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 더봄] 보석으로 한국의 풍경화를 그리다···문소이 디자이너의 주얼리 세계
[민은미의 보석상자] (111) 영국왕립예술학교 출신 올가을 런던 첼시 무대 올린 ‘금동관·금동신발’ 주얼리 현지서 호평 대영박물관 입점 제안 받고 논의 중
신라에 금관이 있다면, 백제에는 금동관이 있다. 청동에 금을 입혀 만든 금동관(金銅冠)은 정교한 세공 기술과 미적 감각, 그리고 백제 왕실의 품격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문소이 디자이너가 금동관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하여 현대적인 주얼리로 되살렸다.
‘금동관을 쓴 호랑이’ 컬렉션이 최근 런던 첼시 올드 타운 홀(Chelsea Old Town Hall)에서 열린 문소이 디자이너의 전시회(11월 5일~8일) 대표작으로 포스터를 장식했다.
전시회가 열린 첼시 지역은 고급 주거지가 밀집한 곳으로 런던의 예술과 라이프 스타일의 중심지다. 19세기 후반에는 예술가들이 이곳에 몰려들며 ‘예술가의 마을’로 불렸다.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인 터너와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등이 이 지역에 살았다.
20세기엔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킹스 로드에 부티크를 열어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 예술가 계보 위에 한국의 주얼리 디자이너 문소이가 서 있다. 지난 11월 1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문소이 디자이너를 만났다.
—런던 전시를 마친 소감은.
“RCA(Royal College of Art, 영국왕립예술학교) 졸업 후 20년 동안 열심히 달려온 저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자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발을 디딘 곳에 다시 돌아가 저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자리에서 마주칠 수 있었죠.
특히, 첼시 올드 타운 홀은 2003년 RCA 1학년 때 첫 전시 장소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온 20대의 젊은 작가 지망생이 작품을 처음으로 판매했던 곳입니다. 전시 첫날, 처음으로 브로치를 구매하신 고객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고객에게 떨렸지만, 당당하게 ‘가격은 오늘 지불하셔야 하며, 브로치는 전시가 끝나고 나서 주겠다’고 말했어요. 첫날 고객이 작품을 가져가 버리면 다른 분께 보여줄 수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그분은 OK 하셨고, 전시가 끝나고 직접 오셔서 브로치를 하나 더 구매하셨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기억에 남는 런던 현지 반응은.
“올해는 한국 콘텐츠의 힘을 제대로 실감 나게 느꼈습니다. K-팝, K-푸드, K-뷰티에 대한 인기와 위상은 수년 전부터 경험했습니다만, 이번에는 특히 한국 문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에 놀랐습니다. 제 주얼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호감으로 이어졌어요.
실제로 고객 중 한 분은 <82년생 김지영>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다고 책을 보여주셨죠. 또 어떤 분은 <파친코>를 읽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관계를 이해했다고 하셨어요. 한국에서 온 이방인일 수 있는 저의 작품을 흔쾌히 구매해 주셨습니다. 현지에서 칭찬도 많이 들었어요. 천재적이다. 똑똑하다. 아름답다 등··· 칭찬을 들으니 힘이 나고 행복했습니다.”
문소이 디자이너는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광주 예술의 거리에서 화랑을 운영하셨고 어릴 때부터 예술을 접하며 성장했다. 학창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진학을 포기했다. 그러다 신문에서 동신대학교에 ‘보석공학과 국내 최초 개설’이라는 뉴스를 본 어머니의 권유로 동신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설립된 보석공학과에 1기로 입학하여 보석 감정, 감별, 보석 합성, 세공, 디자인까지 보석에 대한 전반적인 분야를 학사와 석사 과정에서 배웠다. 공대 안에 있던 보석 공학은 어려운 학문이었지만, 보석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디자인이 가장 재미있었고, 디자인과 세공을 통해 실제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주얼리 디자인을 더 배우고 싶은 꿈을 안고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영국왕립예술대학교에 도전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진짜로 합격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한 채, 그냥 도전해 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덜컥 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지만 런던을 배경으로 다양한 경험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RCA에서 배운 것은? 국내와 달랐던 점은.
“RCA에 입학했을 때 한국 출신 가운데 지방에서 온 학생은 저밖에 없었어요.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등 서울의 명문대에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모두 자기가 ‘Best of Best’라고 했죠. 그런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도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만든 작품을 타인에게 세세하게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영국 유학은 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였습니다. 작업에 대하여 고민하던 시기에 담당 교수님이었던 데이비드 왓킨스는 늘 저를 ‘Brave girl’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면서 ‘잘하는 것을 더 잘하라’라고 격려하셨죠. 그 말이 제겐 해답이 되었습니다. 한국적인 모티브와 저만의 것을 찾고자 집중했습니다.
