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라 더봄] 미술사의 다양한 계급주의와 이에 저항하는 여성 작가들
[윤세라의 미술관에서 만나는 세계와 나] 레이첼 해리슨과 로즈마리 트로켈 조각 작품을 액자에-회화의 우월성에 도전 뜨개질을 캔버스에-전통적 가치관 흔들어
미술에도 계급과 차별이 미술사 안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은 여러 형태의 계급과 차별의 요소 중 미술 형식의 계층구조 우열과 남녀 성차별을 주제로 한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며 미술계가 그 변화를 어떻게 극복하고 받아들이며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미술계의 계급주의는 경제적 자본, 문화 자본, 권력 구조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형성되며 미술 생태계 전반에 걸쳐 불평들을 일으키는 복잡한 구조로 이어져 왔다. 17세기 프랑스의 왕립 미술원의 등급제가 그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등급은 역사화,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풍속화 순으로 회화의 위계를 정했다.
사회적, 경제적 계급주의는 미술을 사회, 역사, 이데올로기의 맥락에서 분석하며, 계급, 권력, 이데올로기, 하위 구조 등이 미술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주목했다. 권력의 핵심에는 대형 미술관, 유명 갤러리, 경매 회사의 소유주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아래 종속된 미술가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층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불균형이 발생하게 된다. 미술 시장은 철저한 상업 시장이며 부유한 소비자들에 의해 작품의 예술적 가치보다 상업적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 예술 본질의 가치를 훼손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문화 자본의 대물림을 통해 특정 계층과 엘리트주의는 일반 대중의 감각에서 멀어지면서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제한하며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여 고급 예술을 향유하며 계층 간 문화적 격차를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가 되어 왔다.
미술 재료의 우열을 가르는 금박, 라피스라줄리 등과 같은 고가의 재료들은 부유 계급만 쓸 수 있는 귀족예술의 특징으로 평범한 대중의 접근성을 저해하며 특정 작가나 소재의 미술품 소유 여하가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해 왔다.
우리나라의 서구 중심적 서양 미술사 교육과 평가 기준은 다양한 환경의 배경을 가진 미술가들을 배제하며 주변화시킨다. 특히 젊은 작가나 독립 예술가들은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자기 계발과 자기 서사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미술을 위한 노동이 어떻게 소비되고 은폐되는지에 대한 비판을 일으킨다.
이러한 계급주의적 요소들은 미술계의 건강한 생태계 조성과 공정한 기회 제공을 저해하면서 많은 작가로 이어지며 비판과 개선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여기 미술계의 성차별과 형식주의를 비판하며 자신만의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투쟁하여 미술계의 편견과 보수적 우월감을 극복한 작가들과 작품을 소개한다.
레이첼 해리슨 (Rachel Harrison 1966~, Brooklyn NY. United State)
레이첼 해리슨은 1990년대에 뉴욕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통찰력 있고 철학적이며 때로는 희극적인 의미의 네트워크로 결합한 조각과 설치 작품들로 등장했다.
해리슨은 이 작품들의 제목과 세심하게 칠해진 조각 형식들과 적절한 대상들의 결합을 통해 미적 고찰, 인류학적 분류, 대중문화, 역사, 오락의 흡수 형태를 취하는지 여부를 살펴보고 식별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비디오, 사진,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형식을 한 작품에 실현하고 종종 수작업으로 만든 형태와 재활용품들을 주워 도발적으로 조합된 비형식 주의 작품으로 표현한다. 그녀의 자연광이 가득한 미술관의 넓은 통로 끝에 놓인 보통 어른의 키를 훌쩍 넘는 작품은 멀리서 볼 때는 컬러플한 색상의 조형물로 보인다.
작품은 길에서 주운 얇은 널빤지 위에 올려져 있고 격자무늬의 화려한 색상으로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보인다. 형태는 바위처럼 보이는 조형물에 안료를 주물러 펼쳐 발랐다. 조형물에 다가오며 관객들은 이 작품이 조각품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편에 걸려 있는 낡은 부츠의 사진 액자를 보며 그들의 확신은 무너진다. 마치 수리 중인 벽에 걸려 있는 것 같은 액자는 조형물을 단지 벽의 한 면으로 여기게 한다. 그리고 떨어진 페인트로 범벅이 된 액자 속의 낡은 부츠 옆의 “Lee Krassner’s Painting Boots (리 크래스너의 페인팅 부츠)”라는 메모는 관객의 관심을 리 크래스너가 누구인지에 대해 몰두하게 만든다.
레이첼의 복합 구조물은 조각품이 문자를 거쳐 서사가 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레이첼은 미술사, 미술 형식, 남녀를 통한 계급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는 조각이나, 사진, 장식미술에서 늘 페인팅을 우위에 올려놓았었다. 그녀는 길에서 주워 온 판자에 그 그림을 가볍게 올려놓았다. 그림을 그저 사진을 걸기 위한 뒷배경으로 취급한 것이다.
