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 더봄] ‘라떼’ 대신 ‘모카’를 건네는 리더의 품격

[김승중의 슬기로운 인간관계] 라떼의 독을 해독하는 모카의 지혜 실패를 끌어안는 리더의 진짜 용기

2025-10-14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리더의 자리는 끝없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특히 경험이 부족한 팀원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딜레마는 더욱 깊어진다. 팀의 성과와 개인의 성장을 위해 잘못을 지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주어야 하는 것은 리더의 분명한 책무다.

하지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선한 의도는 종종 ‘꼰대’라는 냉소적인 낙인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리더는 점점 입을 닫게 되고, 꼭 필요한 피드백마저 포기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꼰대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채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자신만의 가치관과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고 가르치려 드는 권위적인 태도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꼰대라는 비판의 덫을 피하면서, 리더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데일 카네기는 그 해답을 가장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으로 제시한다. 바로 “상대방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실수부터 먼저 이야기하라(Talk about your own mistakes before criticizing the other person)”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랑으로 가득한 ‘나 때는 말이야’를 ‘라떼는 말이야’라며 풍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라떼’의 독을 해독하는 ‘모카’의 지혜

이 원칙의 핵심은 비판의 칼날을 상대에게 겨누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 겨누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말을 돌려서 하는 소극적인 기술이 아니다. 리더가 자신의 권위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와 동등한 눈높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매우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전략이다.

이것이 효과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은 누구나 비판 앞에서 본능적으로 방어벽을 쌓는다. 하지만 리더가 먼저 “사실 나도 신입 시절에 똑같은 실수를 해서···”라고 자신의 흑역사를 드러내는 순간, 상황은 극적으로 바뀐다. 수직적이었던 관계는 ‘같은 실수를 경험한 선배와 후배’라는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되며, 상대는 리더의 말을 ‘차가운 지적’이 아닌 ‘따뜻한 조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

우리는 자기 자랑으로 가득한 ‘나 때는 말이야’를 ‘라떼는 말이야’라며 풍자한다. 이와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카네기의 지혜를 우리는 ‘모카 한 잔 어때?’라고 이름 붙일 수 있겠다. “나도 못(모)했으니 가(카)르쳐 줄게”라는 따뜻한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라떼 리더’가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무기 삼아 상대를 위축시킨다면, ‘모카 리더’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즉 흑역사를 다리 삼아 상대에게 다가간다. 전자가 권위를 세우려다 관계를 무너뜨린다면, 후자는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진정한 영향력을 얻는다.

실패를 끌어안는 리더의 진짜 용기

이 원칙은 개인 코칭의 차원을 넘어 조직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의 자세로 확장된다. 팀의 목표가 미달되거나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가장 쉬운 선택은 특정 팀원의 실수를 지적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는 비난의 화살을 밖으로 돌리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많은 리더가 이렇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 나약하게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 이 오래된 리더십의 오해에 대해, TED 강연으로도 유명한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그녀의 저서 <리더의 용기(원제: Dare to Lead)>에서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수십 년간 취약성을 연구한 그녀는 단언한다. 취약성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를 측정하는 가장 위대한 척도’라고. 그녀에 따르면, 실수를 숨기고 남을 탓하며 완벽한 척하는 ‘갑옷 입은 리더십(Armored Leadership)’은 불신과 공포의 문화를 만들 뿐이다.

반면, 자신의 불완전함을 기꺼이 드러내고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있는 리더십(Daring Leadership)’은 구성원들의 강력한 신뢰를 얻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하여 혁신을 끌어낸다.

즉, 리더가 "이번 일의 가장 큰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제가 방향을 더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고, 여러분을 충분히 지원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용감해지는 것이다.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두려움 대신, ‘실수는 배움의 과정’이라는 믿음이 팀에 자리 잡는다. 팀원들은 문제를 숨기기보다 솔직하게 공유하기 시작하며,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는 소모적인 ‘비난 게임’은 사라지고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하는 건설적인 논의가 시작된다. 리더의 용기 있는 자기비판이 오히려 팀을 하나로 묶고,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기꺼이 드러내고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있는 리더십(Daring Leadership)’은 구성원들의 강력한 신뢰를 얻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감을 형성하여 혁신을 끌어낸다. /게티이미지뱅크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

1961년 4월, 이제 막 취임한 지 3개월 된 신임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CIA가 주도하고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기에 구상된 쿠바 피델 카스트로 정권 전복 작전을 승인한다. 바로 '피그스만 침공(Bay of Pigs Invasion)' 작전이다.

하지만 이 작전은 1400명의 쿠바 망명군이 투입된 지 사흘도 안 되어 100여명이 사망하고 12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히는, 미국의 외교 역사상 최악의 실패로 끝난다. 대통령의 명성은 땅에 떨어졌고, 행정부는 대혼란에 빠졌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보통의 리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CIA를 탓하거나, 전임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계획된 작전이었다고 변명하거나, 군사 고문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카메라 앞에 서서, 변명 한마디 없이 전 세계를 향해 선언했다. “승리에는 백 명의 아버지가 있지만, 패배는 고아라는 말이 있습니다···(중략)···이 정부의 책임자는 바로 나입니다(I am the responsible officer of the Government)."

결과는 어땠을까? 그는 약한 리더로 낙인찍히기는커녕, 실패를 정직하게 책임지는 용기 있는 모습에 국민의 엄청난 신뢰를 얻었고, 그의 지지율은 오히려 80% 이상으로 급등했다. 더 중요한 것은 행정부 내부의 변화였다.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본 참모와 각료들은 깊은 감동과 충성심을 느꼈다.

그들은 케네디를 위해 더 헌신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이 뼈아픈 실패의 교훈은 1년 반 뒤, 인류를 핵전쟁 직전까지 몰고 갔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케네디의 사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리더를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성공보다도 강력한 신뢰와 리더십을 구축하는 가장 위대한 용기임을 증명한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상황에 통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긴급한 안전 문제나 명백한 규정 위반처럼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이 필요한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상적인 상황에서 당신이 피드백을 주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이 순간 나는 심판하는 재판관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성장을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나도 과거에 이와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은 없었나?’,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책임은 정녕 없는가?’

우리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절대 사과하지 않는 부끄럽고 무책임해 보이는 리더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다. 그들의 굳게 닫힌 입과 완고한 태도는 조직을 병들게 하고 사람들을 떠나가게 할 뿐이다.

이제, 그들과 다른 길을 선택할 용기를 내보자. 때로는 “나도 그랬어”라는 공감의 말로, 때로는 “내 책임이 크다”는 묵직한 책임감으로 팀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자. 자기 자랑으로 가득한 차가운 ‘라떼’ 대신, 자신의 흑역사를 녹여낸 따뜻한 ‘모카’ 한 잔을 건네는 리더. 진정한 용기는 완벽함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기꺼이 인정하고 그 위에서 함께 성장하려는 의지에서 시작된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