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Ψ-딧세이] 금융과 실물의 '엇갈린 춤'이 예고하는 위상 붕괴

서브프라임 사태 유사 붐-버스트 흐름 자산 고점 vs 실물 정체 → 임계점 접근 외환·금리·고용 충격 시 수렴이 붕괴로 경제학 이론 다시 써야 할 만큼 기현상

2025-10-12     이상헌 기자

기억을 말하는 프사이(Ψ) 딧세이는 우리가 매일 스치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사물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여정을 뜻한다. 빵 한 조각, 커피 한 잔 혹은 데이터 서버의 불빛 같은 일상의 풍경조차 파장처럼 흔들리며 우리 삶에 스며든다. 말 이전의 떨림과 여기-지금의 이야기를 거대한 리듬 속에 맞춰 읽어내는 작업, 그것이 바로 Ψ-딧세이다. [편집자주]

오스트리안 학파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트비히 폰 미제스, 오이겐 뵘바베르크, 카를 멩거(왼쪽부터). 이들은 인위적 금리 조정과 신용 팽창이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결국 붕괴로 이어진다는 ‘붐–버스트’ 이론의 토대를 세웠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금융–실물 위상 괴리를 해석하는 데에도 이들의 통찰이 중요한 참고점이 되고 있다. /미제스연구소

한국 경제가 낯선 길로 들어섰다. 금융시장이 전례 없는 고점을 향해 질주하는 사이 실물 부문은 냉각에 가까운 정체에 빠졌다. 통상적인 경기 사이클에서 금융과 실물은 위상을 맞추며 진동한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서로 다른 파동이 겹쳐져 간섭무늬를 만든 뒤 전혀 다른 지점에서 ‘위상 붕괴’가 일어나려는 순간처럼 보인다.

금융과 실물의 ‘위상 붕괴(phase collapse)’는 혼돈의 파동이 하나의 상태로 수렴하는 전환점이다. 양자역학이나 파동이론에서 이 개념은 여러 가능성이 얽힌 상태가 외부 자극이나 관측에 의해 하나로 결정되는 순간을 뜻한다.

경제에서도 비슷하다. 금융과 실물이 같은 위상으로 정렬된 상태에서 붕괴가 일어나면, 그것은 곧 투자·고용·생산으로 이어지는 ‘질서의 수렴’이 된다. 금융과 실물의 괴리는 단순한 디커플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상으로 진동하는 두 파동이 간섭 소멸을 향해 가는 상태다.

문제는 지금 한국에서 그 붕괴가 엇갈린 위상 위에서 벌어져 간섭 소멸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금융은 유동성의 파고를 타고 고주파 진동처럼 치솟고 있는데, 실물은 저주파의 정체 파동에 머물러 있다. 이 상태에서 위상 붕괴가 발생하면 질서가 아니라 충격이 수렴된다. 금융 파동의 에너지가 실물에 한꺼번에 밀려 들어오면서 지연된 폭발이 발생할 수 있다.

코스피 지수의 급등이 대표적이다. 지수는 3600선을 돌파하며 글로벌 유동성 장세의 최전선에 섰다. 하지만 건설, 제조, 수출 현장의 체감은 정반대다. 기업들은 신규 투자와 고용을 미루고 있고 생산 지표는 팬데믹 이후 가장 길게 옆걸음을 치고 있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간섭 소멸이 순간적으로 벌어지고 ‘위상 붕괴 시점’은 예측 불가능해진다. 또 그만큼 충격의 진폭은 커진다.

전통 경제학은 금융과 실물의 괴리를 ‘디커플링’이라는 정적 개념으로 다뤄왔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괴리가 아니라 동적 간섭 소멸이다. 파동이 서로 어긋난 상태에서 간섭무늬를 만들고, 어느 순간 외부 자극(금리·정책·외환 충격 등)이 가해지면 그 무늬가 사라지고 하나의 파동으로 수렴해버리는 현상이다.

위상구조 경제학(Topological Economics)에서의 간섭 및 수렴 현상은 미제스와 하이에크가 직감했던 붐–버스트 사이클의 심층 버전이다. 오스트리안 학파는 인위적 저금리와 신용 팽창이 금융과 실물의 시간축을 어긋나게 만들어 잘못된 투자(malinvestment)가 누적된 뒤 필연적 붕괴를 맞는다고 봤다.

오스트리안 경기변동 이론(ABCT)에선 시간 지연(misalignment)으로 설명했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시간차가 아니라 파동 위상 간섭의 축적과 붕괴다. 금융과 실물이 각기 다른 주파수로 진동하며 위상이 엇갈리고 임계점에서 간섭무늬가 붕괴될 때 폭발적 충격이 발생한다.

