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취약계층 보호 vs 교육·돌봄 현장 감시···‘제3자 녹음’ 입법 공방
아동·장애인·노인 학대 예방 목적 ‘제3자 녹음 예외 허용’ 법안 발의 김예지 “취약계층 권리 보호 필요” 교육·요양 현장선 감시·남용 우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아동·장애인·노인 학대 사건에서 제3자의 대화 녹음·청취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4개 개정안을 발의했다.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예외 규정이라는 설명이지만 교육계와 장기요양 현장에서는 감시 제도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발이 커지고 있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통신비밀보호법·아동학대처벌법·장애인복지법·노인복지법’ 개정안은 학대가 현재 발생 중이거나 이미 발생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 제3자가 타인 간 대화를 녹음·청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제3자가 녹음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형사재판에서 증거 능력이 없다. 개정안은 이러한 예외를 신설해 학대 정황 입증이 가능한 경우만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구조다.
최근 용인 장애 아동 학대 사건 2심에서 보호자가 확보한 녹음 파일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학대 여부에 한 판단 자체가 이뤄지지 못한 사례 등이 입법의 배경이 됐다. 김 의원은 “스스로 방어하기 어려운 아동, 노인, 중증장애인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준 없는 ‘학대 의심’···교육계 “감시 악용 가능성 더 커”
교육계는 법안의 핵심 문제로 ‘학대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사유’의 기준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원화 전국특수교사노조 정책실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결국 학부모의 기분이나 주관적 해석이 그대로 개입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아이가 간식을 안 먹고 왔다는 이유나 손에 색연필이 묻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학대 의심’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제어하거나 검증할 장치가 없다 보니 악성 민원과 결합되면 교원은 그대로 사법 절차에 노출된다”며 “이미 정서적 학대 판단 기준이 모호해 감정적 신고가 반복되는 상황인데 이번 법안은 문제를 한층 강화한다”고 우려했다.
특히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각종 형태의 불법 녹음이 빈번하다. 그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과 교육부 생활지도 고시에서 모두 금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계속 녹음이 이뤄지고 있다”며 “합법화되면 앞으로는 모든 학생이 녹음기를 갖고 있다고 전제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했다.
통합교육 위축 우려…“학생 모두 감시 대상 되는 구조”
장애·비장애 학생 통합교육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정 실장은 “법안 적용 대상은 만 18세 미만 전체 학생이지만 실제 주요 대상으로 상정되는 집단은 장애 학생”이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상당수 장애 학생이 녹음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 옆에 있는 비장애 학생도 자신의 사적 대화가 원치 않게 녹음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며 “이미 통합교육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감시 환경이 더해지면 또래 관계 형성과 수업 분위기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대 예방의 실질적 해법은 지원 체계 강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 실장은 “감시로는 학대를 예방할 수 없다”며 “특수교사 정원 확충, 학급당 학생 수 감축, 행동 중재 전문팀 구축이 먼저 갖춰져야 신뢰 기반의 교육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불거진 주호민 웹툰 작가 자녀 사건에 대해서도 “발단은 장애 학생의 부적응 행동이었다”며 “이런 행동을 지원할 전문적 체계가 더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교원단체도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아동 학대 의심만으로 제3자 몰래 녹음을 허용하면 수업이 상시 감시 공간이 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정서적 학대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의심만으로 도청을 허용하면 교사가 언제든 범죄자로 내몰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노인 돌봄 현장 안 그래도 힘든데…”
장기요양 현장 역시 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남용 우려가 크다는 입장이다. 한철수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에 “의도된 유도 질문이나 조작 가능성까지 열릴 수 있다”며 “녹음이 허용되면 보호자와 요양보호사 관계뿐 아니라 직원끼리도 서로를 녹음하려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화 상담이나 현장 소통이 위축되고 전체 현장이 얼어붙을 것”이라며 “현장은 이미 인력난과 규제 부담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인데 요양시설을 학대의 온상처럼 전제하는 접근은 돌봄 환경만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긍정 효과보다 부정적 영향이 더 크다면 법 개정 취지를 벗어나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