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일하면 자식은 일 못 한다고?···'좋은 직장' 두고 싸우는 청년과 노년

노인 빈곤율 OECD 최고 '정년 연장' 불가피 사회 안전망 부재가 낳은 '각자도생' 경쟁?

2025-11-25     김민 기자
지난 6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5 고양시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년 연장의 중요성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청년층에서는 청년 고용에 악영향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세대 갈등'이라고 지적하지만 본질적인 원인은 한국의 불안정한 사회 안전망과 노동시장 구조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방문해 2차 고위급정책협의회를 진행한다. 민주당과 한국노총은 지난 9월 열린 첫 협의회에서 △정년 연장 △주 4.5일제 단계적 도입 △중대재해법·노란봉투법 보완 △교사·공무원 정치 기본권 보장 등 핵심 노동 의제를 논의했었다.

민주당은 최근 당내에 정년 연장특위를 가동하고 오는 2033년까지 법정 정년을 65세로 상향하는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정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노동계와 퇴직 후 재고용을 주장하는 경영계 간 견해차가 큰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청년층에서는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년을 채울 수 있는 일자리의 상당수가 청년이 구직을 희망하는 일자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언론에 "청년 세대에게 정년 연장은 부모 세대의 노후 부담을 덜 수 있는 효과도 있지만 1차 노동시장의 진입장벽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중 구조가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KLI) 고용정책연구본부 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어 못 뽑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에 큰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다"라면서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대체 효과가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고용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한 고용 시장 내 구직 경쟁의 심화가 꼽히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 고용은 최근 계속 부진을 겪고 있다.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이 주재한 관계 부처 합동 일자리 전담반(TF) 회의에서도 관련 내용이 언급됐다. 해당 회의는 청년 고용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인구 구조의 변화로 인한 고용 시장 내 구직 경쟁의 심화를 꼽았다. 은퇴 나이에 진입한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생)가 노동시장에 계속 참여하는 상황에서 인구가 많은 에코 세대(1991~1996년생)의 구직·이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 빈곤율로 대표되는 불안정한 은퇴 후 삶이 계속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만큼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외면하긴 어렵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지속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3(Pension at a glance 2023)'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고령층으로 갈수록 높아져 66~75세 노인 소득 빈곤율은 31.4%이지만 76세 이상은 52.0%로 2명 중 1명 이상이 빈곤층에 속했다.

연금 수급률 및 수급액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노후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2023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연금 수급률은 90.9%이며 월평균 수급액은 69만5000원에 그친다.

결국 청년층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직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년층의 불안한 노후가 겹치면서 좋은 일자리를 둔 경쟁이 과열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연한 정책 도입을 강조한다. 김 연구원은 "청년 고용은 어쩔 수 없이 대체 관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라며 "이를 해결하려면 임금 조정 등의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근로 시간도 이전처럼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게 아니라 적정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년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중요한 건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공공기관의 TO를 늘리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대기업 역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안정한 노후와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가 사회적 갈등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