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회장 또 불명예 위기···김병원 회장 1심 벌금 300만원 '당선무효형'
법원 "위탁법 규정 광범위하게 위반…금품 살포까진 나가지 않은 점 고려"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선거법을 어긴 혐의를 받는 김병원 회장이 1심에서 벌금 300만원형을 받았다.
공공단체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상 당선인이 법 규정 위반으로 징역형이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김 회장이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자 농협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벌금 300만원 형이 확정되면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김 회장은 즉각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 관계자는 "현재 입장을 정리 중이다"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지만 내부에서는 적잖게 당황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22일 공공단체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의 선고 공판에서 공소사실 상당 부분을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김 회장과 선거 지원을 연대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덕규 전 합천가야농협 조합장에게는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뒤 선거운동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법이 억제하려는 혼탁·과열 선거 양상이 나타났다"며 "위탁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법 제한 규정을 광범위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김 회장에 대해선 "선거운동 범행에 모두 관여해서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했고, 그 결과를 누리는 주체였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위탁법에 따라 치러진 첫 선거여서 종래 느슨한 규제 하에 이뤄진 선거운동 관행을 따른 측면이 있던 것으로 보이고, 위탁법이 후보자의 선거운동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에 따라 관련 규정이 계속 변화하는 점을 유리한 요소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인이 법 위반을 피하려고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하는 노력을 했고, 법을 위반하긴 했지만 금품 살포까지 하지 않은 점도 유리한 요소로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김 회장과 최 전 조합장은 선거를 앞둔 2015년 12월 "결선투표에 누가 오르든 3위가 2위를 도와주자"고 약속했다. 이후 김 회장이 2위로 결선에 올랐고 투표 당일 함께 투표장 안을 돌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최 전 조합장 측은 당일 대포폰으로 '김병원을 찍어 달라. 최덕규 올림'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대의원 107명에게 보냈다.
검찰은 이런 행위가 투표 당일 선거운동이나 후보자 본인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법 규정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김 회장이 2015년 5∼12월 대의원 105명을 접촉해 지지를 호소한 부분도 법 위반이라며 공소사실에 포함했지만, 재판부는 이 가운데 87명에 대한 부분만 유죄로 인정했다.
김 회장이 선거를 앞두고 신문사에 전문성과 경력을 강조한 기고문을 실은 뒤, 해당 신문을 대의원 조합장들에게 발송해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 1∼3대 민선회장 모두 사법처리…불명예 되풀이
첫 호남 출신 민선 농협회장인 김 회장마저 당선 무효 위기에 처하면서 농협은 역대 민선회장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됐던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게 됐다.
임기 4년의 농협중앙회장은 비상근직이지만 조합원 235만명, 자산 400조원, 계열사 31개, 임직원 8만8000여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의 수장인 만큼 뒷말과 외풍이 끊이지 않았다.
농협은 1988년 중앙회장을 조합장들의 직접 선거로 뽑기 시작한 이후 4대 최원병 회장을 제외한 1∼3대 민선 회장이 모두 비자금과 뇌물 혐의 등으로 사법처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