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왜 냉면에 가위질하면 안 되나요?”
'냉면은 겨울이 제격'이니 어쩌니 해도 추운 겨울보다 더운 여름에 냉면은 많이 팔리기 마련이다. 내 생각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냉면을 가위로 잘라 먹는 사람인데, "냉면 맛은 면발이 좌우하는데, 굳이 왜 잘라 먹냐?"며 역정을 내는 사람이 주위에 꼭 있다.
그런 이들은 나름 미식가를 자임하며 냉면의 고수임을 은근히, 아니 노골적으로 내세우곤 한다. 나는 미식가도 식도락가도 아니다. 그냥 맛있는 냉면과 그저 그런 냉면을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내 눈에는 음식마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져가며 먹는 사람은 여간 까탈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냉면을 입으로 끊어 먹기 싫어 가위를 달라고 하면, 예외 없이 시비(?)를 거는 분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기도 하다.
십여 년 전에 저명한 와인 소믈리에 한 분에게 와인 예절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말했다. "와인은 격식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마시는 것이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좋은 와인은 분명히 따로 존재하지만, 어떤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누며 마시는 게 본질이다. 어떤 와인은 어떤 잔에 따르고, 잔은 어떻게 쥐며, 마시는 방식은 이래야 한다는 데 얽매이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 아니냐?”
아닌 말로 와인 잔을 들 때, 아래 부분을 기둥(stem)을 쥐면 어떻고, 잔 자체(bowl)를 쥐면 어떠냐는 것이다. 스템 대신에 볼을 쥐면 와인 온도가 올라가서 맛이 변한다고들 하는데, 대체 변하면 얼마나 변한다고 그런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 소믈리에는 말했다.
냉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一)육수, 이(二)면발" 이 말은 남한에서 오리지널 평양냉면과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듣는 을밀대(乙密臺) 냉면의 창업주 고 김인주씨의 생각이다.
"그는 생전에 냉면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평양냉면 맛은 육수가 결정한다. 양념 맛이 겉으로 드러나선 안 된다. 고깃국물 안에 은근히 깊게 배어 있어야 제맛이 나고 뒷맛도 깔끔하다'고 가르쳤다."고 한다.(이인우, ‘서울 백년가게’, 꼼지락출판사, 64쪽)
냉면의 최고수 중의 한 사람이었을 을밀대 창업주가 보기에는, 냉면의 맛은 면발이 아니라 육수에 있다. 마치 라면의 맛을 좌우하는 것 역시 면발이 아니라 스프 맛, 즉 국물 맛인 것과 같다는 게 재미있다.
그런데 왜 굳이 냉면은 잘라 먹으면 안 된다는 속설이 생겨났을까? 아마도 긴 면발이 장수(長壽)를 상징한다고 해서 잔치상에 오른 국수처럼, 냉면도 그런 민간의 미신이 냉면에까지 전이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메밀로 만드는 냉면의 면발이 질긴 편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국수와 달리 육수나 양념이 면에 잘 배어들지 않기 때문에 긴 면발이어야 그나마 육수나 양념 맛을 좀 더 음미하기가 편하지 않았을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물자가 풍부하지 못했던 시절에 부엌에 음식 전용 가위를 둘 형편이 못 되었거나. 물론 이건 나의 별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
각설하고, 냉면을 가위로 잘라서 먹든, 입술로 잘라서 먹든 다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각자의 개성(다름)을 왜 자신만의 기준으로 틀렸다고 재단하는 걸까?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든('찍먹파') 소스를 부어 먹든('부먹파') 개인의 자유 아닌가. 라면을 쪼개서 끓이든, 통째로 끓이든 역시 자기 개성의 표현일 뿐이다.
냉면을 잘라 먹든 그냥 먹든 그건 개인의 프라이버시일 뿐인데, 그것을 옳고 그른 문제로 바꿔 버리는 것은 마치 조선시대 예송(禮訟)논쟁을 연상시킨다.
효종이 죽자, 효종의 선왕인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 년을 입는 것이 옳은 가하는 문제를 두고 서인과 남인은 치열한 논쟁을 한다. 정파적인 관점에서야 자기 정파의 당권과 자신들의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이었겠지만,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먹고 사는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부질없는 말싸움이었을 뿐이다.
안 그래도 복잡다단한 세상에 남의 냉면인생(?), 라면인생(?)에까지 끼어들 만큼 오지랖이 넓을 필요가 있을까. 낼모레 약속을 평양냉면 하는 집으로 잡을까, 함흥냉면 하는 집으로 잡을까, 그도 저도 아니면 메밀국수(소바) 집으로 잡을까 고민하다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