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는 곧바로 나오는 팩트시트···왜 한국은 맨날 늦나
한미 관세 협상 공식 문건 지연될수록 美 해석이 국제 기준 굳어질 위험성↑
지난달 29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와 안보 협상이 타결됐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일주일이 넘은 지금까지 공동 팩트시트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 회담 직후 수시간 내에 합의 내용을 문서로 확정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또다시 ‘문구 조율 중’이라는 익숙한 설명을 내놓고 있다.
문서화가 늦어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청와대와 외교부, 산업부, 국방부가 각각 문안을 따로 검토하며 표현 하나에도 합의를 내지 못하고, 한미 간에는 핵추진잠수함 협력 문구를 놓고 미세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비핵무기 원칙을 분명히 하기 위해 “핵잠수함(nuclear submarine)” 대신 “핵추진잠수함(nuclear-powered submarine)”이라는 표현을 고집했고, 미국은 기술 이전과 비확산 규정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양측 모두 “합의는 완료됐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단어 하나가 정리되지 않아 문서에 서명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런 지연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늦춤이 아니라, 협상 결과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는 정상 간 합의의 공식 증거이자, 훗날 해석 분쟁이 생겼을 때 기준이 되는 문서다. 문서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누가 어떤 약속을 했는지 불분명하고, 그 공백을 이용해 상대국이 말을 바꾸거나 합의 수준을 축소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실제로 미국은 이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자체 요약문을 올려 “한미가 전략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세부 조항이나 시한은 빠져 있다. 한국의 공식 문건이 지연될수록, 미국식 해석이 사실상 국제 기준으로 굳어질 위험이 커진다.
이 지연은 외교를 넘어 경제·시장에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나 관세 완화 방향이 문서로 확정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어느 시점에 어떤 혜택이나 규제가 적용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투자자와 업계는 관망세로 돌아서고, 환율과 수출주가 일시적으로 출렁이기도 한다.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협상 결과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면 기업의 대응 속도가 늦고, 외국인 투자자도 신호를 읽지 못한다”며 “팩트시트 한 장이 시장의 심리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전직 외교관은 “국제 협상에서 문서화 시점은 곧 힘의 우위”라며 “늦게 문서를 내는 쪽은 해석권을 상대에게 넘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합의는 구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문서로 완성된다. 팩트시트가 늦어질수록 상대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버전으로 내용을 조정하고, 시장은 그 사이 불확실성에 흔들린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복합 사안이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외교와 경제 모두에서 “속도를 잃으면 신뢰도 잃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팩트시트는 단순한 행정 문건이 아니라 외교적 신뢰의 증거이자 시장 안정의 기준이다. 합의 후 문서를 미루는 순간, 회담장에서의 약속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