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깨는 유통가···여성 임원 전진 배치 '변화의 속도' 붙었다

신세계·CJ 등 성과주의 기반 ESG 경영에 여성 임원 증가세 전체 임원 대비 비중 아직 낮아

2025-11-19     류빈 기자
유통업계가 여성 인재를 리더로 앞세워 ‘유리 천장’ 깨기에 앞장서고 있다. /챗GPT

유통업계가 여성 인재를 리더로 앞세워 ‘유리 천장’ 깨기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주요 유통 그룹사의 연말 정기 임원 인사가 ‘성과주의’와 ‘젊은 리더’ 발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단행되면서 여성 인재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에서는 그룹 최초의 여성 CEO가 탄생하는 등 여성 리더십이 기업의 미래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부상 중이다.

1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유통업계의 2026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여성 임원이 증가하는 모습이다. 유통업계의 여성 임원 전진 배치는 성별에 관계없이 오직 성과와 전문성을 기반으로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성과주의 인사 원칙'이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소비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유통 산업 특성상, 여성 인재의 섬세한 통찰력과 추진력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ESG 경영 확산에 따른 조직 내 다양성 확보 노력도 여성 임원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최근 발표한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는 '젊은 리더'와 '성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그룹 최초로 여성 인재를 계열사 CEO 자리에 배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인사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2부문 대표이사로 이승민 대표(1985년생)가 내정됐다. 연세대 경영학 학사, 연세대 광고홍보학 석사를 졸업했으며 2019년 어뮤즈 마케팅 업무 총괄, 2021년 어뮤즈 대표이사직을 거친 이 신임 대표는 신세계그룹 창립 이래 첫 여성 CEO라는 기록을 세우며, 젊은 리더십을 바탕으로 코스메틱 사업의 새로운 전환을 이끌게 된다.

여성 인재가 전면에 등장한 데에는 신세계그룹이 ‘성과에는 보상, 부진에는 책임’이라는 원칙을 인사에 적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여성 인재뿐만 아니라 젊은 피가 대거 유입되며 신세계 신임 임원 32명 중 절반에 가까운 14명이 40대로 채워지기도 했다.

CJ그룹도 여성 인재를 핵심 보직에 전진 배치하며 조직의 다양성 및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CJ그룹은 2026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신임 경영리더(임원) 중 여성 임원 비율을 27.5%(11명)까지 확대했다. 이에 따라 그룹 전체의 여성 임원 비율도 기존 16%에서 19%로 높아졌다. 특히 여성 고객 비중이 높은 CJ올리브영과 CJ온스타일의 경우 여성 임원이 과반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는 그룹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30대 리더 발탁과 함께 조직의 혁신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인사 기조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계열사별로 보면 CJ올리브영에는 김도영 뷰티MD 사업부장(37), 김수주 헬시라이프MD 사업부장(36)이 30대 여성 리더로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88년생인 김도영 경영리더는 기초 스킨케어와 ‘럭스에딧’으로 럭셔리뷰티 카테고리로 경쟁력을 높인 성과를 인정받았고, 89년생인 김수주 경영리더는 올리브영 최초 PB 매장 ‘딜라이트 프로젝트 해운대점’, 남성 특화 매장 ‘홍대놀이터점’ 등으로 매장 혁신과 K-팝, 취미 등 신규 카테고리 개척을 주도했다. CJ제일제당에는 식품 프로틴 사업을 담당한 89년생 장나윤 경영리더가 냉동 치킨 시장, K-스트리트 푸드 등 식품 포트폴리오 확대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여성 대표이사들도 유통가를 이끌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이정애 대표이사 사장 후임으로 로레알 출신 이선주 신임 대표를 발탁하며 연이어 여성 대표를 선임했다. CJ올리브영의 이선정 대표이사 등 이미 선임된 여성 CEO들도 뛰어난 성과를 바탕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후속 여성 인재 발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여성 임원 발탁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 기업 전반적으로 여성 임원 비율은 미미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 기업 유니코써치가 지난 5일 발표한 ‘2025년 국내 100대 기업 여성 임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올해 100대 기업 여성 임원은 총 47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63명보다 여성 임원이 1년 새 2.8% 증가했다. 하지만 100대 기업 전체 임원 수가 7306명으로 남성의 비율이 6830명(93.5%)인 것과 비교하면 임원진 구성은 아직까지 남성 중심의 피라미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수의 여성 임원 발탁이 단순한 ‘구색 갖추기’에 그쳐서는 안 되며, 고위직 의사결정 과정에 성별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기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여성 인재 육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유통·소비재 기업들은 섬세한 소비자 통찰력을 지닌 여성 리더 선임을 꾸준히 늘리는 데에 앞장서며, 디지털 전환(DX)과 ESG 경영, 글로벌 소비시장 변화 등 기업 환경이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여성 임원의 전략적 역할을 더 부각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올 연말과 내년 초 단행될 100대 기업 임원 수는 전체적으로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다양성과 공정성을 중시하는 인사 기조 속에서 여성 인재 선임은 오히려 확대될 것”이라며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1~2년 내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 수가 500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