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만명 등장에 놀랐는데 알고 보니 나도?···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립·은둔
개인 성향보다 사회구조 및 분위기와 연관 인식 개선 '최우선'···꾸준한 교육으로 해결
고립·은둔 청년이 약 54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심각성과 별개로 고립·은둔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고립·은둔 상태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개인의 나약함과 나태함보다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결된다. 이에 사회적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1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증가에도 한국 사회의 인식은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고립·은둔 청년은 사회적 관계 단절, 심리적·물리적 고립 등으로 6개월 이상 집에만 머무르거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19~39세 청년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고립·은둔 청년은 전국 약 54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올해 3월 발표한 '2024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도 전국 19~34세 청년 응답자 1만5098명 중 약 5.2%가 고립·은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2.4%)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지만 고립·은둔에 관한 편견 어린 시선은 여전하다. 나약한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식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인식이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누구나 고립·은둔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태도다. 김주희 서울청년기지개센터 센터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센터를 이용하는 청년 중에도 직장을 다니거나 아르바이트하고 있지만 정서적으로 고립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라며 "고립이 장기화하면 은둔이 될 수 있는 만큼 은둔 예방 차원에서라도 고립 초기에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개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립의 경우 스펙트럼이 넓고 원인과 형태도 다양하지만 아직은 개념 정립이 되지 않았다"라며 "인식을 더 확산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고립 청년을 가르는 기준은 사회생활 여부와 관계없이 개인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은둔 청년 정도만이 알려져 있으며 고립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단순히 외출이나 경제활동만이 아닌 사회적 안전망 및 정서적 교류와 연결된 사항이다. 전문가들은 고립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고립되기보다는 아동, 청소년기에 있었던 부정적 경험이 사회 진출에 마주친 문제와 엮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취업난·양극화 등으로 각박해진 사회 분위기도 기름을 부었다. 김 센터장은 "취업난 등으로 다른 사람의 상처나 실패를 보듬어주고 다 같이 이겨내겠다는 분위기가 사라졌다"라며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야 하는 청년들이 예전에 비해 훨씬 많이 늘어났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고립·은둔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경향도 해결을 막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박재영 청년재단 이음사업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족의 사망과 같은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할 경우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고립이나 은둔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이 언제든지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잘못된 인식은 문제 해결을 직접적으로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박 팀장은 "2018년에 처음 관련 사업을 하면서 20명을 모집했는데 되지 않았다. 당사자들과 그 부모조차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도 있다. 그는 "현재 사회복귀와 자립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서울시 기지개 센터'에서 관련 사업을 위해 900명을 모집할 때 4000명 이상이 지원할 정도로 서울에서는 인식 개선이 됐다"라면서도 "지방에서 열리는 복지부 시범 사업의 경우 인식 개선이 안 돼 여전히 모집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인식 개선을 위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취업이나 학업을 위한 교육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할 방법을 익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사회에 나온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이에 대응할 방법을 가르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의 고립·은둔 청년 관련 정책은 이제 막 시작 단계를 밟고 있다. 민간이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했으며 지자체는 3년 전, 보건복지부 등은 작년부터 관련 활동에 나섰다. 지난 2024년부터는 울산, 인천, 전북, 충북 네 군데에서 청년미래센터를 통해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민 기자 kbgi001@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