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하나에 노랫말 세개', 이야기 있는 우리가곡 빛났다

여성경제신문 '제1회 해설이 있는 가곡음악회' 성황...200여명에 봄날의 감동 선사

2016-03-18     최주영·이유진 기자
▲ 18일 오후 '제1회 해설이 있는 가곡 음악회'에서 임긍수 작곡가가 '강 건너 봄이 오듯'을 지휘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곡 하나에 세 개의 노랫말이 담겨진 사연을 알고 들으니 감동도 세 배였어요. 이번 음악회를 통해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채동선의 곡에 각기 다른 시를 붙인 '그리워' '망향' '고향'을 잇따라 들은 관객 200여명은 오랫동안 그 여운을 느끼려는 듯 쉽게 눈을 뜨지 못했다.

우리 가곡의 노랫말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주는 ‘제1회 해설이 있는 가곡음악회’가 18일 오후 7시 여성경제신문, 이안삼 가곡카페, 아리수 가곡카페 주최로 용산 서울문화사 별관(시사저널 건물) 강당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특히 이번 음악회는 한국가곡의 해설과 노래가 한데 어우러진 첫 공연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관심과 화제를 뿌렸다.

음악회 해설을 맡은 이정식 서울문화사 사장은 "우리나라 시에 멜로디를 붙인 가곡을 해설과 함께 들려주고 싶어 이번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며 "오페라도 내용을 알면 재미있듯이, 우리 가곡도 숨은 뜻을 알고 나면 더욱 알차게 감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가곡 에세이 '사랑의 시, 이별의 노래' 저자답게 가곡을 감상하는 노하우도 전했다. 그는 "가곡을 들을 때의 포인트는 '가사에 따라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음악회에는 소프라노 이지연, 정혜숙, 홍은지와 테너 김현욱 등이 출연했고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장동인이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 곡 하나에 세 편의 노랫말 담은 '그리워'

▲ 이정식 서울문화사 대표 겸 바리톤이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제2사옥에서 열린 '제1회 해설이 있는 가곡 음악회'에서 영상과 함께 음악을 해설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이날 소프라노 정혜숙이 부른 '고향'은 1932년 정지용의 시에 작곡가 채동선이 곡을 붙여 만들었다.

이후 시인 박화목은 '고향'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망향(1953)'을 발표했다. 정지용이 오해에 의해 월북작가라는 굴레를 쓰게되어 그의 시에 곡을 붙인 '고향'을 부를수 없게 되자 박화목이 '망향'이란 노랫말을 붙였던 것이다. 이 사장은 이날 '망향'을 아름답고 묵직한 바리톤 음색으로 소화하며 감동의 무대를 선사했다.

1964년 정지용의 '고향'은 이은상의 '그리워'로 재탄생한다. 작곡가 채동선의 유족들이 이은상에게 새로운 가사를 부탁했고 '망향'은 '그리워'로 다시 만들어졌다. 채동선은 자신이 작곡한 곡 가운데 '고향'을 가장 대표적인 곡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고향'에 대해 "정지용 시에 붙인 이 곡은 채동선 선생의 대표적 가곡이다"라며 "처음 '고향'에 붙여진 이 곡에는 박화목 시 '망향', 이은상 시 '그리워' 등 세 편의 노랫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정지용의 시 '향수'는 테너 김현욱과 소프라노 홍은지의 듀엣 무대로 선보였다. 정지용의 시로 된 가곡은 1988년 정부가 월북 작가 해금 조치를 취한 뒤에야 불려질 수 있었다고 한다. '향수'는 해금 다음해인 1989년 대중가요 작곡가 김희갑씨가 새롭게 곡을 붙였고, 통기타 가수 이동원과 서울대 음대 교수 테너 박인수씨가 듀엣으로 불러 더 유명해졌다.

◆ 사랑과 이별이 담긴 '이별의 노래' '떠나가는 배'

▲ 소프라노 이지연이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제2사옥에서 열린 '제1회 해설이 있는 가곡 음악회'에서 박목월 시·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소프라노 이지연이 시인 박목월의 ‘이별의 노래’를 부르자 청중들은 숨죽이며 그의 노래에 집중했다.

이 시는 30대 말의 박목월이 아름다운 한 여대생과의 이별의 심정을 읊은 시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박목월이 쓴 책 ‘구름에 달 가듯이’를 보면 노래의 주인공은 여대생이 아니다.

