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공포 조장하는 ‘내러티브 함정’에 빠지다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양자컴퓨터 기대, 가상자산 시장 불안으로 확산 과학 이슈, 투자심리 자극하며 단기 변동성 확대 공포 내러티브에 개인 동요, 반대로 움직인 기관

2025-10-13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지난주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퀀텀) 컴퓨터 기술 개발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3명의 양자 물리학자에게 주어졌다. 난해한 기초과학을 산업 혁신으로 이어지게 한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이 가운데 한 명인 미셀 드보레(Michel Devoret) 전 예일대 교수는 구글 퀀텀 AI에서 수석 과학자로 일하고 있다. 

미셀 드보레 /Yale University

또 다른 수상자인 존 마티니스(John Martinis) 캘리포니아 샌타 바버라(UC Santa Barbara) 대학 교수도 구글에서 양자컴퓨터 팀을 이끈 바 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의 지도 교수였던 존 클라크(John Clarke) 박사와 더불어 초전도 양자 간섭 장치의 개발과 응용에 참여했다. 

양자컴퓨터의 개념은 문외한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하다. 상식적인 선에서 보자면 전통적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두 숫자인 비트(bit)를 조합해 선형적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양자컴퓨터는 큐빗(qubit)이라는 조합을 통해 0과 1을 중첩해 문제를 동시에 처리한다.

예를 들어, 세 자리 숫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여행 가방 캐리어의 잠금장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차례차례 입력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세 자리 번호 각각은 0에서 9 가운데 하나의 숫자에 해당한다. 시간이 있다면 000, 001, 002로 시작해서 999까지 천 가지 조합을 하나씩 대입하면 된다. 전통식 컴퓨터는 이를 전자로 빠르게 처리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천 가지 경우의 수를 중첩 기능을 이용해 동시에 처리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양자역학 특유의 중첩(superposition, 모든 상태가 동시에 존재 가능)과 얽힘(entanglement, 한 입자의 측정이 다른 입자의 상태 결정)의 개념을 적용해 엄청난 양의 계산을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처리한다.

문제는 얽힘과 중첩이 가능한 상태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매우 낮은 온도에서 기능하는 초전도체 방식을 이용하기도 하고, 진공상태에서 포획한 이온의 양자상태를 조작해 큐비트로 사용하기도 한다. 

현재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기업은 IBM이다. IBM은 1000개가 넘은 초전도 큐비트를 적용하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했고 수년 내에 1만 큐비트 도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구글도 초전도 큐비트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 증시에 상장된 중소형 회사로는 이온트랩 방식의 아이온큐(IonQ)와 초전도 방식의 리게티(Rigetti)가 있고 양자 어닐링을 통해 최적화 문제를 푸는 디웨이브(D-Wave)가 있다. 올해 들어 양자컴퓨터 기술이 일취월장하면서 이 회사들의 주가는 최근 1년간 수십 배 상승했다.

작년 말 양자컴퓨터 주가 상승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구글이 공개한 양자 컴퓨터 칩이었다. 구글은 윌로우라 불리는 이 최첨단 양자칩이 기존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면 1해(秭, 10의 25승)년이 걸리는 계산을 단 5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연산속도를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 뉴스를 전후해 한 달여 기간에 1달러 안팎에 머물던 리게티 주가는 20달러로 급등했다.

구글 양자 칩 ‘윌로우‘ /연합뉴스

그 후 혹독한 조정을 받으면서 리게티의 주가는 반토막이 더 난 8달러로 폭락했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어느 콘퍼런스에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하려면 20년은 족히 걸릴 듯하다는 폭탄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젠슨 황은 양자컴퓨터에 대하여 깊이 검토해 보지 않고 자신의 감에 의지해 말했지만 그 파장은 컸다.

최근 들어서 양자컴퓨터 주가는 다시 강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던 젠슨 황의 엔비디아를 비롯해 빅테크가 양자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개시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열풍과 맞물려 AI와 양자 간 시너지 효과의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다. 물론 최근 노벨물리학상이 양자컴퓨터 연구자에게 주어진 것도 주가 상승에 견인차 구실을 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모든 자산 가격에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컴퓨터의 굿 뉴스에 가격이 폭락하는 주요 자산도 있다. 바로 비트코인이다. ‘디지털 골드’로 불리며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한 수단으로 주목받는 비트코인은 양자컴퓨터와는 상극 관계에 있다. 다른 가상화폐의 가격도 마찬가지다.

최근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대감을 안고 전고점을 넘어 사상 최고가인 12만6000달러를 넘었던 비트코인 가격이 속절없이 하락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도 양자컴퓨터 전문가의 노벨물리학상 수상 소식이었다.

현재까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보안은 대체로 양호하다. 거래소가 해커에게 뚫린 적은 있지만 가상화폐를 보관하는 전자지갑이 해킹으로 털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전자지갑의 비밀번호가 수십 개의 문자 조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양자컴퓨터의 기능이 일취월장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트코인 몇 개가 저장된 지갑이 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갑의 주인은 순식간에 몇억원의 자산을 도둑맞게 된다. 물론 이런 세상이 오면 인터넷뱅킹이라고 하여 안전하리란 보장이 없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양자컴퓨터가 발전하는 속도에 맞춰 보안기술도 빠르게 발전해 위험을 보완하리라 본다. 

전문가들의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가격이 과민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주 금요일에는 한국 APEC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날 일은 없을 듯하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이후 비트코인의 낙폭이 확대되었다. 미·중 관세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이 읽었기 때문이다.

실상을 보면 노벨물리학상이나 관세전쟁 가능성으로 인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 가격의 폭락은 합리적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노벨상은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오랜 연구 업적에 대하여 주어진다. 이들의 수상 여부가 특별히 양자컴퓨터 기술의 발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샹들리에 구조의 양자컴퓨터 모형 /연합뉴스

트럼프의 관세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상호관세 부과 당시 비트코인과 주가는 시장의 멜트다운(붕괴)을 의심할 정도로 폭락했지만 펀드멘털에 대한 관세의 여파가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전고점을 넘어서는 급등세를 재개했다.

결국 과거에 이런 뉴스가 나왔을 때 시장이 폭락했다는 내러티브와 뇌리에 각인된 트라우마로 인해 개인 투자자가 과매도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이 집중 매도할 때 전문 투자가와 기관은 저점매수에 나선다. 공포와 탐욕을 조장하는 시장의 내러티브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francis.kim@furma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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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