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론스타 사건, '시작은 DJ, 끝은 한동훈'이란 유치한 서사
외환銀 매각 검증 실패는 감독 문제 중수부는 핵심 비켜간 ‘반쪽 수사’ 시스템 부실을 외세와 승부로 치환 영웅·악당 구도로 역사 재조립 시도
론스타 사태는 20년에 걸쳐 금융·행정·사법·국제중재가 얽힌 복합 사건이다. 그럼에도 최근 야권 일각에서는 “론스타의 시작은 김대중, 끝은 한동훈”이라는 단선적 서사를 내세워 복잡한 구조를 영웅·악당 구도로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기록과 판례에 비춰보면 지난 2003년 외환은행 매각 당시 감독당국이 판단했어야 할 핵심은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여부였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는 기본적 검증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이후 재판에서 담당 사무관이 “상세한 검토는 없었다”고 시인한 대목은 감독체계의 구조적 실패를 상징한다.
금융당국이 의존한 근거는 회계법인 삼정 KPMG가 제출한 확인서 한 장뿐이었다. 대주주 적격성이라는 중대한 판단이 기업 측이 가져온 자료에 사실상 전적으로 의존해 이뤄진 셈이며, 이 취약한 구조는 훗날 국제중재에서도 한국 정부 논리의 약점이 됐다. 이는 특정 정권의 책임이라기보다 정치 제도의 실패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이재명 정부를 포함한 어떤 정권도 이 최초의 판단 구조를 재점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독 행위는 반복된 관행과 책임 회피 속에서 하나의 ‘구조적 결함’으로 굳어졌고,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았다.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등장한 ‘한동훈 업적 미화’ 시도는 정치 실패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2006~2008년 윤석열·한동훈·이복현 팀의 수사는 핵심 쟁점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 중수부는 헐값 매각 논란과 자기자본비율(BIS) 조작 여부에 집중했지만, 외환은행 인수의 정당성을 좌우하는 대주주 적격성 문제는 아예 다루지 않았다.
당시 시민단체가 여러 차례 제시한 법리들도 반영되지 않았다. 공판 기록에는 담당 사무관이 산업자본 여부를 “론스타가 맞춰 오는 것”이라고 진술한 내용이 남아 있는데, 이는 감독기관이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문서 수령 기관’으로 전락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감독 행위의 정당성을 흔드는 대목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이번 ICSID 취소 결정을 두고 “국가가 돈을 덜 내게 됐으니 한동훈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거 ‘헐값 매각 프레임’과 같은 구조다. 비싸게 팔렸다면 문제가 없었다는 것처럼 여론을 자극하고 ‘결과의 크기’만 강조하며 본질을 흐린다.
2012년 론스타의 제소 역시 정부가 하나금융 인수 승인을 지연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에 기반한 것으로, 애초 쟁점이었던 대주주 적격성 문제와는 직접적 법리가 연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지권은 외세와의 싸움으로 치환해 초점 흐리기에 매진했다.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엘리엇 ISDS 소송도 같은 선상이다. 이재용 회장 승계 문제로 점철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은 검찰과 참여연대가 만들어낸 ‘불법 시너지 조작’ 프레임이 국제중재에서조차 뒤집혀 한국 정부의 대응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당시 엘리엇은 주식매수청구권만으로 500억 넘게 이득을 보고 떠났고, 3년 후에야 ISDS를 제기했다.
검찰은 “승계 목적 조작 → 합병 왜곡 → 국민연금 배임”이라는 구조를 끌고 가며 사건을 형사·민사·국제중재로 억지 확장해 왔다. 하지만 법무부가 ISDS에서 직접 제출한 변론 자료는 이 프레임을 오히려 탄핵했고, 국제 재판에서도 ‘압력·시너지 조작’ 논리가 설 자리가 없었음이 드러났다. 합병 과정에서 감독기관들이 어떤 근거로 승인과 제재를 했는지에 대한 일관된 기록과 기준이 부재한 것이 논란의 본질이었다.
국제중재는 감독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행정 절차의 공정성을 기준으로 한다. 2022년 론스타 배상 판정도 고의적 차별 판단이 아니라 일부 절차가 공정·공평 대우 기준에 미달했다는 취지였고, 배상액 역시 추정 산식에 따른 금액이었다. 2023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의 취소신청은 절차 위반 여부를 다투기 위한 통상적 대응이었을 뿐이다.
법무부·외교부·민간 전문가가 함께 수행하는 구조적 절차를 특정 개인의 단독 성과로 보긴 어렵다. 이번 ICSID 취소 또한 ‘증거 채택 과정의 규정 위반’이라는 제한적 논점에서 인정된 것으로, 본안 판단이 뒤집힌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조갑제·박상수 등 일부 야권 인사는 특정 개인의 공·과로 귀속시키는 유치한 서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이런 정치 메시지 공작은 한덕수(당시 김앤장 고문)·추경호(재경부 은행제도과장) 라인을 ‘과거의 희생양’으로 소환해 국민의힘 내부 분열을 낳고, 감독·정책 실패라는 구조적 문제를 더욱 흐린다. 결국 “시작은 김재중(DJ), 끝은 한동훈”이라는 주장은 사실 관계를 단순화할 뿐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제도를 하나의 인과로 엮어 국민을 호도하는 물타기일 뿐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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