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조 화이자 '승자의 저주'···ADC 2년 '옥석', 리가켐바이오 '순항'

100조 원대 ADC M&A, 2년 만에 성과 격차 뚜렷 화이자 부진·머크 순항 속 레고켐 ‘2.2조 딜’ 현실화 차세대 ADC 기술 경쟁 본격화, 글로벌 재편 시작

2025-11-14     김현우 기자
ADC 시장 동향 타임라인 보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인포그래픽 내용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글 제미나이,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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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숲 속 어딘가 적이 숨었다. 적만 골라서 정밀 타격 한다면 멀쩡한 자연을 훼손할 이유가 없다. 적만 골라내기가 쉽지 않은 이런 상황에선 폭탄을 숲 전체에 투하하면 비용도 시간도 절약될 것이다. 

기존 암 치료 방법도 비슷했다. 암세포만 골라서 타격하기 쉽지 않으니 우선 약을 투여해서 정상 세포가 피해를 입더라도 암세포를 사멸시키겠단 계획이었다. 그런데 항체-약물 접합체 즉 ADC로 암세포만 정밀 타격하는 기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글로벌 제약·바이오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쏟아붇기 시작했다.

2023년 약 100조원대 ADC M&A 전쟁 이후 2년, 시장은 급변했다. 화이자·머크 등 빅파마 통합 성과가 엇갈리는 가운데 한국의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전 레고켐바이오)는 얀센과의 2조원 기술수출이 실제 마일스톤 수로 이어지며 기술의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다.

1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은 2년 전의 뜨거운 M&A 광풍을 지나 ‘얼마나 성과를 냈는가’를 따지는 시점에 접어들었다.

2023년 화이자(Pfizer)가 시젠(Seagen)을 430억달러(약 56조원)에 인수하고 머크(MSD)와 애브비(AbbVie)가 총 320억달러 규모의 ADC(항체-약물 접합체) 투자에 나섰던 ‘100조 쩐의 전쟁’. 그로부터 만 2년이 지났다.

그해 12월 리가켐바이오가 얀센(J&J)과 총액 17억2250만달러(약 2.2조원)의 ADC 플랫폼 기술수출을 체결하며 K-바이오의 존재감도 부각됐다.

2023년 딜의 최대 승자는 단연 화이자였다. 56조원에 시젠을 품고 ADC 시장의 최강 플랫폼을 손에 넣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의 평가는 ‘절반의 성공’이다.

시젠의 기존 항암제 ‘애드세트리스(Adcetris)’와 ‘패드세브(Padcev)’는 화이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타고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시장이 기대했던 “시젠 플랫폼 기반의 신규 블록버스터”는 아직 가시적 성과가 부족하다.

코로나19 백신 매출 축소 이후 화이자는 ADC를 최우선 성장 전략으로 삼고 있지만, 430억달러 인수 효과를 입증하려면 보다 명확한 R&D 성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통합 이후 본격적인 ‘시젠 ADC 공장’ 가동이 관건이다.

반면 ‘공동개발’ 전략을 택한 머크(MSD)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머크는 다이이찌산쿄(Daiichi Sankyo)의 DXd 기반 ADC 기술 확보를 위해 최대 220억달러를 베팅했다. 이 플랫폼을 3개 파이프라인으로 확장 중이다. 일부 후보물질은 임상 데이터에서 긍정적 신호를 내며 시장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평가다.

애브비는 상황이 복잡하다. 이뮤노젠(ImmunoGen)을 101억달러에 인수하며 ADC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핵심 약물 ‘엘라히어(Elahere)’의 시장 확장 속도는 예상보다 더디다. 경쟁 심화로 성장세가 완만해지면서 “인수가 고평가됐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월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옥석 가리기’ 속에서 리가켐바이오의 존재감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2023년 말 얀센에 기술수출한 TROP2 표적 ADC ‘LCB84’가 글로벌 개발을 순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LCB84는 현재(2025년 11월) 미국에서 임상 1/2상이 이어지고 있다. 개발 진행에 따라 얀센으로부터 초기 마일스톤을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액은 비공개지만 ‘2.2조 원’이라는 총액이 실제로 수익화 가능성이 열렸음을 보여주는 첫 신호다.

2023년 ADC 전쟁이 ‘3세대 ADC’의 주도권 경쟁이었다면 2025년의 전쟁은 한 단계 앞선 ‘차세대 접합 기술’로 무대가 이동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결합한 RDC(방사성의약품 접합체), 두 가지 페이로드를 한꺼번에 전달하는 듀얼·이중항체 기반 ADC, 새로운 접합 화학 등 차세대 기술의 M&A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 아스트라제네카(AZ) 등 2년 전 참여하지 않았던 기업들도 큰손으로 시장에 진입했다.

리가켐바이오도 ‘ConjuAll(콘주올)’ 플랫폼을 확장해 방사성·이중항체 기반 접합 기술을 전임상 단계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DC 전문기업’을 넘어 ‘접합 기술 플랫폼 기업’으로의 확장을 선언한 것이다.

채제욱 리가켐바이오 최고사업개발책임자(CBDO)는 1일 열린 ‘LigaChemBio Global R&D DAY 2025’에서 "파트너사인 씨스톤과 익수다가 개발 중인 자사 파이프라인의 경우에도 제3자 빅파마 기술이전 가능성이 있다”며 “새로운 혁신이 내부적으로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는 만큼, 회사의 라이선스 밸류는 가파른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