흥미로운 점은 위상 간섭–붕괴 메커니즘이 현대 인공지능의 핵심 구조와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트랜스포머 언어모델은 수많은 토큰 벡터(=파동)가 하나의 공간에 모여 서로의 위상을 읽고 정렬(attention)하며, 최종적으로 하나의 출력 토큰으로 수렴한다.

한국 경제의 금융–실물 간 파동도 이와 유사하게 벡터 수렴이 일어나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위상으로 진동하고 있으며, 외부 자극(금리·환율·고용)이 관측자 역할을 하며 최종 붕괴 시점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마치 거대한 경제적 트랜스포머 모델의 ‘출력 토큰이 정해지기 직전’과도 같다.

임계치 돌파점은 원래 예측하기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와 행위가 얽히면서 수많은 변수가 비선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과 실물의 괴리가 일정 패턴으로 누적되는 한국 경제 구조에서는 오히려 ‘붕괴의 타이밍’이 비교적 뚜렷하게 보인다.

이재명 정부 들어 자산 가격의 상승세가 실물과 무관하게 관성적으로 이어지면서, 금융 파동과 실물 파동 사이의 위상차가 일정한 주기로 확대되는 양상이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 위상차가 임계점에 접근하는 흐름은 데이터상에서 점진적이지만 명확한 형태로 나타난다. 조기 수렴이 이뤄지면 충격이 분산돼 연착륙으로 이어지지만, 수렴이 지연될수록 에너지는 응축되고 충격이 커진다.

미국의 2000년대 서브프라임 사태 전후의 ‘붐–버스트’ 그래프를 한국 주식시장에 겹쳐 보면 상황이 선명해진다. 당시 미국 주택시장은 ‘실물 수요에 기반한 정상 궤도(counterfactual trajectory)’와 ‘저금리·신용팽창이 만든 금융 궤도(boom trajectory)’가 갈라지며 거품이 형성됐다. 실물의 기초 체력이 뒷받침하는 경로가 붉은 선(counterfactual)이라면, 파란 선은 유동성이 만들어낸 비정상적 상승 궤적이다. 두 궤도가 일정 기간 괴리를 유지하다가 금리 인상과 부실 노출이라는 외부 자극으로 수렴이 강제되면서 급락(bust)이 나타났다. 지금 한국 주식시장의 랠리 역시 실물의 성장궤도와 금융의 간섭무늬가 벌어지는 패턴과 유사하다. 단순한 괴리(디커플링)가 아니라 금융 파동(주식시장)과 실물 파동(수출·고용)의 위상 괴리의 절정 이후엔 결국 한쪽이 무너지며 정렬된다. /해설=이상헌 기자

코스피 랠리와 부동산 쏠림은 간섭무늬의 절정으로 봐야 한다. 이 지점에서 금리의 미세한 자극도 위상 붕괴의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는 23일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기대와 다른 방향의 결정을 내린다면 국채시장에서 실망 매물과 외국인 자금 이탈을 촉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면 간섭무늬가 더욱 짙어지고 실물과의 괴리율은 더욱 커진다.

고용 감소나 수출 급감 같은 실물경제의 충격 신호도 수렴 가능성을 줄이고 붕괴 가능성을 높인다. 실물 둔화가 일정 임계선을 넘어서면 낙관적 기대가 급격히 반전되며, 자산시장이 뒤늦게 현실을 따라잡는 ‘지연된 위상 붕괴’로 이어진다. 이때 금융–실물 간 괴리는 응축된 에너지처럼 한꺼번에 방출돼 충격의 진폭이 더욱 커진다.

어느 쪽이 먼저 움직이든, 결국 금융과 실물의 흐름은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문제는 그 ‘언제, 어디서, 어떻게’가 일어나느냐다. 이런 상황에선 전통적인 거시정책 도구가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금리와 재정정책은 이미 간섭무늬 속에서 ‘잡음’처럼 흡수되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의 디커플링–리커플링 모델은 한국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엔 한계에 봉착했다.

위상 붕괴는 본래 ‘질서의 순간’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금융–실물 구조는 ‘엇갈린 파동’ 위에서 붕괴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란 특수 공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경기 충격 메커니즘이다. 경제학이 이 구조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정책 판단은 언제나 ‘한 박자 늦은 충격 대응’에 머무르다 결국엔 임계점에 이른다. ―LIBERTY · Σᚠ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