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더봄] 그녀의 별명이 ‘건널목’인 이유는?

[강신영 쉘위댄스] (89) 댄스 배우려면 배우자 동의가 필요 아니면 몰래 하는 수밖에 없다

2025-11-23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댄스를 배우려면 배우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동의하지 않으면 몰래 다녀야 한다. /픽사베이

부부 중 한 명이 댄스를 배운다고 하면 찬성할 배우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말해 봤자 안 통할 것이므로 그냥 얘기 안 하고 배운다. 공연히 얘기를 꺼냈다가 배우자가 반대했는데도 댄스를 배우러 나간다면 부부 싸움으로 번질 것이다.

몰래 배우다가 들켰을 경우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열심히 댄스하는 사람들은 댄스가 남들 생각처럼 나쁘지 않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하다 보니 댄스가 건전할 뿐 아니라, 여러모로 재미있고 운동도 되니 계속하게 된 이유도 있다. 기량도 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다 보니 댄스에 대한 열정도 생긴다.

내 댄스 생활에서 오랫동안 봐 왔던 여성이 있었다. 처음 입문자로 동호회에서 만나 그 후 여러 다른 동호회로 옮길 때마다 따라왔다. 그러다 보니 마치 우리 사이를 파트너처럼 보는 사람도 있었다. 무뚝뚝한 편에 고집도 세서 나랑은 안 맞는 여성이었다.

한번은, 그녀의 딸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는데 그녀의 남편이 나를 유심히 봤던 모양이다. 왜 남자가 하객으로 왔느냐는 의심이었다. 댄스동호회라고 하면 큰 사달이 날 것이므로 직장 동료라고 둘러댔던 모양이다. 그녀의 남편은 무뚝뚝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곧이곧대로 말했다가는 이혼이라도 불사할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댄스 생활은 몰래 하려니 매우 고단했다.

댄스하러 다닌다는 확실한 증거물이 댄스화이므로 댄스가 끝나면 댄스화를 학원 라커 룸에 보관했다. 유료였다. 나중에 파티복도 장만하게 됐는데 둘 곳이 마땅치 않으니, 역시 라커에 구겨 넣었다. 파티 때마다 구겨진 드레스를 꺼내 입고도 파티에 참석하려는 그녀의 열정도 대단했다.

한번은 외부에서 댄스파티가 있었는데 좌석이 한정되어 사전에 예약을 확정해야 했다. 같이 갈 거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기에 못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참석 여부를 미리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남편을 따돌리고 파티에 올 수 있게 되었다. 주최 측은 받을 수 없다고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자기 자리도 없이 참석했으므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계속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무리했는지 다리가 꼬여 춤추다가 넘어지는 사고까지 났다.

그녀는 단체 강습 외에 시간을 더 낼 수 없었다. 자이브나 차차차 같은 라틴댄스에서 왈츠, 폭스트롯 같은 모던댄스로 전향할 때 보행법이 완전히 달라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개인레슨을 신청할 처지가 못 됐다.

레슨비도 문제지만, 시간을 추가로 낼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몸도 무겁고 춤도 발전할 수 없었다. 체인징 파트너로 그녀와 춤을 추는 남자마다 그녀가 무겁다며 불평하는데도 도리가 없었다. 본인도 그런 말을 자주 들어 자신의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달리 방도가 없다며 그냥 이 정도에서 춤이나 즐기겠다고 했다. 고집이었다.

건널목은 그녀가 생각해 낸 비상한 아이디어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사진=강신영

평소에도 댄스학원에서 댄스가 끝나면 수강생끼리 뒤풀이가 있는 편이다. 가볍게 저녁 식사하고 생맥주 한잔하며 피로도 풀고 갈증도 해소한다. 댄스 얘기도 재미있지만, 자주 어울리다 보니 가까워진다. 그러니 시간이 가는데도 못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전화가 오면 그녀는 그때부터 바빠졌다. “어디야?” 화가 난 듯한 그녀 남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도 전해진다. 남자 목소리가 들리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그때부터 함구해야 한다. “건널목이에요. 가는 중이에요” 그녀는 늘 그렇게 통화했다.

그녀의 아파트는 대규모 아파트단지 가장 안쪽에 있기 때문에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그 안쪽까지 걸어가면 20분은 걸린다. 그녀가 술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가서 집 앞에서 내리면 20분 정도 걸린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이 ‘건널목’이 됐다.

여성경제신문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ksy692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