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형법 개정안,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우려된다
[신율 칼럼] 특정 집단 명예훼손 시 처벌 단어 맥락에 따른 구분 필요 정치적 비판·사회 비평 위축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난 4일 특정 집단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을 인정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형법상 허위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은 특정 인격체에 대해서만 인정되었으나 개정안은 그 범위를 집단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특정 국가·국민·인종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공연히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의 의원은 법 개정의 취지로 "지난달 3일 혐중(嫌中)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짱개 북괴 빨갱이는 어서 빨리 꺼져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각종 욕설을 남발하고 부정선거와 중국 개입 등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당장 당론으로 추진하진 않지만, 당내에서는 법안 처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일부 언론은 해당 개정안이 반중 시위를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의 내용만 보면 반중 시위에 국한되지 않고 반미나 반일 시위 등에도 적용 가능하다. 따라서 특정 국가에 대한 반대 시위를 막기 위한 입법이라는 해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언론이 반중 시위를 겨냥한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개정 취지 설명 과정에서 혐중 시위 사례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정안의 취지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몇 가지 점은 명확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개정 필요성을 설명하며 인용된 "짱개 북괴 빨갱이는 어서 빨리 꺼져라"라는 문구 중 '북괴'와 '빨갱이'는 이념과 관련된 용어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물론 해당 단어 사용이 곧바로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념 차원에서 접근 가능한 용어들을 예시로 들며 개정 취지를 설명하는 것은 자칫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북괴'는 과거 우리 정부도 사용했던 용어일 뿐 아니라 북한 역시 우리를 '괴뢰'라고 지칭해 왔기에 일방적인 비방 용어로 보기 어렵다. '빨갱이'는 분명 비속어에 해당하며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이 용어를 동원해 정치적 탄압이 자행된 역사가 있어 많은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용어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혐오적 표현이라고 해서 반드시 법적 제재 대상으로 삼기는 어렵다고 본다. 예컨대 '극우'를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파쇼'라고 부르는 경우에도 법적 처벌이 곤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짱개'라는 단어는 특정 국가나 민족을 비하하는 표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맥락에 따른 구분이 필요하다. 만약 해당 표현이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의 특정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 범주에 속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따라서 특정 민족 혹은 특정 국가의 국민 전체를 지칭한다면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의 특정 정치인을 지칭하는 표현까지 법으로 제재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개정안에서 언급된 '부정선거' 주장은 허위 사실이기 때문에 음모론적 주장에 대한 법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다만 특정 집단 명예훼손이라는 틀보다는 음모론 일반에 대한 법적 대응을 논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점은 명예훼손의 대상을 개인이 아닌 집단까지 확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예컨대 필자가 "국회의원들은 맨날 싸움질만 하고 하는 일 없이 세금으로 막대한 월급을 받는 월급 루팡"이라고 발언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국회의원'이라는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여지가 생긴다. 이처럼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죄의 적용은 정치적 비판이나 사회 비평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정안의 취지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나 오해를 유발할 소지가 있는 요소들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법 개정을 강행할 경우 그 취지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법은 국민 다수의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만 실질적 제재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특히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입법은 더욱 신중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여성경제신문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yulsh@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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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