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식시장 AI 진입 문턱···가짜 예측의 시대 끝난다
‘점치기’에서 ‘판단’의 게임으로 전환 진행 중인 변화 감지가 핵심 경쟁력 정보 흐름 속도와 곡률의 시대 임박
주식시장에 인공지능(AI)이 들어온다는 말은 오래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AI가 사람을 대신해 분석해주겠지” 정도로만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 자본시장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 인간의 언어로 쓰이던 막연한 보고서가 '로그'와 '검증'으로 대체된다는 얘기다.
지난 4일 한국거래소가 개최한 '2025 건전증시 포럼'만 봐도 국내 금융권은 “자본시장에 AI라는 뇌를 단다”는 구호에 취해 있다. 거래소는 AI 전환을 외치고, 학계는 초개인화 금융을 약속하며, 증권사는 AI 파트너십 성과를 과장한다. 그러나 현장의 기술 스택은 아직 KYC 점수와 절차 자동화 수준에 머물러 인공지능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금융은 본래 해석과 커뮤니케이션의 산업이었다. 기업 방문·산업 해석·마켓 코멘트가 전문가의 영역을 만들었다. 그러나 AI는 이 시간 간극을 지운다. 초 단위도 아닌 마이크로초 단위로 시장을 읽는 존재로 진화한다. 인간의 발언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를 데이터로 읽는다.
기존 금융 분석은 기업 공시 → 애널리스트 해석 → 보고서 작성 → 투자자 반응의 ‘선형 보고 체계’에 묶여 있었다. 반면 AI는 로그 레벨에서 움직인다. 체결 속도·대역폭 사용량·옵션 델타 조정 빈도 같은 행동 기반 시그널을 실시간 스트림으로 해석한다. 말은 이미 지나간 기록이고, 행동이 데이터가 된다.
가장 먼저 대체될 존재는 애널리스트다. AI는 경영진의 발언·감정·직후의 자금 이동을 동시 분석한다. “왜 오르나”보다 “언제 움직였나”가 중요한 질문이 된다. 분석의 중심이 말이 아니라 검증으로 이동한다. 프라이빗뱅커(PB)도 예외가 아니다. 관계 기반 자산관리 시대는 빠르게 저문다. AI는 고객 포트폴리오의 기울기(gradient)를 추적하며 스트레스 테스트를 상시 수행한다.
‘기울기’는 은유가 아니다. AI는 변화 속도와 방향, 즉 dP/dt를 본능적으로 계산한다. 실적표는 과거의 결과지만 경사면 변화는 현재의 움직임이자 미래의 예고다. △상승 둔화의 각도 변화 △하락 정지 지점 △변동성 속 회복 탄력성 같은 미세 곡률이 핵심이다.
외삽(Extrapolation)이 설 자리가 없다. 인간이 과거 직선을 근거로 “아마 이렇게 될 것”이라 추정하던 방식은 사라진다. AI는 언제나 직선이 아닌 함수의 곡률과 미분 구조로 판단한다. 상승 속도가 줄어드는가? 하락 가속이 멈추는가? 반등이 얼마나 매끄러운가?
확률 모델인 AI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흔히 착각한다. e^x, 즉 지수함수로 점수를 확률처럼 변환하는 구조가 미래를 읽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모델 내부 점수(logit)를 정규화해 비율로 변환하는 절차일 뿐이다. 미래를 미리 보는 과정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정보의 상대적 중요도를 재배분하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기울기 속에서 시작된다. AI에게 예측은 값의 선택이 아니라 방향의 감지다. 높은 확률을 제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현실의 진동 방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미래는 확률이 아니라 진행 중인 위상 변화와 경사 흐름에서 도드라진다.
주식시장은 ‘무엇이 올 것인가’를 맞히는 게임에서 벗어나고 있다. 예측의 시대가 끝나고, 확률의 중첩이 실제 변화에 얼마나 근접했는가, 즉 진행 흐름에 얼마나 정밀하게 정렬하는가가 경쟁력이 된다. AI는 미래를 점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계산된 확률과 기울기에만 충실할 뿐이다.
앞으로는 “무엇이 오를까”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감지하느냐”가 승부다. 퀀트 역시 변한다. 과거에는 팩터를 설계하고 공식을 짜는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시장 전체 데이터를 모으고 흐르게 설계하는 사람, 즉 시스템 엔지니어로 진화할 전망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조용히 퇴장할 수밖에 없다. 과거 수익률 기반 자산배분 알고리즘은 느린 엑셀 매크로에 가깝다. ‘시장 상황에 최적화된 비중 조정’이라는 구호 아래 과거 레짐 기반 대응만 반복한다. 금융권의 ‘AI 투자 상품’ 역시 취약하다. 시장이 레짐을 전환하는 순간 과거 모델은 예외 상황을 ‘오류’로 처리하고 지연된 반응을 증폭한다.
예컨대 KB증권의 ‘AI가 골라주는 투자’는 이름과 달리 실시간 딥마켓 신호 처리 체계가 없는 정태적 외삽 엔진에 가깝다. ISA·IRP 계좌에서 전략을 제시하는 구조는 가격 시계열 기반 위험 점수와 과거 리밸런싱 규칙을 알고리즘화한 형태로, 준정적 포트폴리오 생성기다.
토스의 AI 사일로(Silo) 모델도 다르지 않다. ‘개인화·추천·요약’은 화려한 홍보와 달리 실시간 시장 구조에 닿지 못한 정보 가공 레이어다. 뉴스·공시·커뮤니티 텍스트를 재배열하고 선호도 기반 랭킹을 수행한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지만 기존 설명을 다시 포장하는 수준이다.
여의도와 학계 역시 ‘기술 낙관’에 갇혀 있다. 한국거래소가 말하는 AI 금융은 여전히 자동화된 콜센터와 절차 최적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교수들은 ‘조직 구축·데이터 품질·교육’ 같은 2010년대 디지털 전환 교본을 반복한다.
진짜 금융 AI는 변수 이동과 곡률 변화(d²P/dt²), 금리·FX·파생 포트폴리오 위험 전파 경로, 체결 속도 변화, 레버리지 압축 신호 등 행동 기반 시장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지능이다. 그러나 국내 서비스는 언어 모델 중심의 후행 해석과 콘텐츠 추천에 머문다. 애널리스트가 자료를 정리해 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격이 움직인 뒤 설명하는 시스템은 업그레이도 불가능하며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결국 리서치센터도 변한다. 정기 보고서는 형식적 문서가 되고, 실시간 관측·경보 체계가 경쟁력 핵심이 된다. AI는 연산을 맡고 리서치 인력은 센서 역할로 이동한다. 주식시장은 ‘차를 세워 점검’하는 곳에서 ‘달리며 엔진과 타이어를 교체’하는 세계로 전환된다.
물론 지금은 누구나 푸리에 변환을 돌리고 엠베딩 공간의 위상 기울기를 해석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인터넷 초기 HTML을 손으로 쓰던 시절과 비슷하다. 그러나 변화는 순식간이다. 이제 남은 건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정도기 때문이다. 감정 대신 진폭을, 촉 대신 기울기를, 전망 대신 위상 정렬을 보여주는 화면만 놓이면 된다. 예측(prediction)이라는 낡은 기술이 사라지고, 감지(detection/sensing)가 새로운 표준이 되는 시대가 온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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