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세대가 신세대에게 들려주는 트롯 이야기] ⑦ 봄날은 간다

한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 1위

2020-06-03     장광팔 만담가
TV조선 '미스터 트롯'에서 '봄날은 간다'를 열창하는 가수 장민호 / TV조선 캡처

2020년 우리의 봄날은 이렇게 가고 마는가?
트롯계의 BTS 장민호(43, 장호근)가 ‘미스터 트롯’ 현역부 도전자로 출연하여 ‘봄날은 간다’를 경연곡으로 불렀다. 코로나19 사태로 꽃구경 한번 제대로 못한 채 언제 한번 보자는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무심히 흘러가는데, 어쩌자고 장민호는 조각 같은 얼굴에 눈웃음을 치며 때로는 절절이 ‘봄날은 간다’로 뭇사람의 가슴에 흐드러진 봄꽃 같은 불을 질러놓는가?

인천에서 태어난 장민호는 타고난 얼짱·몸짱·말짱의 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삭발까지 하고 ‘씹으면 머리가 좋아지는 껌’ 광고 모델로 출연한 적도 있다.
1997년 1세대 아이돌 그룹 ‘유비스’ 멤버로 ‘You will with us’로 데뷔한 22년차 가수이다. 2004년부터 1년간 발라드 그룹 ‘바람’ 멤버로 활동하다가 트롯 가수로 전향해 ‘사랑해 누나’를 발표했으나 뜨지 못하고 긴 무명 생활을 보내야 했다. 2014년 ‘남자는 말 합니다’, ‘드라마’, ‘7번 국도’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2020년 TV조선의 ‘미스터 트롯’ 최종 6위로 올라서면서 타고난 예능 감을 바탕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봄날은 간다’는 ‘시인 세계’에서 한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 1위로 선정된 쉰 세대들의 국민가요이다. 2위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조용필 노래), 3위는 ‘북한강에서’(정태춘 작사·작곡·노래), 4위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작사, 이병우 작곡, 양희은 노래), 5위는 ‘한계령’(하덕규 작사·작곡, 양희은 노래)이었다.

‘봄날은 간다’는 인기만큼이나 가사에 얽힌 사연도 많다. 
유니버설 레코드 첫 작품으로 녹음시간이 길어 초판에는 2절을 생략하고 녹음하여 발매한 어처구니없는 출생 비밀을 지니고 있다.

(1절)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2절)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3절)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그런데, 그런데! 손로원 선생 노랫말에 2015년 문인수 시인이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라는 시집을 펴내며, 노인들의 봄날을 노래하려 4절의 노랫말을 지어 보탰다.

(4절)
밤 깊은 시간엔 창을 열고 하염없더라/ 오늘도 저 혼자 기운 달아 기러기 앞에 가는 만리 꿈길에/ 너를 만나 기뻐 웃고 너를 잃고 슬피 울던/ 등 굽은 그 적막에 봄날은 간다

1954년 손로원(1911~1973) 작사, 박시춘(1913~1996, 박순동) 작곡으로 백설희(1927~2010, 김희숙) 노래이다.
1956년 대통령 후보 신익희 선생의 죽음을 예고한 듯한 가사로 유명세를 탄 ‘비 나리는 호남선’을 작사한 화가 출신의 손로원은 1911년 철원 태생으로, 6·25 피난 시절 부산 용두산 판잣집에 걸어 놓은 빛바랜 젊은 시절의 어머니 사진을 보며 시상을 다듬었다고 한다.

시대는 1954년 무렵이니 전쟁과 복구, 근대와 현대가 혼재된 시기이다. 1절의 산제비 넘나드는 걸어서 걷던 성황당길은 2절에서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로, 다시 3절에서는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로 변화되었다.

산제비는 산에 사는 제비가 아니다. 나비 목(目) 호랑나비과에 속하는 대형 나비로, 날개는 검으나 녹색과 청색 등 금속색의 비늘 가루가 아름다움을 더하는데, 여기서 산제비는 은유적으로 반가운 소식을 가리킨다.

