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빈의 유통톡톡] “이른 추위, 반짝 특수 뒤 전략은?”···이상기후에 패션업계 새 계산기 두드린다
이른 추위에 백화점 매출 두 자릿수 증가 급격한 일교차에 경량패딩 수요 커져 이상기후 대응 위한 시즌리스 전략 강화
‘먹고, 마시고, 입고, 바르고, 보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유통가 뒷얘기와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비재와 관련된 정보를 쉽고 재밌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반팔 옷을 입고 다닌 게 엊그제 같은데 눈 깜짝할 새에 때 이른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10월 중순부터 최저기온이 5℃ 안팎으로 떨어지면서 옷장 안에 깊숙이 넣어놓은 패딩이나 코트를 급히 꺼내 입은 이들도 많아졌는데요. 이에 패션업계는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분위기입니다. 예년보다 빠르게 기온이 떨어지자 패딩·코트 등 겨울 의류 매출이 급증하며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는 셈이지요.
실제로 주말 한파 특수에 주요 백화점들의 패션 매출이 일제히 늘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7~19일 백화점과 아웃렛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했으며, 신세계백화점 역시 같은 기간 패션 부문 매출이 14.2% 늘었습니다. 특히 모피(31.8%), SPA 브랜드(35.1%), 남성 컨템포러리(16.6%) 등 주요 카테고리가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는데요. 현대백화점도 패션(28.9%)과 스포츠(14.7%) 매출이 늘며 전체 매출이 18.4% 상승했습니다.
온라인몰에서도 경량 패딩, 기모 트레이닝복 등 방한 아이템 판매량이 두 자릿수 신장세를 보였습니다. 온라인 패션 버티컬 플랫폼 에이블리의 지난 한 달(9월 10일~10월 9일)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겨울 상의’ 검색량은 전년 대비 52%, ‘겨울옷’은 15% 증가했으며, ‘경량 패딩’은 검색량이 2.5배(142%), 거래액이 2배 이상(110%) 늘었습니다. 특히 ‘후드 경량 패딩’ 검색량은 11배, 거래액은 9배 이상 증가하며 높은 인기를 보였지요. 퍼 소재 아우터와 패딩슈즈 등도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진 낮 기온이 10도 이상 올라 일교차가 큰 상황에서 부피가 큰 아우터보다 경량 패딩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졌습니다. 주요 패션 브랜드들은 경량 패딩 물량을 늘리고 있는데요. 노스페이스는 대표 제품인 '부베 재킷'을 비롯해 경량패딩 제품군 물량을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렸고, 코오롱스포츠도 대표 경량 제품인 '솟솟다운' 물량을 지난해보다 1.3배로 늘렸습니다. 제조·유통 일괄(SPA) 브랜드인 이랜드월드의 스파오는 올해 경량패딩 물량을 50%로 확대했습니다. 특히 지난달까지 경량패딩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88% 증가했다고 하네요.
LF의 스포츠 브랜드 리복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9월 바람막이에서 11월 두꺼운 패딩으로 바로 넘어가는 제품군을 기획했지만, 올해는 커진 일교차에 중간 제품인 '프리미어 트랙 경량패딩' 컬렉션을 새롭게 기획했습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티톤브로스도 다양한 기온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가을 겨울철 아우터 제품군을 경량(얇은)·미들(중간)·헤비(두꺼운)로 확대해 '얼라이브 시리즈' 4종으로 출시했습니다.
출시 시기도 앞당겨졌습니다. 무신사의 자체브랜드(PB) 무신사스탠다드는 경량패딩을 올해 8월부터 선보였습니다. 지난해에는 9월 중순에 발매했지만 한 달 일찍 선판매에 나선 것이지요.
이처럼 패션업계에 존재했던 통상적인 시즌은 예년과 같지 않은 날씨 변수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잇따른 이상기후로 계절 경계가 흐려지면서 재고 관리와 상품 기획 전략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을이 짧아지고 한겨울이 길지 않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두꺼운 패딩보다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을 갖춘 ‘전환형 아우터’가 새로운 주력 제품군으로 떠오르고 있는 추세입니다. 경량패딩의 인기도 바로 이러한 영향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패션 대기업 관계자는 “이전에는 10월이면 겨울 상품을 본격 투입하고 2월까지 판매 기간이 유지됐지만, 이제는 기후 변동 폭이 커 예측이 어렵다”며 “소비자 반응에 따라 생산량을 즉각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한 공급망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가을겨울 의류는 단가가 높아 패션업계와 유통업계의 연간 실적까지 좌우할 정도로 많은 매출을 올립니다. 이번 반짝 추위 특수는 침체됐던 업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마중물이 된 셈이지요. 하지만 지난 봄까지만 해도 경기 침체와 이른 더위에 봄철 의류 판매가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섬유산업협회가 집계한 2025년 봄 시즌(3월~5월) 패션 소비 실태조사에서 패션제품 소비액은 전년 동기 대비 8.2% 줄어든 26조894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업계에선 ‘조기 한파 특수’는 일시적일 현상일 뿐 이상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바로 ‘시즌리스(seasonless)’ 전략 강화입니다. 계절 구분을 최소화한 다계절용 상품, 기능성 소재를 활용한 경량 보온 라인, 환경 변화에 대응한 친환경 원단 비중 확대 등이 주요 흐름으로 꼽힙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코오롱FnC가 의류 라이선스 사업으로 론칭한 ‘헬리녹스 웨어’는 정기 출시되는 시즌 상품 외에 시즌 구분 없이 출시하는 ‘에디션’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LF의 캐주얼 브랜드 헤지스는 라이너 베스트를 탈부착 할 수 있는 ‘디테처블 헌팅 코트’가 실용성에 힘입어 올 1~2월 매출이 전년 대비 약 220% 늘었다고 하네요. 브랜드 측은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물량을 조정하는 ‘반응 생산 시스템’을 통해 수요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길어진 여름에 대비하기 위해 올해 티셔츠·셔츠 등 기본 아이템 비중을 확대하고 출시 시기를 한 달가량 앞당겼으며,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계절을 세분화해 초여름·한여름·늦여름 등 시기에 맞춘 제품을 선보이고 기능성 소재 개발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유통업계에선 ‘기후 변화 TF’도 꾸려졌습니다. 지난해 12월 현대백화점이 주요 패션 협력사 15곳, 한국패션산업협회, 자사 패션 바이어 등 20여명으로 구성해 출범한 TF는 간절기 상품 할인 행사, 신상품 출시 일정 조정 등 다양한 판매 전략을 점검하고 대응책 마련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날씨에 패션 산업의 패러다임도 완전히 뒤바뀌고 있는 형국입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이상기후는 패션산업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며 “단기 매출 호조에 그치지 않고 생산·유통 전 과정에서 기후 리스크를 반영하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류빈 기자 rba@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