리 크래스너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현대 추상표현주의의 지평을 연 잭슨 폴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리 크래스너는 잭슨 폴락의 아내이며 낡은 페인팅 부츠는 그녀의 예술가적 연륜과 전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크래스너는 폴락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격려하면서 그의 예술적 성장을 도왔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특히 크래스너의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는 폴락이 기존 미술계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예술관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관객들은 역사적 서사에서 부당하게 부재했던 리 크래스너를 생각하게 되고 그 부츠 너머로 폴락을 보게 된다. 이렇듯 레이첼은 한 작품에서 미술의 계급과 서열을 조롱하고 변화를 도발하고 주장한다.
로즈마리 트로켈 (Rosemarie Trockel 1955 ~, Schwert Germany)
독일의 로즈마리 트로켈은 한 장르나 스타일을 배경으로 하지 않으며 드로잉, 회화, 설치, 조각, 사진 및 미디어 작업을 망라하며 모든 기존의 형식적·계급적 질서를 깨뜨리는 작업을 통하여 젠더 차이에 의문을 던지고 글로벌 간의 격차를 좁히며, 독일의 사회 및 정치 역사의 측면과 아울러 서구 철학, 신학 및 과학 또는 문화 코드, 롤 모델 및 예술 체계의 규범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담론 네트워크를 포함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이다.
특히 1980년대까지도 대부분 남성 중심이었던 예술계에서 여성의 삶과 성별 차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 남성 예술가에 치우친 미술계의 편견에 도전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종종 가정 영역의 주제를 탐구하며 가구, 직조 및 태피스트리, 여성 신체와 같은 주제로 미니멀리즘 조각처럼 벽에 걸려 있는 뜨개질, 전기스토브 버너 등 여성들의 일상에서 차용한 소품들을 진부한 의미의 “일반적으로 여성적”이라는 이념적 부담에서 해방하고 탐구한다.
“어떤 것이 작동하는 순간 더 이상 흥미롭지 않게 느껴진다”라고 그녀는 선언한다. “어떤 것을 철저하게 즉시 제쳐두어야 한다.” 그녀가 전통적 편견에서 벗어나는 방식일 것이다.
그녀는 '여성 작품'과 관련된 소재를 순수 미술로 변형하여 냉전의 역사와 깊은 젠더 규범을 모두 다루는 뜨개질 작품(knitted painting)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 통일 2년 전, 멀리서 보면 단색화처럼 보이는 뜨개질 삼부작은 세 개의 패널에 검은색 음영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기계로 짠 양모가 팽팽하게 당겨져 “서독에서 만들어진”이라는 반복적인 문구가 드러난다. ‘Made in Western Germany’라는 단어를 마치 일종의 만트라처럼 면직물로 반복적으로 엮었다. 작가는 예상되는 문구(Made in West Germany)를 ‘Western’이라는 용어로 변경하여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이 미지의 영역과 연관되는 영화 장르를 언급한다.
이 작품은 1985년에 시작된 그녀의 잘 알려진 직조 작품 시리즈의 일부로,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는 고전적인 기법과는 차별화되어 여성과 관련이 있고 '소중한' 장르인 양모로 직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트로켈은 한 가지 특징을 더 추가했다: 이 직물은 컴퓨터로 설계되고 기계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트로켈은 공예, 예술, 산업의 습관적인 범주를 무효화해 이를 거짓으로 구분한 경계선과 터무니없는 성별 기반 담론과 관련된 방식을 드러낸다.
트로켈은 전통적으로 하위 등급에 있는 공예품, 여성적 재료, 동서로 갈라진 독일의 정치 현실, 기계화된 산업 등을 패러디하며 최고 등급으로 여겨졌던 역사적, 사회적, 남성 우위의 등급을 이용하여 뜨개질 수공예품을 캔버스의 단색화 페인팅과 같은 형식으로 벽에 걸며 전통적으로 그림을 상단에 배치하고 공예를 하단에 배치하는 계층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하에서 억압적인 사회 통제와 할리우드에서 대중화된 이념적 책임이 대조를 보이는 “서독에서 만든”이라는 문구는 작가의 배경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와 예술의 상품화를 암시한다.
로즈마리 트로켈의 우주는 자신을 엄청나게 잘 알고 있는 여성처럼 매우 풍부하고 변화무쌍하다. 그녀의 미학은 여성의 우주에서 세상을 포용하는 데서 비롯되며, 친밀하고 사회적인 요소들로부터 확장된다. 이는 집단 역사에 속하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개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정치적 현실과 연관시킨다.
그녀의 위대한 능력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된 이미지를 사용하여 일상에서 기억의 조각으로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데 있다. 트로켈의 니트 작품은 예술을 삶으로, 삶을 예술로 바꾸는 구성주의적 개념을 한 형태인 ‘패러디’이다.
이렇듯 여성들은 일그러진 세계의 질서와 맞닥드리며 그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역할을 재조명하며 창조하고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윤세라 Glenstone Museum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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