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잠수함 팩트시트에 담겼지만···실상은 한미원자력협정 ‘도돌이표’
성과 이면에 드러난 ‘민감국가’ 그림자 미국 의회와 DOE의 추가 승인도 전무 건조 장소, 핵연료 등 핵심 쟁점 빠져
한·미 양국이 최근 발표한 관세·안보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숙원이던 핵추진잠수함 건조 협력이 공식 문서에 포함됐다. 겉으로는 한·미 원자력 협력의 새로운 전기를 연 듯하지만, 협상 지연의 배경과 문안의 실제 내용을 뜯어보면 ‘성과’라 부르기에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외교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번 팩트시트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진 핵심 이유로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올해 초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한 사건이 지목된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한국의 독자 핵무장론 부상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았고, DOE 내부 검토에서도 이러한 의구심이 끝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의도를 다시 설명하고 미 기관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는 것이다.
문서가 발표되긴 했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모호한 구석이 적지 않다. “핵추진잠수함을 건조 추진한다”는 원칙은 담았으나, 정작 어디에서 건조하는지, 누가 기술을 제공하는지, 핵연료는 어떤 체계로 공급·관리되는지 같은 실질적 쟁점은 빠져 있다. 미국이 호주와 맺은 AUKUS 협정처럼 건조 장소·조선소 확충·핵연료 공급 방식이 일정 수준 이상 구체화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특히 핵연료 문제는 협상 전망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다. 미국은 군사용 고농축우라늄(HEU) 이전에 극도로 보수적이고, 원자력 기술·물질 이전을 규율하는 한미원자력협정(123협정) 또한 타국의 무기용 핵물질 접근을 강하게 제한한다.
결국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협력이 ‘한미원자력협정 이상의 도약’이 되려면 미국 의회와 DOE의 추가 승인, 강화된 비확산 검증체계 등 새로운 조치가 동반돼야 하나, 이 절차는 단기간에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DOE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다는 사실은 향후 협상 이행 과정에서도 지속적인 제동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미국 내부에서 한국의 의도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제기될 경우, 기술 이전이나 연료 공급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농축·재처리 권한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경우 미국 의회의 감시 강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팩트시트 문서화가 외교적 ‘시작점’을 제공한 것은 맞지만, 이를 정책적 결정이나 기술적 이전의 확정 단계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지적한다. 동일하게 핵 호주가 수십조원 규모의 인프라·조선소 확충·연료관리 시스템을 먼저 공개적으로 확정한 것과 달리, 한국은 아직 기본 전제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이번 합의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의 부분적 진전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며 “한·미가 문서상으로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심사 체계와 국제 비확산 체제의 울타리 안에서 협상은 여전히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서화의 외형적 성과와 달리 실제 핵잠수함 건조·연료공급 구조가 구체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