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한국 정치, 큰 길로 나와야

2019-12-16     송장길(언론인·수필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국민 / 연합뉴스

한국의 정치가 치졸한 골목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와 국민들에게는 그리 다급하지 않은 사안으로 끊임없이 격돌하고 있다. 사색당파의 환생이라는 말도 나온다. 넓은 세상을 두고 좁은 공간에서 물러설 수 없는 아귀다툼을 벌이면서 국운을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조국 사태로 온 나라의 혼을 빼앗더니, 울산 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청와대 감찰중단 수사로 혼미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에서는 선거법개정과 공수처신설법안의 패스트트랙 처리로 집권측과 저항측이 파국이 우려될 지경으로 충돌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라는 민주당의 강공에 “죽어도 저지”라는 한국당의 극렬한 결기가 양측 지도부 한테서 계속 뿜어져 나올 정도로 달구어져 있다.

이런 살벌한 상황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야만적인 정치 양상이다. 국민들의 이견을 흡수해서 타협을 이끌어 내는 것이 정치일진대, 그와는 거리가 먼 강압과 투쟁 일변도의 극한 정치를 일삼는다면 한국의 정치는 사실상 중병에 걸린 징후이며, 허울만 민주화를 이룩한 꼴이다. 일부 국민들의 입에서 ‘체제의 변환’과 ‘정변의 가능성’ 같은 헌정질서가 흔들리는 최악의 우려까지 운위하게 하는 불행한 시기이다.

원인 제공의 책임은 뭐니뭐니 해도 집권 세력에게 있다. 문제가 들어나던 인사를 법무장관에 기어코 앉히려던 무리수, 대통령 친구의 선거에 개입한 듯한 정황, 권부 주변 인물의 부패 의혹 등이 집권 진보진영의 도덕성에 이미 깊은 상처를 입힌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에 대해 오히려 비호하거나 침묵하는 태도는 정치의 금도가 아니며, 명쾌한 입장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지도층과 나라에 독이 될 것이다. 검찰의 수사를 덮으려 하거나 압박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지 않겠는가. 서초동에서 벌이는 조국 수호 집회나 검찰수사에 대한 공격은 무슨 이유로든 현대적 의미의 법체제에게는 사법체계와 사회질서의 훼손으로 비칠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제의 입법은 민주주의 원리상 여야 협상으로 추진돼야 함에도, 여권이 생뚱맞은 4+1이라는 궁여지책으로 군소 야당과 연합해서 입법을 강행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상식을 거스르는 것이며, 정치의 정도가 아니다. 의회주의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정치공학이다. 그렇게 해서 개헌선을 넘기겠다는 위험한 정치적 음모가 숨겨져 있다면 대한민국의 헌법적 질서 위에 건재하는 민심이 용인하겠는가?

공수처 설치법안도 제1야당이 사생결단의 기세로 저항하고 있으므로 뒤로 미루든지, 아니면 협상을 통해 차선책을 강구하는 게 정국의 안정과 국가의 위상을 위해서 옳다. 공직사회의 정화는 오랜 숙원이고 불문의 당위이다. 그러나 상당한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의심하면서 반대한다면 다른 좋은 방안이 없는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공수처법안 처리가 그 효과보다 더 큰 국가적 폐혜를 빚는다면 대국적인 차원에서 재고하는 것이 순리이다. 순리를 벗어나는 개혁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며, 감당하기 힘든 곤궁을 낳을 수 있다.

한국당의 대응도 옹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권의 페이스에 말려서 방어에 급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밟고 지나가라”는 결기에 호응하는 지지세력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투쟁을 하면서도 국가경영의 일익을 담당하는 역할도 도외시하면 안 된다. 나아가 유력한 정당이기 위해서라면 상대의 공세를 제압하는 특단의 방책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5조 2300여 억 원이라는 초유의 매머드급 예산안이 합의되지 않은 절차에 따라 일방적으로 순식간에 통과되는 마당에도 원내 대표가 단 아래에 서서 국회의장을 향해 “이게 뭡니까?”를 공허하게 계속 외쳐만대는 장면은 제1야당이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전략과 전술의 미숙이었다.

한국당을 제1야당으로 뽑아준 국민들은 정치와 정책의 경쟁에서 수세에 급급하는 수준을 넘어서 오히려 기선을 제하는 정당, 정국을 주도하면서 수권 정당의 면모를 확실히 다지는 모습에 공감하고, 신뢰를 보낼 것이다. 소주성에 따른 경기의 하강과 탈원전 문제, 경상수지의 악화 우려, 안보적 불안 등등 정부의 시행착오로 보는 현실의 타개에 대한 속이 시원한 입장과 대안이 궁금할 것이며, 미래의 먹거리와 국운에 대한 원대한 비전이 관심거리일  것이다.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몇 푼의 복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국민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의지와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되살아나고, 청년들의 성취의욕이 불길처럼 일어나야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다시 동방의 별이 될 것이다. 사회의 원기 회복과 기세가 목마른 것이다.

여야의 이전투구식 싸움을 승화시키고, 건전한 정치문화를 북돋아 줄 자리에 대통령이 있다. 여권의 무리한 공세정치를 잠재울 수 있는 힘도 대통령에게 있고, 날선 야권을 협상의 테이블에 앉히는 위치에도 대통령이 있다. 그만큼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돼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정치의 난맥상을 바로잡을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보다는 정치인 문재인으로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각인돼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이 국가 경영자로서 경세가의 모습을 못 보여준다고 인식한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강성의 진보세력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렇겠지만, 대국적인 견지에서 크게 결심하고 정치인과 경세가의 차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도 포용하겠다”고 약속한 취임사의 대통령은 가식이 된다.

한국 정치가 골목에서 큰 길로 나오면 대한민국호의 앞에 놓여 있는 어려운 현실과 헤쳐나갈 가능성이 잘 보일 것이다. 진영의 논리에 매몰돼 있던 안보문제도 동북아시아의 세력판도 위 한국의 좌표라는 관점에서 다시 투시해 볼 수 있고, 2%의 성장도 불확실한 오늘의 경제적 실체와 대책에도 더 진솔해져서 묻혀 있는 지혜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의 생리상 서로 협력은 어렵더라도 정쟁 대신에 나라 살리는 일에 집중해서 건전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기만 해도 사회는 발전의 분위기를 잡을 수 있다. 더구나 국운의 원대한 설계야 말로 정치의 본령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