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패권전 새 불씨···中 '희토류 통제' 강화에도 韓 반도체 '견조'
상무부, "우회 수출 차단 위한 조치" 주장 '금지' 아닌 '통제' 협상 주도권 노린 전략 中 희토류 무기화는 근거 없는 억측 반박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 낮아"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전략광물 전쟁'으로 확전되고 있다. 중국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희토류 금속의 역외 수출을 제한하는 고강도 조치를 시행하며 '기술 기반 통제'에 나섰다. 한국은 희토류의 8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산업 전반의 긴장이 커지고 있지만 반도체 부문은 공급망 다변화로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 상무부는 공고를 통해 자국 수출 통제법과 이중 용도 품목 수출 통제 조례 등에 따라 희토류 품목의 수출 통제 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월 미국의 관세 압박에 맞서 희토류 수출 통제를 전격 발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추가해 규제 강도를 한층 높였다.
주목할 점은 '중국 기술이 적용된 해외 생산물'까지 통제 대상에 포함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 마운틴패스 광산처럼 해외에서 채굴하더라도 중국 기술로 정제·가공한 희토류는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자국 기술을 적용한 해외 희토류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가공·정제의 85~99%, 영구자석 생산의 92%를 차지하고 있다. 고성능 자석의 핵심 소재인 중희토류(디스프로슘·터븀)는 99%가 중국에서 생산되며 상업 규모의 분리 시설은 중국 외 지역에는 없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조치가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상무부 대변인은 "일부 해외 조직과 개인이 중국산 희토류 통제 물자를 제3자에게 제공해 군사 등 민감한 분야에 사용됐다"라며 "희토류는 군용과 민간용을 겸하는 이중 용도 품목으로 수출 통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조치"라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미국을 향한 '비대칭 보복'이자 기술 지렛대 강화 전략으로 본다. 중국이 원자재 수출 제한을 넘어 기술·가공 단계까지 봉쇄함으로써 '중국 없이는 희토류 정제가 불가능한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지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금지'가 아닌 '통제' 방식으로 조정한 것은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이에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중국의 희토류 통제는 '수출 금지'가 아니라 '수출 규범화'에 목적이 있다"라며 "희토류 자원의 우위를 패권적 무기로 사용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서방이 제기하는 '중국이 세계의 목을 조른다'는 비난은 근거 없는 억측이며 중국의 장기적 규범화 노력과 평화 지향적 산업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우회 수출 문제와 관련해 "희토류 관련 품목은 군민 양용(dual-use) 특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수출 통제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관행"이라며 "이러한 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중국의 조치는 책임있는 대국으로서의 당연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조치에 국내 산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한국은 희토류 금속의 80%, 네오디뮴 영구자석의 88%를 중국에 의존한다. 현대차와 기아가 추진하는 전기차 전환의 핵심 부품인 고효율 모터는 자석 없이는 작동하지 않아 중국이 수출 허가를 지연하거나 가격을 인상하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다만 반도체 부문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발표한 '14나노 이하 시스템반도체'와 '256층 이상 메모리 반도체용 희토류 개별 심사' 조치가 한국의 첨단 반도체를 겨냥한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공급망 다변화와 재고 확보 노력이 누적돼 있어 실질적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희토류 수출 통제가 발표됐지만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계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이미 공급망 다변화와 재고 확보 노력이 누적돼 있고 희토류가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아 개발이나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