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주 칼럼] 한번 가겠다고 마음먹으면 언젠가 꼭 가게 되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

[허영주의 크리에이터 세상] 8년 전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단순한 일상에서 얻은 깨달음

2025-10-23     허영주 크리에이터
8년 전 파울로 코엘료의 책 <순례자>를 읽고 영감받아 순례길을 걸었다. /허영주 크리에이터

최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20대 젊은 청년들의 산티아고 순례길 브이로그 영상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또한 배우 임시완, 김유정, 김보라, 악동뮤지션 이수현까지 많은 연예인도 순례길의 경험을 나누며 이 길이 더욱더 대중에게 알려졌다.

필자는 8년 전 파울로 코엘료의 책 <순례자>를 읽고 영감받아 그 길을 걸었다. 순례길은 특별하고 행복한 경험이었고 삶의 중요한 가르침을 ‘몸’으로 배우게 한 곳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누구에게나 순례길을 추천하고 다녔는데 이렇게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니 반가운 마음이 들며 이번 칼럼에서는 순례길을 소개하고 필자의 경험을 나누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란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성지 순례길이다. 본래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Saint James, 스페인어로 Santiago)의 유해를 참배하기 위해 중세 시대부터 시작된 종교적 순례였지만 오늘날에는 신앙뿐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을 찾거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여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루트가 산티아고로 이어지며 대표적인 코스는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길(Camino Francés)로 약 800km에 달한다. 이 외에도 포르투갈 길, 은의 길, 북쪽 길 등 여러 경로가 존재하지만 모든 길은 결국 같은 목적지로 향한다.

한때 산업화와 세속화로 잊혔던 이 길은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과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순례자>를 계기로 다시 전 세계인의 발걸음을 끌어모았다. 현재 매년 수십만명의 순례자가 이 길을 찾으며 한국인 방문객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매력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가장 좋았던 점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놀랍게도 대부분이 풍경이나 여행지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변했다”라고 말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내면을 마주하게 하고 그것이 변화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현대의 삶은 끊임없는 ‘외부 자극’에 둘러싸여 있기에 내면의 목소리를 듣거나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그 모든 자극이 사라지며 정말 중요한 것들을 생각할 틈이 생긴다.

순례자의 일상은 매우 단순하다. 걷고 먹고 쉬고 잠들고의 반복이다. 이 단순함 속에서 외면했던 감정과 미뤄두었던 고민이 하나씩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의 삶이 올바른 방향인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고 그렇게 인생의 변화가 일어난다.

순례길 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진다. /허영주 크리에이터

순례길의 또 다른 매력은 이곳은 ‘모두가 친구가 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 길에는 직업도, 나이도, 국적도 다르지만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걷는 사람들이 있다. 순례자들은 서로 “Buen Camino!(좋은 길 되세요)”라고 인사하며 깊은 유대감을 갖는다. 사람들과 직접 눈을 맞추고 함께 걷는 인간적인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길의 큰 매력이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자연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실제 마을과 들판을 지나며 이어진다. 관광지처럼 꾸며진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 속을 걷는다는 것이 특별하다. 아침이면 안개 낀 들판을 지나고 점심엔 작은 마을의 광장에서 순례자들이 함께 식사를 한다.

이 길 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느껴진다. 차로는 몇 분이면 지나칠 거리도 내 발로 걸으면 몇 시간이 걸린다.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순례길에서 깨달은 세 가지 

​​​​​​​필자는 순례길을 걸으며 세 가지 인생의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행복에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멋진 것을 소비하고 드라마틱한 경험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순례길에서 배운 건 정반대였다.

순례길에서 하루는 단순했다. 그런데 그 단순한 일상이 주는 행복이 그 어떤 성취보다 컸다. 화려한 자극이 없어도 마음이 편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만했다. 그때 깨달았다. 행복은 큰 성취나 특별한 사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삶 속에서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둘째, 가볍게 살자는 것이다. 순례길을 걸으며 가장 먼저 느낀 건 어깨 위 짐의 무게였다. 처음엔 혹시 몰라 이것저것 챙겨 넣었지만 걷기 시작하자 곧 후회됐다. 짐이 많을수록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것을 버리자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자유로워졌다. 이 경험은 삶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살아가기. 감정이든 인간관계든 불필요한 짐을 줄이며 살기. 필자는 짐의 가벼움이 곧 ‘자유’와 연결된다는 것을 그 길 위에서 배웠다.

셋째,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순례길을 걷기 전 한 번도 20km 이상 걸어본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포르투에서 산티아고까지 230km를 걷는다고 했을 때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일일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걷기 시작하니 나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했고 내가 하루에 35km까지 거뜬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매일 20~30km를 걸어 12일 만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깨달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한 걸음씩 쌓이면 결국 도착하게 된다는 것을. /허영주 크리에이터

매일 20~30km를 걸어 12일 만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을 때 깨달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한 걸음씩 쌓이면 결국 도착하게 된다는 것을. 그 경험은 필자에게 어떤 일이든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해 줬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필자는 크리에이터에 도전할 수 있었고 책을 쓸 수 있었고 미국 이민이라는 큰 도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 가지 교훈은 순례길이 끝난 뒤에도 가슴안에 남아 있다. 단순하게 살고 가볍게 짊어지며 한 걸음 한 걸음 믿고 나아간다면 어떤 길이라도 결국 도착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당신에게 권하고 싶은 길

세상은 우리에게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며 더 좋은 직장, 더 멋진 경험, 더 완벽한 인생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못한 채 앞으로 달리고 또 달리기를 반복한다. 이 굴레가 지겹고 세상의 메시지가 아닌 스스로의 메시지를 찾고 싶다면 순례길을 걸어보자. 

순례길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한번 가겠다고 마음먹으면 언젠가 꼭 가게 되는 길.” 당신도 마음만 먹는다면 언젠가 그곳에 닿아 있을 것이다.

 'Buen Camino 부엔 까미노 (좋은 길이 되길)'

여성경제신문 허영주 크리에이터 ourcye@seoulmedia.co.kr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허영주 크리에이터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기예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걸그룹 ‘더씨야’, ‘리얼걸프로젝트’와 배우 활동을 거쳐 현재는 팬덤 640만명을 보유한 글로벌 틱톡커 듀자매로 활동하고 있다. <2022콘텐츠가 전부다> 책을 썼다.
다재다능한 ‘슈퍼 멀티 포텐셜라이트’로서 여러 채널에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설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평생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어 열정적으로 살아보기’를 실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