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 끝났다···3분기 제약·바이오社 성과 '피라미드'

국내 상장 제약·바이오 3분기 실적 분석 삼성바이오·셀트리온 매출·로열티로 전환 수익성 방어 나선 회사, 투자심리 급속 냉각

2025-11-13     김현우 기자
K-제약바이오 2025 3분기 성과 피라미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상세히 확인 가능합니다. /구글 제미니,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K-제약바이오 2025 3분기 성과 피라미드. 상단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상세한 확인이 가능합니다. /구글 제미니,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2025년 3분기 실적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K-바이오의 ‘옥석 가리기’가 뚜렷해졌다. 고금리 기조와 위축된 투자 심리 속에서 연구·개발(R&D) 성과를 실제 매출·기술료·로열티로 연결한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의 격차가 한 분기 사이에 크게 벌어졌다. 여성경제신문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기준으로 국내 상장 제약·바이오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12개사의 2025년 3분기 실적과 R&D 현황을 정리했다.

이번 3분기 성적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집단은 ‘절대 강자’ 그룹이다. 이들은 이미 확보한 생산기지·플랫폼·라이선스 계약을 기반으로 숫자를 키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분기 매출 1조6602억원으로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다시 썼다. 5공장 가동이 안정 국면에 들어서면서 연간 누적 수주액은 5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수주잔고가 장기 계약 위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2~3년 실적 가시성도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셀트리온도 3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3010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자가면역질환 피하주사 제형인 램시마SC는 미국에서 ‘짐펜트라(Zymfentra)’라는 신약으로 출시돼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 짐펜트라 미국 처방 확대가 이어지면서 기존 바이오시밀러 위주의 구조에서 신약 매출 비중을 키우는 구도가 분명해졌다.

알테오젠은 2025년 9월 하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피하주사 제형(Keytruda SC) 허가를 받으면서 모멘텀을 확보했다. 알테오젠이 보유한 인간 히알루로니다제(ALT-B4) 기술이 키트루다SC에 적용된 만큼 3분기를 기점으로 기술사용료와 마일스톤, 이후 로열티 수취가 본격화되는 구조다. 규모가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향후 적응증 확대·투약 환자 수 증가에 따라 상당한 수준의 기술 수익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레고켐바이오도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와 맺은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이전 계약에 따라 상반기부터 단계적으로 마일스톤을 수취하며 플랫폼 가치를 입증했다.

한미약품은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로 R&D 성과를 구체적인 허가 일정에 근접시켰다. 당뇨병을 동반하지 않은 성인 비만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40주 차 기준 에페글레나타이드 투여군의 평균 체중 감소율은 9.75%였다. 같은 기간 위약군은 0.95% 감소에 그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됐다. 회사는 이 결과를 토대로 ‘연내 국내 신약허가신청(NDA)’ 목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종 64주 차 데이터가 남아 있지만 최소한 국내 허가 절차를 밟기에 필요한 기반은 마련한 셈이다.

반면 일부 회사들은 임상 성과와 회계 처리의 타이밍이 엇갈리며 숫자만 놓고 보면 ‘실적 부진’으로 분류됐다. 유한양행은 리브리반트+렉라자 병용 1차 치료(비소세포폐암) 글로벌 3상에서 무진행생존기간(PFS) 중앙값 23.7개월을 확보해 임상 데이터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냈다. 그럼에도 2025년 3분기에는 렉라자 미국 상업화에 따른 대규모 마일스톤 유입이 없었다. 전년 동기(2024년 3분기)에 약 800억원 규모의 기술료가 일시 반영됐던 기저 효과가 사라지면서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5.7% 줄었다. 같은 기간 R&D 비용도 전년보다 49.6% 감소했다. 마일스톤 공백 속에서 회사가 수익성 관리를 강화하며 개발비 지출을 조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의 몸집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회사는 2025년 9월 중순 전신 발작(일차성 전신 강직-간대발작, PGTC)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세노바메이트 임상 3상에서 긍정적인 톱라인 결과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세노바메이트는 부분 발작에서 전신 발작까지 적응증 확장을 추진 중이다. 세부 데이터는 12월 미국뇌전증학회(AES) 연례 학회 등에서 공개될 예정으로 이후 허가 전략에 영향을 줄 변수로 꼽힌다. 종근당은 11월 미국 주요 학회 3곳을 통해 ADC, 경구용 비만약 등 차세대 파이프라인 3종의 비임상·초기 임상 결과를 제시하며 R&D ‘분화’에 초점을 맞췄다.

전통 제약사의 경우 R&D 성과를 바로 매출·이익에 연결하는 사례가 늘었다. GC녹십자는 자체 개발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의 미국 매출이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6095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최대 분기 매출이다. 미국 고부가가치 IVIG 시장에서 알리글로 공급이 확대되며 제품 믹스가 개선된 것이 주효했다.

대웅제약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펙수클루’와 SGLT2 억제제 계열 당뇨·신부전 치료제 ‘엔블로’ 등 신약 3종이 3분기 실적을 지탱했다. 펙수클루는 국내·해외 누적 처방이 증가하면서 연 매출 1000억원에 근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와 증권가에서는 “올해 또는 내년 중 블록버스터(연 매출 1000억원 이상) 구간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동아ST는 J&J 오리지널 의약품 스텔라라(우스테키누맙)의 바이오시밀러인 ‘DMB-3115’가 2024년 10월 미국 FDA, 12월 유럽위원회(EC)로부터 잇따라 허가를 받은 이후 2025년 들어 글로벌 판매가 시작됐다. 3분기부터 일부 매출이 인식되면서, 오랜 기간 투자해온 바이오시밀러 R&D가 재무제표 상에서도 결과를 내기 시작한 셈이다. 아직 매출 규모는 초기 단계지만, 미국·유럽 시장에서 점유율이 확대되면 실적 기여도가 커질 여지가 크다.

보령은 2024년 3분기 세운 실적 기록을 2025년 3분기에도 다시 넘어선 것으로 집계된다. 자체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카나브’ 패밀리와 도입 항암제(젬자·알림타)의 라이프사이클 관리(LBA) 전략이 3분기에도 유효하게 작동했다. 고가 항암제와 만성질환 복합제가 고르게 성장하면서 영업이익률이 전년 대비 개선됐다.

JW중외제약은 통풍 신약 ‘에파미뉴라드(URC102)’의 아시아 다국가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한국을 포함해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환자를 등록하고 투약·관찰 중이며, 피험자별 관찰 기간이 1년에 이르는 만큼 당초 계획했던 2025년 말보다 최종 임상 완료 시점이 다소 늦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2026년 중 임상 데이터가 정리되고 허가 전략이 구체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상 일정이 길어지면서 당장 3분기 실적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통풍 치료 시장의 성장성과 기존 요산강하제의 한계를 고려하면 중장기 파이프라인 가치가 크다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일부 회사들은 희귀질환, 항암, 면역질환 등에서 초기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있지만 3분기 기준으로는 아직 실적에 뚜렷한 기여를 하지 못했다. 고금리·고위험 회피 기조 속에서 파이프라인 ‘스토리’만으로는 투자자를 설득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3분기 실적은 K-바이오 시장의 무게중심이 ‘기대감’에서 ‘현금 흐름과 숫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분기였다”며 “알테오젠처럼 기술료·로열티 수취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수주와 가동률을 통해 실적을 증명한 기업, 한미약품처럼 신약 허가 신청이라는 구체적인 이정표에 근접한 기업에 자금이 쏠리는 반면, 임상 일정이 지연되거나 수익성 관리에 나선 회사에 대한 투자심리는 더 차가워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