이 사장은 “박목월은 그녀에 대해, 과거 알던 사람이었으며 전쟁 중 우연히 재회했고, 그 후 다시 만나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병실에서 하룻밤을 간호하며 지낸 적도 있다고 그의 수상록에서 썼다”며 "그럼에도 박목월 사후에 나온 평전에서 '이별의 노래'가 마치 젊은 여대생과의 이별의 결과로 나온 것처럼 기술하는 바람에 그렇게 잘못 알려지게 된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떠나가는 배'도 양중해 시인이 6·25 때 제주항에서 이별하는 피난민 등의 애닯은 사연을 담은 것이지, 일부에 알려졌듯이 박목월 시인과 여대생의 이별의 모습을 담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시인 김동환의 의지를 표현한 '남촌'

▲ 테너 김현욱과 소프라노 정혜숙이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문화사 제2사옥에서 열린 '제1회 해설이 있는 가곡 음악회'에서 서영순 시·이안삼 작곡의 '우리의 사랑'를 열창하고 있다. /양문숙 기자 photoyms@seoulmedia.co.kr

가곡  ‘남촌’의 원제목은 ‘산 너머 남촌에는’이다. 지금도 솔로와 합창곡 등으로 선호하는 이곡은 하나의 시가 대중가요와 가곡으로 각각 작곡됐다.

이 사장은 “이 가곡은 암담한 시대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그린 시가 바탕이 되어있다”라며 “일제 강점기에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 김동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동환의 ‘아무도 모르라고’는 테너 김현욱이 노래했다. 이 곡은 파인의 4번째 시집에 실렸다. 그러나 이 시집에는 아쉽게도 후일 그의 친일 행각의 증거가 되는 ‘우리들은 7인’ ‘전쟁과 애국시인’ 등 친일시 내용도 함께 들어있다.

이 사장은 “김동환은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하여 공민권을 제한 당했다가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라며 “북에서의 그 뒤의 행적에 대해서는 어느 조그만 잡지사의 교정원으로 배치되어 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서영순 시·이안삼 작곡의 신작 가곡인 ‘우리의 사랑’은 소프라노 정혜숙, 테너 김현욱이 함께 불러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아~사랑 사랑 사랑 우리의 영원한 사랑 당신은 나의 행복, 나의 그리움 나의 모든 것 나의 사랑아”라는 노랫말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절절함을 표현했다.

◆ ‘강 건너 봄이 오듯’ ‘봄이 오면’ ‘봄처녀’ 합창

▲ 18일 오후 서울 용산 서울문화사 제2사옥에서 '제1회 해설이 있는 가곡 음악회'가 개최된 가운데 소프라노 홍은지가 가곡 '그리워'를 부르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seoulmedia.co.kr

마지막 무대엔 ‘강 건너 봄이 오듯’ ‘봄이 오면’ ‘봄처녀’를 합창했다. 청중들은 3곡을 다같이 따라부르며 다가오는 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강 건너 봄이 오듯'은 송길자 시·임긍수 곡으로 “오늘도 강물 따라 뗏목처럼 흐를거나 새소리 바람소리 물흐르듯 나부끼네” 가사에서 보듯, 자연에서 오는 봄의 느낌을 세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봄이 오면’은 시인 김동환이 작사했고 김동진이 작곡했다. “봄이 오면 산에들에 진달래 피네~” 한 소절만 들어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노래로 익숙한 멜로디와 친근한 가사가 잘 어우러진다.

마지막 곡은 ‘봄처녀’가 장식했다. “봄처녀 제 오시에 새 풀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청중들은 밝은 표정으로 익숙한 멜로디를 따라불렀다.

이날 ‘이별의 노래’ ‘남촌’으로 멋진 무대를 선사한 소프라노 이지연은 “해설을 곁들인 가곡 음악회에 참석하게 되어 기쁘고 이런 좋은 행사에 초청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가곡을 모르던 청중들도 우리나라 가곡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소프라노 정혜숙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노래했다”며 “앞으로 있을 공연에도 많이 참석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프라노 홍은지는 “여러 출중한 소프라노 분들과 한 무대에 서서 영광이다”라며 “좋은 기회를 주신 이안삼 작곡가 및 서울문화사 여성경제신문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가곡음악회는 여성경제신문과 전통 있는 가곡동호인들의 모임인 ‘이안삼 카페’ ‘아리수사랑 카페’가 주최하고, 서울문화사 우먼센스와 동인음악이 후원하는 첫 번째 공연이다. 우리가곡의 활성화와 가곡 애호층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해설이 있는 가곡음악회’는 이날을 시작으로 올해 11월까지 격월로 5회에 걸쳐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