 박스에 올해도 어김없이 방아 이파리가 무성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문득 김훈의 ‘칼의 노래’ 첫 구절이 떠올랐다.

이어서 루쉰과 나훈아와 노산 이은상의 수필 ‘노방초(路傍艸)’가 서로 꼬리를 물고 뭉게구름처럼 피어나기에 이렇게 횡설수설 몇 자 끄적거려 본다. 대충 만든 허접한 스티로폼 박스에 핀 방아풀의 꽃. 
버려둔 상자마다 꽃이 피었다. 꽃이 그림 같았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