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토크] “사람들은 왜 큰 상이라면 사족을 못 쓸까?”

- 봉준호의 '기생충'과 상(賞) 받기의 심리학

2020-02-18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기생충'이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작품상, 국제영화상 그리고 감독상까지 4개 부문을 휩쓸면서 전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BTS가 K-팝으로 한류를 견인하는 선봉장 노릇을 하고 있는 상황에 빗대, 봉준호 감독은 K-무비로 한류를 선도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온다.

사람들은 주위에서 어떤 영화나 소설이 재미있다거나, 작품성이 있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든지, 그 영화에 천만 관객이 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갑자기 나도 그 책을 사봐야 하고, 그 영화를 봐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 든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큰 상을 수상한 사람과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요즘처럼 돈만 있다면 혼밥혼술은 물론이고, 아마 몇 년 동안 집 밖을 나오지 않고 혼자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사바나 초원에 살던 시절엔 달랐다. 그들의 모토는 ‘뭉쳐야 산다’ 였을 것이다.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나 물이나 식량을 구하는 것이 무리를 지어야 훨씬 유리했다. 무리에서 고립되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마치 자신의 무리에서 추방된 침팬지가 그 뒷날 십중팔구 다른 무리의 공격을 받고 주검으로 발견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수 따르기’의 법칙)

제 소신은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다수를 따르는 성향은 생각보다 일상에 많이 나타난다. 이 분야의 고전적인 실험으로는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가 했던 동조실험이 유명하다. 판단이 쉽지 않은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선분을 보여주고 어떤 선이 더 길고 짧은 지를 판단하는 아주 쉬운 문제를 두고도 사람들은 타인의 눈치를 본다. 분명히 다수의 사람들(실험 공모자들)이 틀리게 답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개의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의 판단을 거두고 다수의 판단에 따른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각종 정보가 차근차근 축적되어 후대로 전달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거대한 자연재해만 아니라면, 어떤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컴퓨터 검색만 해도 어지간한 정보는 다 있다. 하지만 수만 년 전 사바나 초원에서의 상황은 달랐다. 어떤 버섯에 독이 들어 있는지, 어디로 가면 사냥감이 많은지, 추운 겨울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야하는지 모두 경험 많은 전문가들에게 물어야만 했다. 권위자를 따르는 게 생존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권위자 추종’의 법칙)

사바나에 사는 코끼리는 샘을 찾아 이동할 때 누구의 판단을 따를까. 그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암컷을 따라 이동한다. 수십 년 동안의 경험이 그 코끼리에게 ‘권위’를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람 3인씩으로 이뤄진 집단 59개를 대상으로 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조사 결과 전체 집단의 절반이 1분 안에,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5분 안에 뚜렷하게 서열이 정해졌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바라만보고 단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도 새 집단 내에서 자신의 미래 지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리더-추종자’의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는 말이다.

심리학자 마크 판 뷔히트에 의하면 사람들은 제 판단이 맞고 다수의 판단이 틀렸다고 분명히 생각할 때도, 집단의 결속을 해치지 않기 위해 다수의 길을 따른다. 또 타인에 해를 입히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권위자를 따른다. 그것은 권위자에게서 인정을 받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던 우리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슬픈 유산인 셈이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출판사 사장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각 출판사에서는 자사에서 나온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의 최 하단에라도 넣기 위해 로비가 치열했다고 한다. 어떤 책이 ‘권위’ 있는 주요 언론사 선정 베스트셀러 리스트에만 올라도 그 책은 팔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수’에게 많이 팔린다는 소문은 여기에 불을 지핀다. 요즘에는 책 광고의 권위가 주요 언론사에서 소셜미디어의 파워 블로거나 파워 유튜버로 옮겨 갔다고 한다.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법과 상식에 의해 굴러가야할 다른 분야에서 위법적, 탈법적으로 악용한다면 곤란하다. 예컨대 가요계에서 가수의 인기 순위를 조작한다든지, 정보기관이 댓글을 달아 여론을 호도한다든지, 드루킹 일당처럼 사조직이 선거캠프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킹크랩’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댓글을 달고 여론을 조작하는 일 등은 모두 사람들이 다수를 추종하는 인간 심리를 악용한 심각한 사회적 범죄행위다.

한편, ‘권위자 따르기의 법칙’도 많이 활용된다. 어떤 특정 제품을 광고하거나, TV에서 특정 주제로 토론할 때, 신문에서 필자를 선정할 때도 어김없이 이른 바 사계의 권위자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가 각 분야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대학교수나 박사학위 소지자, 법조인, 의료인 등 전문가들이다.

주로 심리학이나 뇌과학 분야의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은 강연장에서 권위자 따르기의 법칙을 자주 활용한다. 나는 매일 TV에 나오는 스타급 강사가 아니기 때문에 대학 강의가 아닌 일회성 특강장에 가면 자칫 ‘듣보잡’ 강사 취급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나는 강사 소개 시에 꼭 TV에 메인 패널로 나와 토론하는 장면을 캡처한 사진이나, 인문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잠시 오른 적이 있는 나의 저서, 주요 언론사 기고 경력 등을 반드시 소개한다. 일반 대중들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특급 강사들이나 수십 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TV에 나오고 베스트셀러를 썼다는 사실은 내가 권위자임을 인증하는 중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효과는 아주 좋다. 처음 데면데면하던 강연장 분위기가 싹 바뀐다. ‘저 사람은 특급강사는 아닐지 몰라도 B급은 아니구나!’ 사람들의 표정변화가 또렷하게 읽힌다. 당연히 강연에 대한 집중도도 확 올라간다. 사람들의 뇌는 너나할 것 없이 권위자, 즉 TV에 나오고 신문잡지에 글을 쓰며 책을 내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끌리게끔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봉준호 감독이나 그의 영화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그의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천만관객을 동원할 때까지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이번에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기생충'을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향하거나, IPTV로 다운받아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만일 이 영화가 칸영화제나 아카데미에서 상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닐 것이다.

나는 여전히 기생충이 ‘재미는 있지만 감동은 없는 영화’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나의 비판적 시각과는 무관하게 봉준호 감독은 이미 자기 분야 최고 권위자로서 인정을 받았고, 그의 영화 '기생충'도 지구촌의 다수의 사람들이 보고 인정한 영화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봉준호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이나 아카데미상을 수상을 인정하지 않거나 축하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없으면 좋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이렇다. 21세기 AI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첨단문명의 혜택을 맘껏 누리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수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던 때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양복 입은 원시인’이다. 사람들에게 ‘다수 따르기’의 법칙과 ‘권위자 추종’의 법칙은 본능처럼 인간의 정신적 DNA에 강렬하게 아로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옛날 사바나 초원의 조상들과 달리, 권위자를 추종하거나 다수를 따르는 현상의 심층심리까지 깨닫게 되었다. 어느 정도 객관적인 거리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이 아무런 생각 없이 권위자를 따르거나, 다수 의견에 무조건 따라가게 내버려두지는 말자는 것이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심리학자 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