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배상책임보험 트집 잡다 '역풍'···환수금 대신 망신살 챙겼다

법원 "근무자 수 달라도 배상책임보험 유효" 공단 처분 취소···"정산 문제를 '무보험' 둔갑" 변호사 "자진환수 명백한 위법···다퉈야"

2025-11-20     김현우 기자
법원이 "직원 수 달라도 배상책임보험 유효하다"면서 건보공단의 환수처분을 취소 판결했다. 인원 변동은 정산 문제일 뿐 해지 사유가 아니라며 요양원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규정 위반이니 지급된 비용을 환수하겠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의 요양원 대상 처분에 대해 법원이 "요양원 측 주장이 타당하므로 환수는 부당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요양원은 입소자의 안전사고 등에 대비해 '전문인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때 요양원은 보험사에 근무 직원 수를 신고하는데 돌봄 노동의 특성상 이직이 잦아 실제 근무 인원은 수시로 변동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가령 보험 증권에는 직원 수가 10명으로 기재되어 있어도 실제로는 11명이 근무하는 날이 발생하기도 한다. 건보공단은 이를 두고 "신고된 인원과 실제 인원이 다르므로 해당 보험은 무효"라며 "요양원 운영을 위해 지급했던 요양급여 비용을 전액 환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실제 지난해 7월 건보공단은 국내 A요양기관을 대상으로 이 같은 이유를 들어 환수 조치를 내렸다. 요양원 측은 "직원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것일 뿐이고 보험료를 정산하면 될 문제를 두고 보험 효력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맞섰다. 결국 이 사건은 행정소송으로 이어졌고 법원은 요양원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증권보다 근무자가 많아도 배상책임보험은 유효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이를 단순 정산 문제로 판단해 공단의 환수 처분을 취소했다. 이로써 공단의 무리한 자진환수 요구도 법적 근거를 잃게 됐다. /법무법인 반우

2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3일 A장기요양기관이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장기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동안 공단은 현지조사 과정에서 요양기관의 실제 근무 전문인 숫자가 보험증권에 기재된 숫자보다 단 한 명이라도 많을 경우, 해당 기간을 '무보험 상태'로 간주해 지급된 급여 비용을 전액 환수해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공단의 기계적인 법 적용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을 승소로 이끈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실제 근무 인원이 증권 기재 숫자를 일부 초과하는 것은 보험료 정산(추징)의 문제일 뿐, 보험사가 보상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계약 해지' 사유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실제로 KB손해보험 등 보험사들은 인원 초과가 발생해도 사후 정산을 요구할 뿐 면책을 주장하지 않는다"며 "민간 보험사조차 문제 삼지 않는 사안을 공단이 과도하게 해석해 '보험 미가입'으로 몰아가는 것은 행정권 남용"이라고 강조했다.

법원 역시 장 변호사의 법리적 주장을 전면 인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장기요양기관의 전문인 수는 휴가나 근무 일정 등에 따라 수시로 변동되는 특성이 있다"며 "이러한 변동을 보험 계약에 실시간으로 반영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상법 제652조에 따르면 보험 사고 발생 위험이 '현저하게' 증가한 경우에만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며 "수급자 수가 보험 가입 범위 내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전문인 수가 소폭 증가한 것을 두고 위험이 현저하게 증가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인원이 늘었다고 해서 보험금 미지급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판결은 그간 공단의 융통성 없는 법 적용으로 억울하게 환수 처분을 당해온 장기요양기관들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단이 최근 기간을 축소하여 진행 중인 '자진환수' 조치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장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따르면 공단이 요구하는 축소된 자진환수조차도 위법한 처분이 된다"며 "자진환수를 고민 중인 기관들은 섣불리 환수에 응하기보다, 처분 자체를 취소시키는 법적 대응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공단의 무리한 법 적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다행"이라며 "앞으로도 회원 기관들이 억울한 행정 처분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정교한 법리를 바탕으로 싸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