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에 번진 ‘인력 재편 태풍’···창사 첫 감축도 속출
편의점·이커머스·면세점 등 희망퇴직 실적 부진 속 창사 첫 감축 잇따라 정치권 정년 연장 논의에도 인력 조정 AI 확산에 구조조정 흐름 보편화
유통업계 전반에 인력 재편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장기화된 데다 온라인 경쟁 압력이 더해지면서 기업들은 연말에도 인력 구조를 다시 짜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창사 이래 최초 희망퇴직을 실시하는가 하면, 각 사는 전례 없는 조건의 퇴직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조직 효율 극대화에 돌입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통 대기업 계열사들부터 이커머스 업체들까지 대규모 칼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지난해 유동성 위기설이 퍼졌던 롯데그룹은 전 계열사에 걸쳐 인건비 감축을 통해 수익성 개선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신세계그룹도 조직 슬림화를 통해 녹록치 않은 경영 환경 속에서 비용 절감에 나섰다. 다른 기업들 역시 적자나 실적 부진이 이어진 상황에서 인력 축소에 돌입하고 있다.
롯데 계열사인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0월에도 희망퇴직을 실시하며 2년 연속 인력 감축에 나섰다. 올해는 만 45세 이상 간부급 직원 또는 10년차 이상을 대상으로 기본급 24개월분 위로금과 전직 지원금 1000만원, 대학생 자녀 학자금 등을 제시했다. 코리아세븐은 올해 상반기 매출 2조3866억원, 영업손실 427억원을 기록하며 2022년 이후 영업적자를 지속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롯데 계열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롯데칠성음료는 오는 21일까지 1980년생 이전인 만 45세 이상 또는 근속 10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창립 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근속 15년 이상 직원에게는 기준급여 24개월분 이상과 별도 재취업 지원, 대학생 자녀 학자금 등이 포함됐다. 롯데웰푸드도 올해 4월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진행했으며, 장기 근속자에게 기준급여 24개월분을 지급했다. 롯데멤버스도 근속 5년 이상, 1982년 이전 출생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공지했다.
신세계 계열의 온라인 플랫폼들도 희망퇴직에 나섰다. SSG닷컴은 법인 출범 1년 만에 처음 희망퇴직을 진행하며 근속 2년 이상 직원에게 최대 2년 치 월급을 보상했다. G마켓은 지난해 9월 희망퇴직을 시행해 무급휴직 선택권과 함께 재취업·창업 지원을 병행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달 뷰티 사업부 소속 판매·판촉·강사직(BA·BC·ES)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LG생활건강은 올해 2분기부터 화장품 사업이 적자로 돌아섰다. 또한 올해 3분기에는 연결 기준 매출 1조5800억원, 영업이익 4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8%, 56.5% 줄어든 가운데, 화장품 사업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26.5% 감소한 4710억원, 영업손실은 588억원을 기록했다.
오프라인 대표 기업들도 본격적인 슬림화를 택하고 있다. 이마트는 전년도에만 두 번의 희망퇴직을 열어 대리·사원급까지 범위를 넓혔다. 최고 40개월분 기본급과 직급별 전직 지원 패키지가 제공되며 사실상 대규모 조직 재정비에 들어간 셈이다.
면세업계의 조정 폭은 특히 크다. 해외 관광 회복이 더뎌지고 시내 면세점 운영 축소가 이어지면서 구조조정 강도가 한층 높아졌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8월 희망퇴직을 실시해 43세 이상·근속 10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통상임금 32개월분, 재취업 지원금 2000만원, 자녀 학자금 최대 3000만원 등 업계 최고 수준의 조건을 내걸었다. 신라면세점은 올해 5월 ‘즉시 퇴사 시 연봉 1.5배’ 혹은 ‘18개월 휴직 후 퇴사’ 옵션을 제시했고, 현대백화점면세점도 4월 시내면세점이 축소되면서 성과연봉 12~15개월치를 지급하며 희망퇴직을 받았다.
기업들의 희망퇴직 권고 기조는 내수 경기가 확실히 살아나고 원자재 비용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 한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치권의 정년 연장 논의도 유통업계에 부담을 키우고 있다. 정년이 늘기 전에 인건비 구조를 선제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기업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AI) 도입 등이 인력을 대체하면서 구조조정 흐름은 보편화될 것으로도 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최근 희망퇴직은 단순한 감원 전략이 아니라 미래 성장 분야에 맞춰 인력을 다시 배치하려는 움직임”이라며 “AI 도입 확대, 소비 패턴 변화 등을 감안하면 내년에도 구조조정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