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이름만 붙인 '사회적 가치'···최태원 회장의 위험한 도구론
SK 내부 산식·LLM 작동 원리와 무관 정성 지표 합산 방식의 엑셀 수준 평가 ESG 공시 의무화시 중소기업만 희생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SK가 적용 중인 모델은 사회적 가치를 복잡계·맥락 기반으로 해석하는 거대언어모델(LLM)의 실제 작동 방식과 크게 동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복잡한 사회적 영향을 모델링하고 맥락을 읽어야 하는 AI 추론과 달리, SK는 측정 가능한 항목만을 모아 단순 사칙연산으로 점수를 내는 구조다. “엑셀로 충분한 계산기 모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회적 가치의 복합성을 단순 점수화로 축소하는 방식은 AI와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향후 과잉 규제로 번질 가능성도 우려된다.
21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도쿄포럼 2025’에서 최 회장은 국제무대에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AI를 결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SK의 실제 측정 방식은 AI의 핵심 역량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기여 성과 – 베이스라인 × 화폐화 단위 × 기여도’ 형태로, 온실가스 감축·일자리·납세·사회 공헌 등 항목에 점수를 부여해 합산하는 구조다. 이는 복잡한 관계를 모델링하는 AI 추론과는 달리 미리 정의된 숫자들을 모아 사칙연산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전형적 회계식 평가다.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1990년대 기업들이 쓰던 BSC(균형성과표)와 본질적으로 같다”며 “국제기구 계수를 곱하는 구조는 엑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AI로 측정 비용과 데이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AI가 가장 강점을 보이는 맥락 이해·패턴 분석·복합 추론과는 거리가 멀다. 계산 자동화와 AI 추론은 목적부터 다르다. 계산은 정해진 공식을 적용하는 과정이고, 추론은 관계를 모델링하고 의미를 도출하는 과정이다.
도쿄포럼에서는 AI 윤리, 복잡계 사회문제 해결, 정책 시뮬레이션 등 고도화된 AI 활용이 논의됐지만, SK 모델은 복합성을 단순 수치로 환원하며 정량 요소만 다룬다. 일자리 수·배출량·납세액 같은 값은 포함되지만, 일자리의 질, 지역사회 신뢰, 구성원 만족도, 산업·지역 맥락 같은 정성·관계 요소는 평가 구조 자체에 존재하지 않는다.
SK가 내세운 ‘더블 보텀 라인(재무성과+사회적 가치)’ 전략은 글로벌 경영 트렌드와 맞닿아 있지만, 측정 방식은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동의 존엄성, 지역사회 신뢰, 환경 책임 같은 비 정량 요소를 포착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측정 중심주의로 수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IFRS 재단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추진하는 ‘지속가능성 공시’는 재무 정보뿐 아니라 ESG 전반의 비재무 정보를 기존 회계보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글로벌 표준화 작업이다. 이런 전환기에 측정 가능한 것부터 끌어모아 산식을 만드는 방식은 국제 기준과도 정합성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한국은 ESG·기후 리스크 공시가 형사처벌로 연결될 소지가 있는 구조다. 미국·유럽은 주로 행정·민사 중심이지만 한국은 감독 당국이 공시 오류를 형사 책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체계를 이미 갖추고 있다. 인권·환경·공급망 전반이 공시 책임 범위로 옮겨붙을 경우 중소·중견 기업 역시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즉 공시 범위·평가 기준·검증 주체가 국제적으로도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태원 회장이 AI를 앞세워 ‘사회적 가치의 정량화’를 기정사실로 할수록 오히려 중소-중견기업의 규제 리스크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까지 계량·공시 대상으로 확장되는 순간, 한국식 형사 책임 구조와 결합해 기업 전체가 과잉 규제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