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돌려 '돈' 버는 시대···中, 이동하는 '초대형 보조배터리' 가동
2027년까지 V2G 5000개 구축 목표 제시 전기차 한 대로 가정 2~3일 치 전력 공급 충·방전 배터리 수명 저하 우려 크지 않아 "中 에너지 저장·탈 원유에 큰 기여 예상"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을 보유한 중국이 주차된 전기차를 대규모 에너지저장 장치로 활용하는 '차량-전력망 연계(V2G)' 프로젝트를 본격화한다. V2G가 상용화되면 충전 기술 진화를 넘어 에너지 시스템 전환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아 전력망 안정과 탈원유 등 중국 에너지 소비 구조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는 지난 10월 중국의 신에너지 차(NEV) 판매량이 약 172만 대라고 밝혔다. 전체 신차 판매의 51.6%로 신에너지 차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1~10월 기준 신에너지 차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33.1% 늘어난 약 1302만 대로 전체 신차 판매의 46.7%를 차지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전기차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 정부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를 포함한 국가에너지국·공업정보화부·시장감독관리총국 등 4개 부처는 'V2G 상호작용 규모화 시범 사업 추진 통지'를 통해 베이징·상하이 등 9개 도시를 시범 지역으로 지정하고 오는 2027년까지 V2G 충전소 5000곳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V2G는 차량에 장착된 양방향 충전기를 이용해 전력 수요가 낮은 시간에는 충전하고 피크 시간에는 전력을 다시 전력망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전력 가격이 달라지는 '시간대별 전기 요금제(TOU·Time of Use)' 구조를 기반으로 전력이 저렴한 밤에는 충전하고 냉난방 수요가 집중되는 낮에는 전력을 공급하는 원리다.
전기차 한 대의 배터리 용량(평균 50~100kWh)은 일반 가정 전기 사용량(약 28.3kWh/일)을 고려하면 2~3일 치 전력에 해당한다. V2G 기술을 통해 양방향 충전소를 설치하면 차량 자체를 '초대형 보조배터리'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차주에게는 '수익 창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다. 중국 국유 전력사 스테이트그리드(State Grid·国网) 관계자는 "V2G에 상시 참여한 차주의 경우 3년간 방전 수익이 1만 위안을 넘었고 충전 비용을 제외한 연간 순수익은 약 1300위안 수준"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전기차 보유량이 이미 4000만 대를 넘어섰으며 2030년에는 1억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관료들은 이 방대한 전기차를 V2G 시스템에 활용할 경우 약 10억kW의 전력 용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더 인텔리전스는 V2G 시장 규모가 2025년 57억5000만 달러(약 8조3196억원)에서 2030년 195억 달러(약 28조2145억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연평균 성장률 27.6%에 달하는 고성장 시장이다.
다만 V2G가 상용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높은 설치비와 소비자 저항, 미흡한 전기요금 체계 등이 주요 걸림돌로 꼽히며 전 세계 27개국에서도 10년 넘게 소규모 시범 단계에 머물러왔다. 현재 V2G를 공식 지원하는 모델도 BYD·니오·Aion 등 일부에 그치고 양방향 충전기 설치비는 2100~2800달러로 단방향 대비 2~3배 수준이다.
배터리 수명 저하 우려도 존재한다. 잦은 충·방전이 고가 배터리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국가 전력망 통계에 따르면 출퇴근 중심의 일반 차량은 연간 충전 횟수가 약 50회 수준이며 현재 동력 배터리 수명은 최소 2000회 이상으로 평가된다. 차 한 대당 1000회 이상의 충·방전 여력이 남아 있어 적절한 충·방전 관리 전략을 적용하면 배터리 수명 유지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저장성 저우산시 V2G 시범 스테이션에서 200회 이상의 얕은 충·방전 후에도 배터리 용량이 93% 이상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전력망은 현재 20개 성·시에 약 1500대의 V2G 충·방전기를 구축했으며 올해 1~8월 누적 방전량은 2만8000kWh다.
업계는 V2G를 중국 전력 인프라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 핵심 기술로 본다. 류융둥(刘永东) 중국전력기업연합회 부비서장은 "정책과 기술이 함께 추진된다면 V2G의 집합형 저장 잠재력은 매우 크다"며 "2050년 신에너지 차 보유량이 3억5000만 대에 이르면 차량 배터리 총용량은 240억kWh에 달하고 단주기 에너지 저장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V2G 확산은 전기차 대중화를 촉진해 휘발유·디젤 등 탈원유 흐름도 더 빨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앨런 젠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통 연구소 박사는 "중국이 전기차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선두 주자이지만 V2G 배치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면서도 "중국 정부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와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려는 의지가 크기 때문에 V2G가 다른 나라보다 더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