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사고 땐 성과급 토해내라?···내부통제 유도의 딜레마

성과급 환수 논의 다시 급물살 타지만 법적 정당성·노사 갈등 등 현실 장벽 ‘책임경영’ 실현엔 실효성 담보가 관건

2025-11-06     박소연 기자
금융권의 성과급 환수 제도인 ‘클로백’ 도입을 둘러싸고 실효성과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금융사고가 반복되는 동안 성과급은 오히려 커졌다.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손실이 수천억 단위로 발생해도, 임직원 보수 체계는 단기 성과 중심으로 작동했다. 금융당국이 다시 클로백(보수환수제도) 도입에 나선 이유다.

클로백(clawback)은 임직원이 내부통제 실패나 부실한 의사결정으로 회사에 손실을 입혔을 때, 이미 지급된 성과급을 다시 거둬들이는 제도다. ‘발톱으로 움켜잡아 되찾는다’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2000년대 초 미국 엔론(Enron) 사태 이후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장치로 주목받았다. 제도가 본격적으로 법제화되고 강화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경영진의 보너스나 스톡옵션을 사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체화했다.

금융권 안팎의 기류는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법적 분쟁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미뤄졌던 논의가 올해 들어 급물살을 탔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금융사고 책임 떠넘기기 근절’을 내세운 이후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올해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행 제도는 ‘조정’에 머물러 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에는 임원 성과급의 40% 이상을 최소 3년간 이연 지급하며 이연 지급 기간 중 담당 업무와 관련해 금융회사에 손실이 발생한 경우 이연 지급 예정인 성과보수를 실현된 손실 규모를 반영해 재산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그러나 이미 지급된 보수를 ‘회수’하는 근거는 없다. 지난해 금융권 전체 성과보수 환수액은 약 9000만원. 지급된 성과급 총액(1조원) 대비 0.01%에 불과했다.

문제는 금융사고 규모가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 1~8월 기준 4대 시중은행의 금융사고 건수는 74건, 사고 금액은 1972억원. 작년 한 해 발생 규모(1368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같은 기간 주요 은행 임원 성과급은 오히려 증가했다. 국민은행 임원 평균 3억1521만원, 하나은행 1억2040만원, 신한은행 전체 성과급 1480억원을 기록했다.

클로백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에도 도입 검토가 있었지만 성과주의 문화를 해칠 수 있다는 업계 반발로 무산됐다. 그러나 최근 대형 사고가 잇따르고 정치권이 제도 도입을 압박하면서 금융당국의 입장이 달라졌다. 퇴직 후라도 재무제표 오류나 손실이 드러나면 환수할 수 있는 방안까지 포함됐다. 단기 실적주의에 제동을 걸겠다는 시그널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미 지급된 성과급을 되돌려 받으려면 계약상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손실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어떤 시점의 실적과 연결되는지를 따지는 절차도 복잡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성과급 환수는 직원 사기 저하와 법적 분쟁을 동시에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경영진 클로백 제도가 도입됐다. 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금융사들의 보너스 지급 논란이 계기가 됐고 2010년 제정된 ‘도드 프랭크법’에 관련 조항이 포함됐다. 이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세부 규정을 마련하면서 상장기업들이 과다 지급된 보상을 환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구축됐다.

국내는 여전히 ‘이연 보수제’ 수준에 머문다. 해외에서 제도화가 진전된 것과 달리 국내는 여전히 현실적 제약이 크다. 미지급된 성과급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손실의 책임 소재와 성과급 산정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법적 분쟁, 직원 사기 저하, 노사 갈등은 제도 도입의 가장 큰 저항 요인으로 지목된다. 과거 클로백 논의가 좌초됐던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더 나아가 통제 실패의 책임이 하위 직원에게 전가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단순히 ‘사고가 발생했으니 임원 성과급을 환수해야 한다’는 식의 처벌 중심 접근으로는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클로백은 책임자를 찾아내는 수단이 아니라 경영진이 단기 실적보다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우선하도록 유도하는 장치여야 한다. 따라서 단순한 환수 규정 제정이 아니라, 보수위원회의 독립성 보장과 환수 사유의 구체화, 내부통제·공시 체계 강화 등 집행 가능한 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