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Ⅰ] 100nm 바이러스, 식문화·소비·여행의 '기준'을 바꾸다

코로나발 '일상의 변화'

2020-05-20     박철중 기자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의 밥상 문화도 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트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장을 보고, 맛집과 식당에 가지 않아도 앱으로 배달해 먹는 소비행태가 다반사가 된 것처럼, 전통이라고 여겼던 습관을 과감히 깨트릴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여행을 갈때 '체험'거리를 찾던 기준은 1년새 '청결'이 차지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반찬 · 찌개 개인 식기에…밥상머리부터 다시

찌개를 중심으로 한 식당 상차림 / 연합뉴스

IT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지연(40, 서울 마포구) 씨는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던 시점에 8주간 회사의 권고로 재택근무를 하다가 최근 생활 속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출퇴근 근무로 복귀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종식된 게 아니어서 출퇴근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다수가 모이는 식당에 갈 때면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고 한다. 초등학생 4학년 자녀를 둔 주부이기도 한 이 씨는 집안에서 작은 습관부터 하나씩 위생적으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가 쓸 식판을 새로 구입했고, 아예 부부의 음식까지 개별 접시에 담아 식사하는 생활을 실천중이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전통적 일상이라 생각했고 ‘함께’라는 공동체의 상징인 식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침으로 전파되는 바이러스의 특성을 감안하면 한 솥에 담겨진 찌개에 숟가락을 담그고, 테이블 가운데 놓인 반찬에 너나할 것 없이 젓가락질을 하는 행위는 누가 봐도 비위생적인 행동 그 자체다.

개인 식기가 일반적인 서양 사람들은 물론 같은 동북아 문화권인 일본인들조차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깜짝 놀라는 모습 중에 하나가 찌개와 공용반찬을 이용하는 식문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 여성과 결혼해 도쿄에 거주중인 박승필(40) 씨는 “서울에서 데이트할 때 아내가 모든 식당에서 찌개며 반찬이 하나로 제공되는 것을 낯설어했다”며 “한국문화려니 했지만, 일본에서는 가족 모두가 개별 그릇으로 먹는다”고 말했다.

비말 감염을 일으키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식문화를 개선해보자는 목소리가 해당부처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식품의약안전처는 지난 1982년부터 운영해온 음식문화개선사업 체계를 활용해 지방자치단체, 외식업자와 함께 생활방역 실천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상 속 음식문화에서 감염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개인 용기 사용과 덜어 먹기 등 개인위생을 강조한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와 함께 외식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슬기로운 외식생활’이라는 범국민 캠페인도 벌인다. 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위생적인 소비를 하자는 내용이다.

소비, 온라인으로 확대…"비대면, 서비스업 대안"

우편집중국에 쌓인 소포·택배 등 우편물 / 연합뉴스

코로나19는 소비의 행태도 변화시켰다. 코로나가 국내에 확산하기 시작한 2월 중순 이후 서비스업은 특정 업종을 중심으로 생산과 소비가 급격히 둔화했다. 초반에는 중국 관광객이 감소하면서 여행업, 숙박업, 항공, 면세점 등이 주로 타격을 입었고, 이후에는 음식점업, 공연예술업, 교육서비스업 등으로 부정적 효과가 확산했다.

하지만 소비 행태 변화에 따라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일부 업종에서는 오히려 판매가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 지난 3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은 3.3% 감소했으나 온라인 유통업체 매출은 16.9% 급증했다. 소매판매액 대비 온라인쇼핑 상품 거래액의 비중은 1월 22.9%에서 3월 28.2%로 5.3%포인트 확대했다. 외식업에서는 대면 접촉을 피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해당 업종 매출액의 급격한 감소를 완충하는 역할을 했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 등에 따르면 대표적인 배달 앱인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에서 이뤄진 3월 결제금액은 1월보다 44%가량 증가했다.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서비스 모델과 정책 과제' 보고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소비자가 비대면 방식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서비스산업이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며 "코로나19 이후에도 이런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여행의 주요 키워드…'청결' · '위생'

신라호텔 어번 아일랜드. / 신라호텔 제공

여행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 기준도 변화하고 있다.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5월초 밀레니얼세대 젊은 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행의 주요 키워드’로 36.5%가 ‘청결’이라고 답했다. 특히 3세 이하 자녀를 둔 젊은 부모 10명중 7명(67.7%)에게서 이 같은 답변은 두드러졌다. 아울러 밀레니얼 부모 51%는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이른바 ‘호캉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체험이나 액티비티 등 활동성에 중점을 뒀던 것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이다. 코로나19로 고조된 안전과 위생관리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여행 · 숙박업계는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해 안전과 청결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글로벌 숙박예약 플랫폼인 에어비앤비와 손잡고 민박 사업주와 이용자가 지켜야 할 ‘숙소안전 지침’을 마련해 홍보에 나선다. 숙소안전 지침은 △합법 숙소로 등록하기 위한 기준·방법 △숙소 내 필수 안전설비 △에어비앤비에서 마련한 코로나19 대비 숙소 청결 관리 지침 △숙소 예약 전 확인해야 할 안전점검 사항 등을 소개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편의를 고려해 영문으로도 제공한다.

공사는 안전한 숙박 환경 조성을 위한 ‘세이프스테이(SafeStay)’ 캠페인도 함께 펼치고 있다. 이 캠페인은 민박업소 품질 강화와 지방자치단체 등록 숙박업소 이용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6월부터는 지역별 안전·위생·홍보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정혜경 관광공사 숙박개선팀장은 “재작년 강릉, 올해 동해의 펜션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에 이어 코로나19까지 겹쳐 숙소 안전관리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여행 트렌드에 맞춰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숙박시설들이 여행객들로부터 안전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쳐나갈 예정”이라 밝혔다.

고객들을 잡기 위한 호텔업계의 위생 · 청결 강화 마케팅도 변화된 숙박 기준을 반영하고 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위생 · 감염 · 안전 등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메리어트 청결위원회’를 만들어 호텔의 차세대 청결 기준과 행동 양식을 개발한다. 하얏트는 ‘글로벌 케어&청결 확약’을 발표하고 관련 지침을 강화한다. 힐튼은 위생용품 브랜드인 레킷벤키저와 손잡고 ‘힐튼 클린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객실 환경을 병원에 버금가는 위생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호텔업체인 신라호텔과 롯데호텔도 각각 테스크포스와 위원회를 꾸려 위생과 청결에 만전을 기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