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사실이면 명예훼손 처벌 말자" 갑자기 왜?

여당이 개정안 추진, 징벌적 손배제도 “공익 목적이면 OK” 이미 법에 보장돼 법조계 "표현의 자유 보장되지만 우려"

2025-11-14     이상무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지시하자 한동안 수면 아래 있던 논란이 부상했다. 대선 후보 때부터 주장하던 것이 아닌데 갑자기 화두를 던진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13일 여권에 따르면 여당은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과 정보통신망법의 관련 조항을 함께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폐지 법안을 중심으로 논의는 속도를 내게 됐다.

해당 법안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아예 삭제하고 명예훼손의 경우 ‘고소가 있어야 공소 제기’가 가능한 친고죄로 바꾸는 내용이다. 같은 당 최기상·신정훈 의원은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사실 적시’의 경우에만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도록 제한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형법 제307조 제1항(‘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에 규정돼 있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때 만들어진 뒤 약 32년간 변화가 없다가 1995년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죄) 조항이 추가된 채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1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은 5(합헌)대 4(위헌)로 갈렸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형사처벌이 아니라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고 직접 폐지론에 무게를 실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의도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위한 밑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언론이나 유튜버의 악의적인 허위조작 정보 유포에 대해 손해액의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 배상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을 지난달 발의했다. 허위사실은 강력하게 처벌하는 대신 사실이면 봐주는 획일적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사처벌이 아닌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다룬다. 하지만 ‘있는 사실을 말한 것’이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일단 찬반 양론이 있는 사안이라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Lkb파트너스 하신욱 대표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대통령이 어떤 형사 처벌 법 조문 하나를 빼라, 살려라 이렇게 관여하는 게 좀 일반적이지 않아서 그 진의가 뭔지 사람들이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 다만 그 표현으로 인해서 상대방이 어떤 피해를 입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하는 걸 없애려고 그 조문이 형법에 들어간 것"이라며 "그런 처음의 취지는 과연 어떻게 살릴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추진을 하는 건지 의문이 있다"고 덧붙였다.

악성 댓글과 타인 비방이 난무하는 한국 온라인에서의 ‘사적제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과거 범죄자를 폭로하거나 신상을 공개하는 행위가 ‘정의 구현’으로 포장되며 사회적 매장이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공권력을 우회한 자의적 응징인 셈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단순히 ‘형벌 과잉’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행 형법 제310조는 ‘공익을 위한 진실한 사실의 적시’는 처벌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판례 역시 사익이 일정 부분 개입되더라도 공익성이 주된 목적이라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다. 즉 공익 목적의 고발은 이미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벌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는 법 조항의 한계가 아니라 ‘공익성 없는 악의적 폭로’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감정적 보복이나 개인적 복수심에서 비롯된 사실공표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가해 행위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판사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문제라면, 폐지보다 사법부의 인식 전환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표현의 자유 확대를 명분으로 악의적 사실 폭로까지 비범죄화할 경우 사회적 린치가 제도적 통제 밖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결국 쟁점은 ‘형벌권 축소’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명예 보호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공익적 발언과 사적 응징의 경계를 정밀하게 구분할 법리적·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게 될 전망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