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로는 한계 다다른 건설업···AI 시대 새 먹거리 ‘SMR’ 찾는다
삼성물산, 뉴스케일에 7000만 달러 투자 현대건설, 미 홀텍과 독점 협력계약 체결 대우·DL이앤씨, SMR 밸류체인 선점 나서
주택 불황, PF 위기로 도시 개발과 주택 공급이라는 전통적 성장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가운데, 건설업계가 인공지능(AI) 확산이 불러온 전력 대란과 데이터센터 경쟁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특히 차세대 원전기술인 소형모듈원전(SMR)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건설업의 미래 먹거리가 에너지·AI 인프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이미 SMR을 ‘차세대 전력 공급원’이자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간주하며 투자와 파트너십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25일 건설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물산은 2021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7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현대건설은 미국 홀텍과 독점 협력 계약을 체결해 미시간 팰리세이즈 부지에서 300㎿급 SMR 착공을 앞두고 있다. 대우건설과 DL이앤씨도 각각 한수원·엑스에너지와 협력하며 SMR 밸류체인 선점에 나섰다.
이같은 ‘SMR 러시’의 배경에는 AI가 불러온 폭발적 전력 수요가 자리 잡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30년 945TWh로, 2024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다. 국내에서도 2029년까지 데이터센터가 700곳을 넘어서며 전력 수요는 49GW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는 사실상 ‘원전 수십 기’를 새로 지어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 에너지정책 전문가는 “AI 확산 속도는 기존 전력 인프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특히 빅테크 기업들은 전력망 불안정성을 사업 리스크로 보기 때문에, 그 해법으로 SMR 같은 분산형 고신뢰 전원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의 SMR 진출은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라 새로운 인프라 생태계를 주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SMR은 공장에서 모듈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구조여서 건설 기술이 필수적이다. 또 도심·산단 인근에도 설치가 가능해 송전망 구축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고효율 냉각 인프라, ESS, 초고압 변전설비 등 데이터센터 기반 시설과 패키지로 발주되는 경우가 많아 건설사의 종합 EPC 역량이 그대로 요구된다.
한 전력 시스템 전문가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품질 요구 수준은 일반 산업시설보다 훨씬 엄격하다”며 “향후 데이터센터는 발전·변전·저장설비를 한 공간에서 통합 설계하는 흐름으로 갈 것이고, 그 중심에 건설사가 들어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SMR은 아직 상용화된 사례가 없고 경제성·안전성 검증도 초기 단계다. 다수 모듈을 동시에 운영할 때의 복합 리스크,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지역 수용성 확보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전력·AI 중심으로 재편되는 산업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AI가 산업의 질서를 다시 쓰는 지금, 건설업은 더 이상 땅을 다지기만 해선 살아남기 어렵다. 전력망을 짓고,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차세대 원전을 배치하는 기술이 새로운 성장 공식이 되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도로·댐’이 국가 경제의 동맥이었다면, AI 시대의 ‘SMR·데이터센터’는 건설업의 생존을 결정할 신동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