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병상에 누워버린 의료 빅데이터

환자 데이터 연결 부족, 진료 효율 저하 개인정보 보호 강화 속 활용은 답보 환자 안전 위한 활용 기준 정비 시급

2025-10-28     김현우 기자
의료데이터 보호 중심 정책으로 병원 간 데이터 이동과 활용이 제한돼 진료 효율과 환자 안전에 제약이 발생하고 있다. 데이터3법 이후 변화는 있었지만 절차와 책임 부담이 커 민간 혁신이 지연되고 있어 환자 중심의 안전한 데이터 활용 체계 재정비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귀찮아병원'에서 이상지질혈증 처방을 받은 김비만 씨.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 이상이었다. 며칠 전 가슴 통증을 느꼈던 게 생각난 비만 씨는 옆동네 '또와봐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기로 한다.

3교대 근무를 하는 비만 씨는 일정이 바쁘다 보니 하루 안에 진료를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또와봐병원' 원장은 "'귀찮아병원'에서 받은 진단증을 가져와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 병원에서 피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비만 씨는 "병원들 다 가지고 있는 기록인데 전화해서 달라고 하면 안되냐"고 물었지만 벽에 대고 떠드는 격이었다. "동물병원은 강아지 의무 기록도 서로 메일로 주고 받는데 사람은 왜 안되냐"는 질문엔 "그건 동물이니까 가능한 일"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혈액검사 결과, MRI 영상, 복용약 이력, 알레르기 정보까지 모두 병원과 약국, 보험사 데이터망에 다 있다. 한데 장소가 바뀌면 내 기록이 공유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여기 저기 흩어진 의료 데이터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MRI CD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서 살 수 있다. 어플 하나로 모든 병원의 개인 의무 정보를 담을 수도 있다. 

암이나 심혈관질환처럼 조기 대응이 중요한 질환에서 차이는 더 크다. 의료진 판단의 정확도와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시스템 기반 의료의 핵심이다.

2020년 데이터3법 개정으로 가명정보 활용이 허용됐다. 연구와 통계 목적의 데이터 분석은 뚜렷하게 늘었다. 

한데 의료데이터 활용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생체정보는 고위험군에 속한다. 민간이 서비스 개발을 추진할 경우 신청·심사 절차가 길고 책임 요건이 크다.

국내 한 스타트업이 심장질환 위험을 조기에 알려주는 AI 앱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심전도 데이터와 병원 진료기록을 분석해 위험 신호를 미리 알려주는 기술이다. 해외라면 출시까지 몇 달이면 되는 제품이다.

한국에서는 시작이 다르다.

앱을 만들기 전 데이터 활용 신청부터 해야 한다. 연구계획서·활용 근거·데이터 목록 등을 모두 갖춰 제출해야 하고 의료계·정보보호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심의를 거친다. “공익성은 충분한가.” “재식별 위험은 없는가.” “분석 범위는 타당한가.” 질문이 계속된다. 상황에 따라 보완 요구가 반복된다.

승인을 받아도 끝이 아니다.

데이터는 외부 반출이 제한된다. 지정된 공간에서 직접 분석해야 하고 중간 결과물도 반출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이건 실제 사용자 서비스용인가요?” 심의 테이블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서비스 출시 의도가 명확하면 책임 요건은 더 커진다. 잠재적 위험까지 모두 기업이 떠안아야 한다.

이 과정이 몇 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그 사이 해외 경쟁사는 이미 시장에 들어간다. 국내 기업은 “출시할 수 있을지”부터 다시 계산한다.

비용과 불확실성이 민간 투자를 주저하게 만든다. 제도는 열렸는데 실제 시장 진입은 쉽지 않은 형국이다.

미국은 환자 중심 의료정보 이동권을 기반으로 디지털 헬스케어를 확장하고 있다. 유럽도 민감정보 보호를 유지하면서 데이터 공유 표준을 강화하고 있다. 산업이 움직일 수 있는 규칙을 명확히 하는 방식이다.

보호는 기본이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는 환자의 안전을 위한 정보조차 환자에게 닿지 않는 상황을 만든다. 의료데이터는 살릴 수 있는 생명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장비다. 정책이 환자 정보를 봉인하는 방향이라면 그 책임은 환자 위험으로 돌아온다.

정책의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유출되면 어떡하나”가 아니라 “쓰지 못하면 누가 잃는가”로.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