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In] 미움을 넘어 증오로: 변질된 국정감사
[신율 칼럼] 한판 승부 벌여 상대 굴복시키려 면책 특권 보장돼 대법원장 모욕 현재 국회 '감정이 지배하는 존재'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는 가슴에 와닿는 대사가 등장한다. '싫어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언급인데 싫어하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하지만 미워하는 것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매우 뛰어난 통찰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회 구성원들은 서로를 싫어하는 것일까 아니면 미워하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여야는 서로를 깊이 미워하고 있는 듯하다.
이념 성향이 다른 두 정치 세력이 서로를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념이 다르면 상대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 이념에 동조하거나 그러한 성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싫어함'을 넘어 '미워함'의 단계로 접어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미움은 단순한 거부감을 넘어 어떻게든 한판 승부를 벌여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강렬한 적대감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감사는 바로 그러한 적대적 감정이 여실히 드러난 장(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사하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여야가 상호 간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분출하며 대립하는 정치적 격전장에 가까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여당 성향 의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보인 태도는 이러한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정치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부를 총괄하는 수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을 문제 삼아 조 대법원장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습은 국정감사라기보다는 일종의 감정적 대응으로 비쳐질 수 있다. 더욱이 여권 성향의 한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을 친일파에 비유하며 '조요토미 희대요시'라 칭하고 심지어 조희대 대법원장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까지 국감장에 들고나온 행위는 국회의 품격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과연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면책 특권이 보장되는 국정감사장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장을 이토록 모욕한 행위를 면책 특권의 이름으로 용인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은 검증되지 않은 제보를 근거로 상대를 모욕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는 사인(私人) 조희대 개인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법원장이라는 헌법기관의 수장에 대한 모욕이라고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럴 경우 입법부의 구성원이 사법부를 조롱한 것과 다름없다는 논리마저 성립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합리적인 정치적 프로세스로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감정 노출’ 현상은 다른 상임위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여야 의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원회의 소관 사항도 아닌 사안을 두고 감정적 대립을 벌인 것이 그것인데 여야 의원들 사이에 감정 대립으로 출석한 증인들은 6시간 동안 기다려야만 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는 분명히 피감기관 증인 등의 권리 침해이자 현재의 국회가 ‘감정이 지배하는 존재’가 됐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국정감사가 여야 간의 감정 대립으로 흐르게 된다면 굳이 매년 국정감사를 실시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감사의 사전적 의미는 ‘감독하고 검사함’인데 감독하고 검사하는 행위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합리성으로 해야 한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와 같이 감정 그것도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점철되는 상황에서는 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즉 이런 식의 국정감사는 매년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는 말이다.
이번 국정감사를 지켜보며 갖게 되는 우려는 여야 간의 미움이 이제 증오의 수준으로 진화됐다는 점이다. 증오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정치가 실종된 국회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들은 그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늘도 싸운다. 정치란 국민의 이익을 위해 각자의 진영에서 대신 싸워주는 기능을 담당하는 존재지만 감정 대립에서 파생되는 맹목적 싸움은 그런 정치 본연의 역할과는 무관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민들은 과연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하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