영국의 왕실 보석을 담당하는 업체와의 파트너십에 선정되어 투명 칠보(七寶) 기법을 배웠고 학생 신분으로 대규모 전시회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습니다. 평소 겁도 많고 조용한 편이지만,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습득했고 또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도전을 수없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 노력이 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지난 20년 동안 가장 기억 나는 순간이 있다면.
“TV 프로그램 ’역사 저널 그날’의 출연이 아닐까 싶어요. 작업을 하는 사람이 대중 앞에 서는 일은 극히 드무니까요. 신라시대 금관을 모티브로 한 보석 우표 주얼리 작품을 보고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왔습니다.
수많은 조명과 촬영 스태프, 아나운서, 역사학자, 연예인들 앞에서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일은 떨리지만 즐거운 일이었어요. 인기 프로그램에 신라의 주얼리를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고 한국의 전통 금속 공예와 현대 주얼리를 소개함으로써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 전통을 주얼리로 선보여 왔던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을 다시 한번 다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문소이 디자이너는 2003년 첼시 페어를 시작으로 RCA 졸업 전시회가 끝나고 에든버러, 브라이턴, 런던에 있는 갤러리 등에서 전시 오퍼를 받고 6개월 동안 순회 전시회를 했다. 이후 미국, 중국, 싱가포르, 태국, 홍콩 등 세계 각국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귀국 후 모교인 동신대학교에서 주얼리 디자인을 강의하며 외래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서울과 광주 지역의 다른 대학에서도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주얼리와 기(氣)찬 젬을 콘셉트로 보석 광물을 선보이는 ‘소이 갤러리’를 전남 나주에서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2024년 12월 싱가포르 호텔 아트 페어를 시작으로 5월 중국 징더전의 아트페어, 10월 전남 영암에서 진행된 대한민국한옥비엔날레, 그리고 11월 런던 핸드메이드 첼시까지 참가하며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9월에는 홍콩에서 열린 주얼리 쇼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그녀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 한국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차분히, 그러나 뚜렷하게 세계를 물들이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동안 얻은 성과는.
“보석과 주얼리를 통해 한국을 알린다는 것이 저에게는 기쁨이자 성과입니다. 이번 영국 전시를 통해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숍에서 저의 주얼리 컬렉션이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보여주는 매력적인 모델이라며 입점 제안을 해왔습니다. 특히, 금동관을 쓴 호랑이 컬렉션에서 에나멜의 다채로운 컬러에 대한 반응이 좋았고 금동신발 펜던트, 플라워 목걸이 등에 관심을 보여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 작가로서의 실적도 중요하지만, 광주 지역 주얼리 제조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돕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 큰 성과입니다. 지난 2년 동안 동신대학교 시군구 연고 사업인 ‘주얼리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및 경쟁력 강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홍콩의 HKJJA(Hong Kong Jewellery & Jade Manufacturers Association)와 광주 동구청, 광주주얼리사업단, (사)광주귀금속보석기술인협회의 MOU(양해각서) 체결을 성사시키고, 주얼리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지원하는 견인 역할을 담당했는데 매우 보람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작품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의 ‘오리지널리티’입니다. 한국의 전통문화 유산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우리만의 고유한 모든 것이 디자인 영감이 됩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풍경화 같은 주얼리가 바로 저의 세계입니다.
저는 호박, 비취, 산호, 아게이트 등 다양한 유색 보석을 활용한 주얼리를 한 폭의 풍경화처럼 제작하여 선보입니다. 작품을 보면 보석의 컬러 조합이 유럽이나 해외 작품의 분위기와는 달리 유니크하다고 평가해 주십니다. 보석의 색 조합에서도 문소이다운 색을 표현합니다.”
—우리 전통이나 유산에서 작품을 착안하는 이유는.
“한국의 전통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훌륭한 디자인 소스입니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이름 그 자체로 낡고 올드해 보이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광주와 나주 지역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금동관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주얼리를 만들 때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좀 더 친근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고, 오래된 우리의 것에서 오늘의 시대적인 가치를 담고 싶습니다.”
—주얼리 디자이너로 보람 있었던 순간은.
“결국은 사람입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더라도 주얼리를 착용해 주는 고객이 없다면··· 제 작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저의 가치를 알아봐 주시고 철학을 이해하며 작품을 보며 눈을 빤짝빤짝 빛내는 고객을 만날 때 가장 행복합니다.
보석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주얼리로 착용하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창의력으로 이를 착용할 사람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우리와 더 가깝게 일상에서 착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 즉 주얼리 디자이너는 보석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문소이는 ○○○ 주얼리 디자이너다.’ 어떻게 정의하세요.
“나 문소이는 ‘스스로 빛나는 보석’같은 주얼리 디자이너다.”
—문소이의 주얼리를 대표하는 한 문장이 있다면.
“Landscape of Korea. 보석으로 그리는 한국의 풍경화입니다.”
여성경제신문 민은미 주얼리 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