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토스 이후, 한국 '임베디드 금융'이 가야 할 길

생활 속으로 들어온 금융, 편의 넘어 효율의 문제로 비금융 기업의 직접 진출 막는 제도적 한계 여전 데이터 활용·스몰라이선스 설계, 핵심 변수로 부상

2025-10-28     박소연 기자
플랫폼 중심 금융 생태계가 확산하며 임베디드 금융의 제도적 정비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은행 앱을 따로 열지 않아도 돈을 보내고, 상품 구매나 생활 활동의 맥락 속에서 대출과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이제 금융은 별도의 채널을 거치지 않고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비금융 서비스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이른바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이다.

한국은 이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 중 하나다. 스마트폰이 지갑을 대신한 지 오래고 네이버·카카오·토스 같은 플랫폼은 생활의 대부분을 연결하고 있다. 금융은 더 이상 독립된 영역이 아니다. 생활 속 플랫폼에 흡수돼 ‘어느 은행을 이용하느냐’보다 ‘어떤 앱을 열어보느냐’가 더 중요한 선택이 됐다.

2019년 도입된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제도는 이런 변화를 제도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핀테크 기업들이 은행의 결제망과 고객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 기능은 비금융 플랫폼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진출을 허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융 시스템 안정성 확보를 위해 도입된 금산분리 원칙을 근간으로 비금융 기업의 전통적 금융업 지배를 제한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자금융거래법상의 라이선스 요건과 망 분리 규제, 개인정보보호법 등은 플랫폼이 금융 기능을 완전히 내재화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국내 임베디드 금융은 금융회사의 인가를 활용하거나 핀테크와의 제휴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비스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 구조의 한복판에 있는 기업이 토스다. 송금 앱으로 시작한 토스는 이제 금융 전반을 통합한 수퍼앱으로 진화했다. 앱 하나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와 보험, 카드 발급, 신용관리까지 모두 처리할 수 있다. 금융이 ‘별도의 절차’가 아니라 ‘앱 속 기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토스의 서비스는 단순히 금융상품을 한곳에 모은 수준을 넘어선다. 사용자의 맥락에 따라 필요한 금융 기능이 자동으로 등장하도록 설계돼 있다. 결제할 때는 토스페이가, 보험 갱신 시점에는 보험 비교가, 대출 만기에는 대출 추천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용자는 금융을 ‘찾지 않고’ 이용하는 동시에 플랫폼은 이용 맥락 데이터를 축적해 선제적이고 맞춤화된 상품을 제시한다.

한국의 임베디드 금융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편의성이나 신뢰 확보를 넘어 산업의 질적 성장과 효율성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내부통제나 소비자 보호 같은 원론적 논의에 머무르기보다 금융 산업의 구조적 비효율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혁신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플랫폼-핀테크-금융사로 이어지는 다층적 구조에 크게 의존한다. 비금융 플랫폼이 직접 금융업 인가를 받을 수 없는 규제 환경 때문에 대부분의 서비스가 B2B2C (기업 간 거래를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서비스 제공) 형태의 파트너십으로 운영된다. 이 구조는 금융 기능을 빠르게 통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중개 비용 이중 발생 및 복잡한 수익 배분이라는 비효율을 낳는다.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플랫폼의 규모와 역할에 맞는 금융업 영위를 허용하는 ‘스몰 라이선스(Small License)’ 제도의 정교한 설계다. 플랫폼이 결제나 대안 신용평가 같은 핵심 기능을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허용하면 금융 생태계의 비용 구조를 단순화하고 소비자 금리나 수수료 절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본질적 혁신은 데이터 활용에서 비롯된다. 특히 플랫폼이 가진 비금융 맥락 정보가 신용평가나 금융 상품 설계에 활용될 때 기존 금융이 다루지 못한 영역이 열린다. 현재 마이데이터 제도는 고객 동의를 전제로 한 데이터 이동만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커머스 이용 기록이나 차량 운행 패턴, 정기 결제 이력 같은 실시간 행위 데이터가 신용평가에 어떻게 반영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모호하다.

플랫폼이 보유한 대안 신용평가 데이터를 금융 심사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대출 이력이 부족한 중·저신용자나 소상공인의 비금융 활동이 긍정적 평가 요인으로 인정된다면 단순히 부실 위험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더 정확한 금리 산정이 가능해진다. 금융 포용의 실질적 확장은 바로 이 ‘정확한 가격 산정’에서 출발한다.

감독 체계 역시 기관 중심에서 기능 중심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금융이 플랫폼 안으로 흩어져 들어간 상황에서 전통적인 감독 방식으로는 책임 주체를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누가’ 서비스하느냐보다 ‘어떤 기능이 제공되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출 중개, 투자 추천, 보험 연결 등 기능 단위로 동일한 소비자 보호 의무와 책임 기준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는 규제 차익을 줄이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것이다.

수익 모델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 임베디드 금융의 대부분은 결제 수수료나 상품 중개 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 구조는 단기 수익에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과도한 중개 경쟁을 유도한다. 고객의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 장기 이용 가치를 키우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환전 수수료를 없애거나 금융 습관 개선을 돕는 서비스로 고객 충성도를 높인 사례는 이 전환의 방향을 보여준다. 플랫폼이 고객에게 실질적인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고 그로 인해 이용률을 높이는 ‘가치 공유’ 구조로 발전해야 한다.

향후 임베디드 금융은 B2B와 산업 융합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소상공인 결제정산, 사업자 대출, 헬스케어·모빌리티 플랫폼과의 결합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처럼 기술적 융합이 심화될수록 선행돼야 할 것은 신뢰다. 금융이 일상에 깊숙이 내재화될수록 이용자는 자신이 금융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 사고나 피해가 발생하면 다층적인 파트너십 구조 때문에 책임 소재 규명 과정이 복잡해지고 지연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제도 정비의 핵심은 혁신을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명확하고 투명한 책임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토스의 수퍼앱 전략이 보여주듯 한국은 금융이 사용자 경험의 일부로 흡수되는 미래를 누구보다 빠르게 현실화했다. 앞으로의 지속 가능성은 제도적 유연성과 기술의 본질적 회복, 두 축에 달려 있다. 플랫폼과 금융이 충돌하지 않고 맞물리도록 설계된 환경이 뒷받침될 때 비용 효율적인 소규모 라이선스 구조와 정교한 데이터 활용이 함께 작동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