1절에서 성황당(城隍堂)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신 당집을 일컫는바, 여기서 서낭당길은 임과의 재회를 빌러 간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2절에서 청노새란 푸른빛을 띤 노새를 가리킨다. 노새는 수나귀와 암말 사이에 난 잡종으로 생식 능력은 없으나 작은 덩치에 비해 힘이 세어 평생 짊을 나르는 데 쓰이니 태생부터 우리를 슬프게 한다.

3절에서 뜬구름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니, 덧없는 세상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 신작로(新作路)는 한자 그대로 새로 만든 길, 곧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게 새로 낸 길을 가리킨다.

그 당시 “이리 조리 가지 말고 신작로로 가자”는 선거 표어가 유행했는데, 이는 꼬불꼬불한 옛길로 가지 말고 새로 만든 넓은 길로 가자는 의미로 읽히지만, ‘이’는 이승만을, ‘조’는 조병욱을, ‘신’은 신익희를 ‘작’(장으로 발음나므로)은 장면을 은유하여, 이승만과 조병욱을 지지하지 말고 신익희와 장면을 지지하자는 표어로 쓰였던 것이다.

‘봄날은 간다’의 시적 자아(詩的 自我)는 열아홉 살의 돌아오지 않는 임을 옷고름 씹어가며 기다리는 여인이다. 오늘도 부칠 곳조차 없는 꽃편지를 내던지며 앙가슴 두드리는 여인이다.

여기서 앙가슴은 두 젖 사이의 가운데이니, 체했을 때 두드리는 명치끝을 가리킨다. 사랑이 얹혀 체한 여인은 앙증맞은 주먹으로 앙가슴을 두드려 보지만 체기(滯氣, 체끼로 발음한다)가 떨어질 리 만무하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우는 자연과 시적 자아가 하나가 되는 몰아(沒我)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옷고름 씹어가며”에서 옷고름은 가슴을 여미는 곧 마음의 문을 상징하는바, 옷고름을 씹는 행위는 마음의 동요와 울음을 삭히는 행위이다.
연분홍 치마는 무심히 봄바람에 휘날리고, 새파란 풀잎은 무심히 물에 떠서 흘러가는데, 열아홉 시절은 무심히 황혼 속에 스며들어 슬퍼지더라.
봄날은 어느 때 가는가?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가고,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가며,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화사한 연분홍 치마에 새파란 풀잎의 열아홉 시절은 그렇게 가고 만다.

작곡가 박시춘 선생은 1913년 밀양에서 권번(券番, 기생 양성소)을 운영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11세부터 유랑극단을 떠돌아다녔으며, 1931년 일본 중앙음악학교를 중퇴했다. 시춘(是春)은 춘사 나운규의 영화 ‘사나이’의 감독으로 데뷔한 홍계명이 늘봄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예명이다.

그의 작곡 작품으로는 ‘항구의 선술집’(조명암 작사, 김정구 노래)을 비롯해 ‘애수의 소야곡’(이부풍 작사, 남인수 노래). ‘신라의 달밤’(유호 작사, 현인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유호 작사, 현인 노래), ‘이별의 부산 정거장’(유호 작사, 남인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강사랑 작사, 현인 노래) 등 3000 여곡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 조명암(조영출)이 작사한 친일 가요 ‘아들의 혈서’ 등의 작곡은 그의 이력에 친일 작곡가라는 주홍글씨를 새겨 놓았다.

원곡자 백설희 선생은 본명이 김희숙으로 1927년생이다. 부군인 영화배우 황해(1920~2005, 전홍구) 선생 사이에 가수 전영록‘을 두었다. 대표곡으로는 ‘물새 우는 언덕’,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샌프란시스코 등이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로 데뷔해 ‘행복’, ‘덕혜옹주’ 등 우리나라 멜로 영화를 대표하는 허진호(57)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도 제작되었다. 영화 속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와 방송국 피디 은수(이영애)의 짧고 화창한 봄날 같은 사랑과 담백한 별리(別離)를 그린 작품이다.

은수 : 헤어져

상우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장광팔 만담가

* 만담가 장광팔은...

본명은 장광혁. 1952년 민요만담가 장소팔 선생 슬하의 3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의 전통 서사문학 만담과 대중가요 가사연구에 대한 글쓰기와 만담가, 무성영화 변사,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에서 서사문학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