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발언 후폭풍···中·日 외교 갈등 넘어 여론전 '격돌'

'존립 위기 사태' 언급에 中 총영사 폭언 中 반발에도 철회할 생각없다 입장 고수 미일 동맹의 대만해협 개입 정당화 비판 731부대 영화 이후 혐일 정서 확산 우려

2025-11-12     김성하 기자
지난달 31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주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 사태 시 자위대 투입 가능성'을 언급한 직후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가 소셜미디어(SNS)에 "목을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하면서 중·일 외교에 전례 없는 파장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가 즉각 항의에 나섰지만 중국 여론은 이번 사태를 '일본의 내정 간섭'으로 규정하며 반일 감정을 다시 자극하는 양상이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이 전함을 이용해 무력행사를 한다면 일본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는 '존립 위기 사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존립 위기 사태'는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밀접한 관계의 국가가 공격받아 일본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뜻한다. 이 경우 일본은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에 쉐젠 총영사는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아사히신문의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멋대로 달려든 그 더러운 목은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 각오가 돼 있느냐"는 글을 게시했다. 해당 게시물은 곧 삭제됐지만 일본 내에서는 "현직 총리에 대한 노골적 협박"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 /바이두 캡처

쉐젠 총영사는 중국의 공격적 외교 노선으로 불리는 '전랑(戰狼) 외교'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2021년 부임 이후 "대만 독립은 전쟁을 의미한다"는 글을 게시해 일본 정치권의 항의를 받은 바 있으며 일본 국회의원들에게 대만과의 모든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전력도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대만 유사(有事)=일본 유사"라는 표현은 아베 신조 전 총리조차 퇴임 이후에야 언급했던 사안이라며 다카이치 총리가 현직 총리로서 이를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언이 중국을 겨냥한 극우 강경 노선을 분명히 드러낸 사례라고 평가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평소 강경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중국이 대만을 상대로 해상 봉쇄를 강행할 경우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같은 논란에도 "정부의 종래 입장에 따른 것일 뿐 철회할 생각은 없다"고 강조하면서도 "앞으로는 특정한 경우를 가정한 발언을 자제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중국 현지 언론은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두고 연일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중국국제문제연구원(중국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 샹하오위 특임연구원의 기고문을 통해 "다카이치의 발언은 일본 정부가 유지해 온 모호한 입장을 깨고 대만 문제를 자국 안보 체계에 편입하려는 시도"라며 "이는 중국 내정에 대한 거친 간섭이자 미일 동맹의 대만해협 개입 정당화를 꾀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해당 기고문은 △일본 국내법 위반 △중·일 간 네 개의 정치문서 원칙 위반 △국제법 및 국제관계 기본 원칙 위반 등 세 가지 법리적 월권행위를 근거로 제시하며 "이번 발언은 중·일 관계와 지역 정세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망언' 등 키워드가 상위권에 올라왔다. /웨이보 사이트 캡처

최근 반일 여론이 거세진 중국 내에서는 이번 사태가 또 다른 민감한 도화선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9월 일본 관동군 731부대를 소재로 한 항일 영화가 개봉된 이후 반일 정서가 고조되자 주중 일본대사관이 교민 안전을 위해 휴교령을 내린 바 있다.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망언', '중국 대사 정면 반박', '일본 측 급히 해명' 등의 키워드가 하루 만에 실시간 인기 피드 상위를 차지하고 공유 수가 각 8000여건이 넘는 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환구시보 전 편집장 후시진은 사설을 통해 "다카이치가 경험 부족으로 즉흥 대응한 것인지 의도적 도발로 중국의 인내심을 시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면서 "정치권에서 망언의 유혹은 흔하지만 만약 그가 중국 자극에 중독된다면 그것은 결국 '독배를 마시는 것'과 같다"고 경고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