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잔티움과 바벨의 붕괴···비트코인이 잃어버린 신뢰
달러코인 등장에 ‘합의’ ‘의미’ 모두 흔들 정치 발언 연동된 고위험 자산으로 변질 ‘탈중앙화’는 밈, ‘자율성’은 슬로건 전락 수학적 합의 남았지만 사회적 신뢰 위기
암호자본주의를 둘러싼 최근의 혼란을 기술적 사건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한 암호화폐 생태계는 기축통화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의 등장 이후 비잔티움과 바벨이라는 두 신화적 균열을 동시에 겪고 있다. 하나는 의사전달의 불신이요, 다른 하나는 언어적 기반의 붕괴다. 기술은 여전히 작동하지만, 그 위에 얹힌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비트코인은 최근 ‘대체자산’의 상징에서 ‘고위험 포트폴리오’의 대표 종목으로 급격히 전락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현금 살포 발언이나 미 의회의 예산안 합의 기대감 같은 단기 재료에 즉각 반응하며,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면모보다 투기 자산으로서의 변동성만 부각되고 있다. 10만 달러 선 회복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상승세는 거시경제 지표나 기술적 신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정치 발언과 단기 심리에 의존하는 구조로 변질됐다.
이 같은 현상은 비트코인이 더 이상 ‘탈중앙 신뢰의 대안’이 아니라, 글로벌 유동성 순환의 말단에서 움직이는 고위험 자산임을 보여준다. 투자자들의 매수·매도 행태가 AI 트래킹 데이터나 매크로 이벤트에 연동되며, 코인 가격은 기술 발전이나 채굴 구조와 무관하게 급등락을 반복한다. 시장은 여전히 ‘희소성의 신화’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단기 트레이딩 알고리즘과 정치적 노이즈가 주가를 좌우하는 상황이다.
비잔티움 신화가 상징하는 문제는 ‘합의의 실패’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장군들이 명령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통신의 위선이 불러온 파멸, 바로 그것이다. 암호화폐의 출발은 이 문제의 해결이었다. 신뢰 대신 암호학적 증명을 합의의 기초로 삼으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그 구조 위에서 탐욕과 불신이 다시 싹트면서, 합의는 유지돼도 신뢰는 사라졌다. 모든 프로젝트가 ‘탈중앙화’를 외치지만, 그것은 더 이상 같은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반면 바벨의 신화는 언어가 흩어지는 순간 발생하는 ‘의미의 단절’을 보여준다. 비트코인의 언어가 국가를 넘어 확장되던 초창기에는, 코드는 곧 신뢰의 언어였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산업화되면서 ‘탈중앙화’는 밈으로, ‘자율성’은 슬로건으로 변했다. 기술 커뮤니티 내부에서조차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파생상품의 범람은 언어의 혼란을 더욱 가속화했다. ETF, 선물, 옵션, 레버리지 토큰 등은 블록체인의 본래 철학을 탐욕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가치 저장’과 ‘투기 수단’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뒤섞었다. 블록체인이 기술인지, 금융인지, 혹은 철학인지조차 모호해졌다. 신호는 남았지만, 그 신호가 무엇을 지시하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 암호화폐 시장은 결국 신뢰의 코드 위에 세워진 의미 없는 거래 구조로 기울기 시작했다.
물론 두 신화의 균열은 출발점이 다르다. 하나는 명령과 행동의 상호불신이며, 다른 하나는 개념과 의미의 파열이다. 하지만 이 둘이 동시에 일어날 때 시스템은 가장 심각한 퇴화 양상을 겪는다. 행동을 조율할 합의는 약해지고, 행동을 정당화할 언어는 해체된다. 지금의 암호 생태계가 맞닥뜨린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기술적 기반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블록은 여전히 일정한 간격으로 생성되고, 네트워크는 기계적으로 검증된다. 이른바 ‘반감기’도 남아 있고,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완벽히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 ‘무엇을 위해 작동하는가’에 대한 공통된 이해는 사라졌다.
채굴자는 보상을 위해 블록을 쌓고, 투자자는 수익을 위해 신호를 해석하며, 개발자는 알고리즘의 완결성만을 유지한다. 모두가 ‘올바르게’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이 향하는 방향은 서로 다르다. 결국 기능은 남았지만, 그 기능이 가리키던 북극성은 희미해졌다.
비트코인은 여전히 살아 있으나 ‘희소성의 질서’는 무너졌다. 시장 참여자들은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지만, 신호를 공유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탈중앙화’, ‘자율성’, ‘커뮤니티 지향’ 같은 구호만 남고, 그 언어를 지탱하던 내부 신뢰 체계는 증발했다.
암호체계가 막아주던 비잔티움 장군의 문제를 인간들이 재현한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노드들은 완벽히 암호화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도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들의 합의는 수학적으로 가능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불가능해졌다. 블록체인이 약속한 분산 신뢰의 구조는 ‘합의 불능의 언어적 장벽’으로 작동해 스스로의 신뢰를 붕괴시키는 모습이다.
다만 그렇다고 비관만 할 상황은 아니다. 신호 체계의 붕괴는 새로운 기준을 세울 기회이기도 하다. 비잔티움의 교훈은 신뢰 기반 합의를 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바벨의 교훈은 언어의 붕괴마다 새 의미를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암호 시장도 마찬가지로, 기술적 기반 위에 새로운 의미 체계의 재구축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자연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이 작동한다고 해서 세계관이 자동으로 정렬되지는 않는다. 합의 알고리즘이 돌아간다고 해서 시스템은 작동하지만, ‘의미화’하지는 못한다. 의미를 잃은 시스템은 결국 방향성을 잃은 채 기계적 효율만을 추구하게 된다.
결국 비트코인이 증명한 것은 ‘분산 신뢰’의 성공이 아니라, 신뢰 없이는 어떤 암호도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희소성의 붕괴 역시 시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사건이었다. 블록이 일정한 간격으로 생성되는 한정된 세계에서조차, 인간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미래를 끌어와 계산하고 합의를 선점하려 했다. ‘SHA-256의 일방향 시간성’은 그렇게 무너졌다.
비트코인은 인공지능 시대에 ‘희소성’이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생성 가능한 시뮬레이션임을 보여줬다. 과거에는 시간이 흐르고 채굴이 진행돼야만 가치가 생겼지만, 이제는 기술이 시간과 관측·데이터 흐름과 희소성 자체를 만들어내는 시대다.
신뢰가 흔들릴수록 사람들은 더 강한 구조, 더 단단한 ‘블록’을 찾으려 한다. 합의 대신 계산으로, 의미 대신 확률로 세계를 지탱하려는 새로운 질서가 열리고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외치는 구호보다 지금 더 절실한 것은 무너진 신뢰의 복원이다. 바벨의 언어가 다시 조율되고, 비잔티움의 신뢰가 복원될 때 블록체인의 영광도 다시 빛날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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