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개발과 함께 사라져 버린 꽃과 나무
[손웅익의 건축 마실] 아직도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꽃· 나무가 있는 정겨운 마을 풍경
오래전 여의도 6.3빌딩이 완공되고 나서 전망대에 오른 외국인 중에 여의도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며 아파트 지붕마다 잘 가꾸어진 조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사실은 녹색의 방수공사를 해 둔 것이었는데, 높은 데서 내려다본 그들 눈에는 아파트 지붕마다 잔디를 잘 가꾸어 놓은 옥상정원으로 보였던 것이다.
요즈음 나는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아 과거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동네를 자주 걷는다. 이런 동네에는 대부분 외부 형태가 비슷한 주택들이 좁은 골목 양쪽을 따라 죽 이어져 있다. 주로 2층 주택인데 외벽 재료는 대체로 붉은 벽돌이고 옥상이 있는 지붕을 가지고 있다.
발코니는 보통 화강석 난간으로 되어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도로 측 외벽에 붙어있다. 전세를 놓기 편하도록 1층과 2층을 외부 계단으로 분리해 둔 것이다. 2층이나 반지하로 들어가는 대문을 따로 만든 집도 많다.
이렇게 오래된 주택가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집 모양은 비슷하지만, 집주인마다 조경 취향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은 대부분 화강석을 깎아 만들었다. 그 난간 폭이 넓어 그 위에 화분을 죽 올려놓은 집이 많다. 좀 위태위태한 곳도 있지만 오랜 세월 가꾼 꽃 화분엔 정성이 가득하다.
이렇게 계단이나 베란다에 수십 개의 화분을 올려두고 화초를 가꾸는 집이 있는가 하면 담장을 따라 골목에 꽃 화분을 죽 늘어놓은 집도 있다. 능소화나 담쟁이가 2층 높이까지 외벽을 가득 덮고 있는 집도 있다. 좁은 마당이지만 오랜 세월 가꾼 감나무에 탐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달린 집도 있다. 이렇게 꽃이나 나무를 잘 가꾼 집을 보면 주인을 만나보고 싶어진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이렇게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골목이 많다. 아쉬운 것은 이렇게 오래된 집을 부수고 근생이나 다세대주택 등으로 새로 지을 때 그동안 가꾸었던 정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건축주는 새로 집을 지을 때 임대료를 비싸게 받을 수 있는 1층 유효 공간을 최대한 넓게 확보하려고 한다. 법적 주차장 면적도 확보해야 하므로 조경은 늘 자투리 공간으로 밀려난다. 그 결과 대부분 영구 음영지역이나 담장과 건축물 사이 좁은 공간에 형식적으로 법적 조경 면적만 확보하게 된다.
건축법에는 여러 가지 규제 사항이 있고 그 규제의 본질은 대부분 공익을 위함이다. 조경에 대한 기준도 공익을 위한 강제조항인데, 건축물의 연면적에 따라 조경 면적에 대한 기준을 다르게 해 두었다. 주택이나 근생과 같은 소규모 건축물은 조경으로 확보해야 하는 면적이 대지면적의 5%라서 아주 작은 면적이다.
관목이나 교목 등 수종과 그 크기에 대한 기준도 있지만 실제 법적 기준을 다 지켜서 식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사용검사를 위한 형식적인 식재를 한다. 게다가 준공이 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조경을 슬그머니 없애고 주차장이나 다른 용도로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옥상 조경의 경우는 더 관리가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린 시절 살던 고향 마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집집마다 감나무가 많았다. 특히 마당이 넓은 집에는 아주 큰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는데 가지가 골목으로 많이 넘어와 있었다. 감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하면 떨어진 감을 주우러 새벽에 골목을 누비던 기억이 난다. 조금 늦게 나가면 동네 아이들이 다 주워가 버리곤 했다.
집 뒤편으로 울창한 대나무를 심어둔 집도 많았다. 마당 한쪽에 있던 장독대 기억도 난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장독도 정겨웠지만 장독대 주변에 피어있던 봉숭아나 채송화도 잊을 수 없다. 이렇듯 꽃과 나무는 집이나 마을에 대한 추억으로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살았던 꽃과 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나는 오늘도 머잖아 사진 속 기록으로만 남을 동네 골목길을 걸으며 꽃과 나무를 본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