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택 칼럼] 잠자는 대학을 깨워라···대한민국 노후의 미래, 캠퍼스에 있다

[문성택의 실버행]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 'UBRC' 단계적 접근···'캠퍼스 스테이'부터 재정 부담 완화·제도적 기반 필요

2025-10-16     문성택 유튜브\'공빠TV\'대표
풍부한 인프라와 지적 자산을 가진 대학을 활용한다면 어르신에게는 품위 있고 활기찬 노후 환경을 제공하고 대학에게는 지속가능한 생존의 길을 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학기반은퇴자공동체(UBRC, 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모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은 더 이상 젊은이만의 공간이 아니다.”

한적한 지방대학의 기숙사 건물에는 빈방이 늘어가고 많은 어르신들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불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언뜻 별개의 문제 같지만 사실 이 두 풍경은 하나의 해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대학 캠퍼스를 다시 깨우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두 가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초고령사회의 도래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섰고 머지않아 10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둘째는 학령인구 급감이다. 2019년 약 50만명이던 대학 입학 가능 인구가 불과 4년 만에 39만명 수준으로 줄며 많은 대학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풍부한 인프라와 지적 자산을 가진 대학을 활용한다면 어르신에게는 품위 있고 활기찬 노후 환경을 제공하고 대학에게는 지속가능한 생존의 길을 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학기반은퇴자공동체(UBRC, 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모델이다.

단계적 접근과 상생의 가치

처음부터 대규모 상주형 모델을 추진하기에는 위험이 크다. 따라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 번째 단계는 ‘캠퍼스 스테이(Campus Stay)’다. 방학이나 학기 중에 시니어가 원하는 지역의 대학에 머물며 배우고 생활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숙사에서 지내고 학생 식당에서 식사하며 오전에는 특화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현장을 탐방한다. 안동에서는 유교문화를 배우고 고택을 거닐고 강릉에서는 해양 생태를 배우고 해변을 산책하는 식이다. 각 대학의 캠퍼스 스테이를 이수하면 학점을 쌓아 명예 학위나 수료증을 받을 수도 있다.

캠퍼스 스테이는 대학에도 이익이다. 방학 중 유휴시설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지역경제에는 장기 체류하는 시니어들의 소비가 보탬이 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00곳이 넘는 대학이 이미 시니어와 캠퍼스를 연결한 모델을 운영하고 있으며 2032년까지 400곳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가능성은 충분하다. 경북대학교의 ‘시니어인문아카데미’, 강릉원주대학교의 ‘액티브시니어 아카데미’, 전남대학교의 ‘은퇴자 평생학습 프로그램’ 등은 이미 UBRC의 전단계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체계화한다면 한국형 UBRC의 기반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진정한 UBRC’다. 캠퍼스 스테이가 전국적으로 활성화되면 시니어들은 대학에 대한 신뢰와 친숙함을 쌓고 대학은 프로그램 운영 경험과 수익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때 대학 내 상주형 실버타운 건립이 추진된다. 입주자는 대학 평생교육원의 학생 신분으로 강의를 듣고 도서관·체육관 등 교내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재학생과 시니어가 멘토링과 공동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세대 융합 공동체로 발전하는 길이 열린다.

UBRC, 현실적 과제와 해법

물론 UBRC에는 현실적인 과제들이 있다.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 대학 부지의 용도 제한, 기존 학생들의 반발 가능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해법은 분명하다.

첫째, 재정적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정책 자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특히 '주택도시기금'의 일부를 대학 연계형 시니어주택 사업으로 전환하거나'관광진흥기금'을 활용해 장기저리 융자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민간 투자와 협력을 병행하면 초기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둘째, 세대 간 교류 설계가 중요하다. UBRC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교육과 융합의 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재학생과 시니어가 함께하는 멘토링, 봉사활동, 창업 프로젝트 등을 통해 자연스러운 세대 통합이 가능하다. 미국의 오번대학교(Auburn University)처럼 시니어가 학생의 멘토로 활동하고 반대로 학생이 디지털 기술을 가르치는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도 도입할 수 있다.

셋째,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5조는 대학 부지를 교육·연구 목적 외로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실버타운 건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대학 연계형 복지·평생교육시설’로 인정하는 별도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또한 '노인복지법'상 노인주거복지시설 분류에 ‘교육연계형 실버타운’ 유형을 추가해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결론 : 배움에서 돌봄으로, 돌봄에서 성장으로

UBRC는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다. 교육과 삶의 통합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실현하는 모델이다. 은퇴 세대에게는 돌봄을 넘어 배움과 성장을, 대학에게는 새로운 생존의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는 ‘폐교 활용’ 수준의 단편적 정책을 넘어 대학과 시니어가 함께 성장하는 캠퍼스 복지 모델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교육부·복지부·국토부가 공동으로 ‘UBRC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노후복지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결국 잠자는 대학을 깨운다는 것은 초고령사회와 대학 위기라는 두 난제를 동시에 풀어내는 창의적 해법이다. 무엇보다 노인의 삶의 패러다임을 돌봄에서 성장으로 바꾸는 전환이 될 수 있다. 그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은 바로 ‘캠퍼스 스테이’다. 작은 시작이 쌓이면, 부모님의 오늘을 지키고 우리의 내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길이 대한민국의 캠퍼스에서 다시 열릴 것이다.

여성경제신문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mst2000@hanmail.net

문성택 유튜브 '공빠TV' 대표

문성택 공빠TV 대표는 한의사로 25년간 의료현장에서 진료하며 행복한 노후의 집을 연구하고 있다. <실버타운 올가이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의 집>, <행복 계약서>를 펴냈고, 유튜브 채널 ‘공빠TV’를 통해 고령자 주거, 실버타운, 요양시설 정보를 24만 구독자와 공유하고 있다. 정부·지자체·학회 등의 정책 자문과 강연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