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공필 칼럼] 밥주걱 크기가 작아진 진짜 이유

[김공필의 The 건강] 쌀 소비 감소 이유 분석 탄수화물 중요성과 영향 균형 잡힌 식단 섭취 권장

2025-11-21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밥주걱 크기가 작아진 이유는 밥을 적게 먹기 때문이다. /제미나이

최근 새로 구입한 전기밥솥의 주걱을 보곤 잠시 의아해했다. 10인분을 지을 수 있는 큼지막한 밥솥에 달린 주걱이 네 살 아이 손바닥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기존 전기밥솥 주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크기여서, 서너 주걱을 떠야 밥공기가 채워졌다. 가마솥에 밥을 짓던 시절의 주걱은 어른 남자 손바닥보다 훨씬 더 컸음을 감안하면 밥주걱은 꾸준히 작아져 온 셈이다.

밥주걱 크기가 작아진 이유는 밥을 적게 먹기 때문이다. 쌀 소비 감소가 이를 말해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양곡 소비량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한 사람의 연간 쌀 소비량은 55.8kg으로 30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200g으로, 즉석밥 한 개보다 적은 양의 쌀을 소비한다. 

쌀 소비 감소는 빵, 면류 등 대체 식품이 다양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반에 퍼진 ‘탄수화물 공포’의 영향이 크다. 탄수화물이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내몰리면서 탄수화물 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쌀 소비가 먼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저탄고지 식단의 유행 또한 이런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본래 탄수화물을 가장 자연스러운 연료로 사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몸은 왜 탄수화물을 원하나

탄수화물은 단백질, 지방과 함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3대 영양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체 에너지 섭취량의 45~65%를 탄수화물로 섭취하라고 권고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인간의 뇌는 하루 120g 이상의 포도당을 기본적으로 필요로 한다. 이는 다른 영양소로 대체할 수 없으며 뇌에 포도당이 부족해지는 집중력 저하, 피로감 증가, 어지러움과 같은 이상 신호가 나타난다.

운동생리학 연구들도 탄수화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근육 속 글리코겐이 충분할 때 사람의 지구력과 근력은 10~20% 향상된다. 글리코겐은 탄수화물로 만들어진다. 또한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단백질이 에너지로 전환되면서 근육량이 감소한다. 이처럼 탄수화물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재료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사고,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본 연료다.

문제는 탄수화물이 아니라 ‘극단’이다

문제는 탄수화물 자체가 아니라 ‘과도한 섭취’와 ‘과도한 제한’이라는 양극단에서 생긴다. 쌀밥, 떡, 흰 빵, 면처럼 정제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혈당이 급격히 오르내리고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며 지방간과 복부비만이 생길 수 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의 여러 연구는 고혈당지수(GI) 식품 중심의 식단이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점을 반복해 밝혀왔다. 이런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탄수화물 전체를 위험군으로 묶어버리지만 실제 문제는 탄수화물의 섭취 방식과 관련이 있다.

저탄수화물 식단이 건강을 가져다준다는 믿음 또한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2018년 <란셋 퍼블릭 헬스>(Lancet Public Health)에 실린 1만5000명 규모의 장기 연구는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두 그룹 모두에서 사망률이 증가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탄수화물을 전체 열량의 50~55% 섭취한 중간 그룹에서 사망률이 가장 낮았고 탄수화물 비율이 70% 이상이거나 40% 미만으로 내려가면 사망률이 증가했다. 

탄수화물 섭취가 너무 적으면 뇌 기능이 저하되고 쉽게 피로해질 뿐 아니라 단백질이 에너지 소모로 동원되면서 근감소증 위험이 커지며 케톤체 과다로 어지러움, 구취, 피로감이 나타날 수 있다. 케톤체는 탄수화물이 부족할 때 지방이 분해되어 만들어지는 대체 연료다. 탄수화물 부족이 심한 경우 갑상샘 기능이 떨어져 기초대사량 감소까지 이어질 수 있다. 즉 탄수화물 섭취는 많아도 적어도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주며 핵심은 ‘균형’이다.

탄수화물은 죄가 없다. 섭취 방식이 문제다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은 서로의 기능을 보완하며 인체 대사를 조화롭게 유지한다. 어느 하나를 과도하게 제한하면 나머지 영양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곡물, 채소, 통곡류, 통과일 등 천천히 소화되는 탄수화물 섭취를 권장하지만 흰쌀밥이나 정제된 곡물도 적정량을 채소나 단백질과 함께 먹으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 식사 순서를 채소, 단백질, 탄수화물 순으로 구성하는 것만으로도 혈당이 안정되고 포만감이 높아진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운동 전후에 적정량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이 오히려 운동 능력과 회복에 도움이 된다. 단 당류를 과다 섭취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최근 한국영양학회가 총당류 섭취를 하루 총에너지의 20% 이내 특히 가당 음료는 10% 이내로 제한하라고 권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루에 밥을 몇 숟가락밖에 먹지 않는다는 등 극단적인 저탄수화물 예찬론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작아진 밥주걱에도 탄수화물은 적게 섭취할수록 좋다는 믿음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건강을 지키는 힘은 언제나 극단이 아니라 균형에서 나온다. 쌀밥을 적게 먹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정량을 다른 영양소와 함께 균형 있게 섭취할수록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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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kpkim62@gmail.com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조선일보 출판국 기자, 월간 <여성조선> 편집장, 조선일보 행복플러스 섹션 편집장, 월간 <헬스조선> 편집장,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지냈다. 현재 의학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며 <주간조선> 등 다양한 매체에 의학 기사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